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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책 이야기

네 체면을 위해 내 꼬리를 자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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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에는 프로크루스테스라는 노상 강도가 등장한다. 잔인하기로 치면 프로크루스테스를 능가할 자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하기야 그의 잔인한 살인 수법 때문에 오늘날까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으니 강도치고는 꽤 성공한(?) 경우가 아닌가 싶다. 프로크루스테스는 아테네 교외의 케피소스 강가에 살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상대로 강도짓을 했다고 한다. 그의 집에는 철로 만든 침대가 하나 있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 침대는 마음대로 길이 조정을 할 수 없었다고 하는데, 조금은 억지스럽다. 나는 여태 길이 조절이 가능한 침대를 보지 못했으니까. 프로크루스테스의 엽기적인 행각을 부각시키기 위한 사족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쨌든 프로크루스테스의 명성은 그 침대로부터 시작됐다.

 

프로크루스테스는 강도라는 직업에 어울리지 않게 지나가는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해 호의를 베풀었나 보다. 낯선 사람이 그의 침대에까지 누울 정도라면 속마음이야 딴 데 있을지언정 겉으로는 꽤 친절했는 것 같다. 프로크루스테스가 아무리 호의를 베풀더라도 손님이 남의 침대에는 눕지 말았어야 했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엽기 행각은 손님이 침대에 눕는 순간부터 시작됐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침대에 누운 손님은 죄다 죽이고 말았는데  침대보다 키가 작으면 키를 늘려서 죽였고, 침대보다 키가 크면 침대 길이에 맞춰 몸을 잘라 죽였다고 한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지금까지 그리스 신화를 읽으면서 프로크루스테스가 왜 이런 엽기적인 살인 행각을 벌였는지 그 원인이 설명된 부분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 범죄 심리학이라는 게 있었을 리 만무하고, 어찌 되었건 프로크루스테스의 이런 범죄 행각은 오늘날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라는 말로 엽기적인 범죄 행각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사진>구글검색 

 

덫에 걸려 꼬리를 잃게 된 여우가 제 모양이 하도 남부끄러워 사는 보람이 없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모든 여우들에게 자기처럼 꼬리 없애기를 권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러면 제 꼬리 없는 것이 표가 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는 모든 여우들을 불러 모으고 꼬리를 떼내라고 충고했습니다. 꼬리는 소용없는 가외 것에다가 보기 흉하고 달고 다니기가 무겁지 않느냐고 했지요. 그러자 여우 하나가 대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봐, 넌 네 목적을 위해서 이런 충고를 하는 것뿐이야." -민음사 <이솝 우화집> 중에서-

 

'프로크루스테스이 침대'란 타인의 생각은 무시하고 자신의 신념만 강요하는 고집과 아집을 표현할 때 쓰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융통성 없는 사람 이상의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을 빗대어 쓰는 말이다. 자기 체면을 위해 동료의 꼬리를 자르려는 여우나 자신의 기준대로 사람들을 맞추려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엽기 행각은 그야말로 개진도진이다. 이기심과 편견·아집은 일란성 쌍둥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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