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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북 리뷰

[펌]부모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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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로 산다는 것/제니퍼 시니어 지음/이경식 옮김/알에이치코리아 펴냄

 

저자는 2008년 1월 어느 날 첫 아이를 세상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뉴욕매거진’ 기자로 ‘직장맘’이었던 그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한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자식이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보다 결코 더 행복하지 않으며 오히려 몇몇 경우에는 덜 행복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부모가 된다는 것이 부모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아이는 부모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취재하기 시작했다. 2010년 뉴욕매거진에 ‘모든 게 기쁨, 그러나 재미는 전혀 없음’(All joy and no fun)이라는 책 원제와 같은 기사를 냈다. 책은 수년간의 추가 취재, 연구를 보탠 것이다. 저자는 “부모가 된다는 것은 성인의 삶에서 맞이할 수 있는 가장 갑작스럽고 극적인 변화다. 아이를 키우는 일에는 환상과 현실이 공존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현실은 끔찍할 때가 많다. ‘전투 육아’라는 코미디 프로그램까지 나올 정도로 육아와 자녀교육에 몰입하는 한국에서도 낯설지 않은 현실이 연이어 등장한다.


내가 이 아이를 좋아해야 할 이유는 뭐죠

출산 이후 “어린아이는 당신을 불행하게 만든다”라는 모진 말로 축약할 수 있는 현실이 펼쳐진다. 애덤 필립스라는 사람은 이런 말을 했다. “아기는 향기로울 수 있고 사랑스러울 수 있고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어른이라면 너무도 뻔뻔스러워 미치광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모든 특성 또한 가지고 있다.” 아이들은 과잉의 대장이다. 이들은 툭하면 오줌을 싼다. 옷을 갈아입으라고 해도 거부하며 입혀 달라고 조른다. 식탁에서는 요구르트 그릇에 점토를 풍덩 집어넣는다. 집안 곳곳을 뛰어다닌다. 아이가 속옷을 계단 아래로 집어던지고는 좋아 깡충깡충 뛰는 걸 보게 될 줄 출산 전엔 상상이나 했을까. 부모는 응석을 받아줄지 말지 머리를 굴리면서 우스꽝스러운 동시에 가슴 졸이는 협상을 아이와 아침저녁으로 해야 한다.

 

 

사춘기야말로 어려운 시기다. 그리고 “재미 없기로 유명한 양육의 한 단계”다. 아이의 뺨을 비빌 때의 따뜻함, 공 받기를 할 때의 유쾌함은 사라졌다. 사춘기 아이들은 부모와 선생을 속인다. 페이스북만 하고 숙제는 안한다. 남자 아이라면 야한 동영상을 볼지도 모른다. 지하철을 어른 없이 혼자 이용할 정도로 큰 아이들과의 대화는 사라지거나 사나워진다. 문자메시지를 보내도 답장을 하지 않을 때도 있다. 아이들에게 거부당하는 운명을 피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절반의 엄마, 3분의 1의 아빠가 아이의 사춘기 때 정신건강이 나빠진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부모의 위기

부모가 된 사람들이 받는 고문 가운데서 가장 악명 높은 것은 수면 부족이다. 하루 6시간 이하로 잠을 자는 엄마가 누리는 행복감은 7시간 이상 잠을 자는 엄마에 비해 훨씬 낮다. 이 ‘잠’은 자다깨다를 반복하면서 채우는 것이다. 수면 부족은 음주만큼이나 판단력을 흩트린다. 게다가 아이가 침대에 오줌을 쌌다는 것은 곧 시트를 갈고 아이를 씻겨야 하는 ‘가사 노동의 증가’를 뜻한다. 노벨상 수상자인 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 등이 2004년 900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어떤 활동이 가장 큰 즐거움을 주는지 조사했는데 육아는 19개 항목 가운데 16위였다.

아이는 결혼을 구원하는 게 아니라 허물어뜨린다는 연구 조사는 1957년에 이미 나왔다.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특히나 엄마의 위기는 심각하다. 부부 사이 노동 분담은 점점 평등해지지만 아내는 여전히 불평등을 호소한다. 수면 부족, 만성피로, 사회적인 접촉 제한, 직장 생활에 따른 충족감 및 소득의 포기, 늘어난 빨랫감과 다림질감, 더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한다는 죄책감, 낮밤이 따로 없고 휴일도 없이 갓난아기를 돌보아야 하는 장시간 노동, 엉망으로 변해가는 집안 꼴, 임신 뒤부터 늘어난 몸무게를 비롯한 외모 걱정 등등. “당신은 오로지 자기만 생각하지! 난 내가 혼자서 가족을 부양해야 하리라고는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단 말이야!” 미셸 오바마가 남편에게 늘 했던 말이다.

수많은 육아책, 친구와 친척의 조언, 어린 시절의 기억 같은 간접 경험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순 없다. 여행을 가거나 편하게 TV를 보는 등 당연하게 여겼던 자유가 어느 사이엔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아이들이 부모를 미치게 만드는 이유

저자는 전전두엽 피질 등 몇 가지 생물학적 근거를 댄다. 이 피질은 실행 기능을 제어하고 자기 생각과 행동도 조직한다. 미래를 계획, 예측하는 것도 이 피질의 능력이다. 아이는 이 피질이 발달하지 않았다. 자기가 주의 집중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다. 미래를 생각할 수도 없다. 이들에게는 ‘지금 당장’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올바른 논리를 전달하면 충분히 알아들을 것이라는 부모의 믿음은 어른들의 세계, 논리적인 세계에서만 통하는 이야기일 뿐이다.

사춘기를 맞이하기 직전 이 피질은 갑자기 엄청나게 활발히 활동한다. 아이들은 추상적인 내용을 보다 잘 파악하고 여러 다른 관점들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사춘기에도 신호 전송이 보다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신경세포를 둘러싸는 백색 지방질 물질인 미엘린을 보완하는 과정이 여전히 진행된다. 즉 장기적인 차원에서 빚어지는 결과를 추정하거나 복잡한 선택을 해야 하는 일에 서투르다. 강한 자제력도 없고 지혜와 경험도 부족하다. 그래서 시시한 것들을 쓸데없이 주장하면서 여기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열정적으로 쏟는다. “가속 장치는 강력한데 제동 장치는 부실한 자동차와도 같다.” 사춘기 아이들의 뇌는 새로운 시냅스 연결점을 워낙 많이 만들어 내고 도파민을 워낙 많이 분출하기 때문에 어른들의 뇌에 비해서 약물 남용·의존, 비디오 게임이나 음란물에도 취약하다. 

달라진 현실들

저자는 부모가 되는 경험은 수백 가지 점에서 과거와 달라졌다고 말한다. 첫 번째가 선택이다. 과거에 부모는 가족과 공동체에 대한 도덕적 의무, 관습, 경제적 이득 때문에 아이를 낳았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오늘날엔 아이를 소중한 성취로 바라본다. 두번째, 생활이 복잡해졌다. 아이를 키우는 와중에 스마트폰은 계속 울린다. 집에서 일하는 부모의 경우 유·무선 인터넷은 족쇄가 된다. 세번째,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어린이를 바라보는 인식이 달라졌다. 19세기 이전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인정을 베풀지 않았다. 산업혁명 시기 아이들은 공장, 광산, 방앗간에서 일하는 노동자였다. 하지만 이제 아이들은 손아랫사람에서 손윗사람으로, ‘유용한’ 존재에서 ‘보호받는’ 존재로 바뀌었다. 그리고 돈 먹는 하마가 되었다. 사회학자 비비아나 젤라이저는 “경제적으로는 가치가 없지만 정서적으로 무한한 가치를 지닌 존재”라고 말한다.

저자는 문제 의식을 사회적·국가적인 것으로 확대한다. “국가가 아이를 키우는 엄마와 아빠를 도와야 하는 법률적이고 도덕적인 의무를 지는 게 아닐까. 하지만 정치권에서 이런 의견을 공적으로 논할 수 있는 여지를 거의 열어주지 않는다. 복지의 대명사 스웨덴을 떠올리면 미국과 비교가 되어 정말 화가 난다”고 말한다. 2012년 사회학자 로빈 사이먼이 22개 선진국 부모를 대상으로 아이를 키우는 부모와 아닌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도 차이를 조사했다. 두 집단의 격차가 가장 큰 나라가 미국이었다. 부패지수는 낮고 양성평등 수준은 높고 국가가 제공하는 건강보험의 보험료는 낮고 국민이 부담해야 하는 교육비는 적은 국가의 시민들은 육아 문제에 대해서도 낙관적으로 생각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미국 농무부는 2010년 태어난 아이에게 중산층 한 가구가 장차 지출하게 될 돈은 29만5560달러라고 추정했다. 대학 등록금이 포함되지 않은 돈이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먹고사는 걸 걱정해야 한다. 

그저 부모 노릇을 다하는 것일 뿐

하지만 아이가 친숙한 사물과 대화를 나누거나 홀딱 벗고 거실을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가. 머리가 커지면서 “물을 깨트릴 수 있나요” “하늘이 있는 곳은 여기밖에 없나요” 같은 황당무계한 질문을 해대는 이 ‘어린 철학가들’은 또 얼마나 기특한가. 함께 영화를 보고 노래를 부르며 운동하는 일들은 또 어떤가. 부르면 냉큼 달려와 안아주는 것, 악기로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는 것, 커가는 것을 지켜보며 조용히 경이로움에 휩싸이는 것 같은 “그저 그들(아이들) 자신으로 존재하는 상황을 즐기는” 행복도 빼놓을 수 없다. 아이들이 더 커서 좋은 책이라며 툭 던져주며 읽어보라고 할 때 아이들이 자기보다 더 똑똑하고 더 많은 것을 알길 바라는 부모의 기대와 마음은 충족된다. 부모의 85%가 아이들이 어릴 때 그들과 씨름하면서 맺었던 인간적인 관계를 자기 개인의 행복과 충족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뽑은 조사 결과도 있다.

그러나 이런 “기쁨을 온전하게 경험하려면 다른 한편으로는 끔찍한 어떤 것을 필요로 한다.” 잠 자는 아이 모습을 바라보며 무한한 행복감에 젖어들다가도 어떤 끔찍한 일이 아이에게 일어날 것만 같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불길한 기쁨’은 거의 모든 부모가 경험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가 되는 것을 “상실의 가능성에 자신을 내맡기는 일”이자 “어떤 인생도 구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이다. 아이가 어느 날 자기를 훌쩍 떠나갈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랑을 쏟아부어 강하게 키우는 것이 부모가 수행해야 하는 ‘역설의 역할’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삶을 복잡하게 만드는 한편 단순하게 만든다. 저자는 “그것이 인생이다. 그것이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야 하는 삶이다. 거기에는 우리에게 깊은 충족감을 주는 어떤 것이 있다. 아이를 돌보면서 부모도 성장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저 부모 노릇을 다한다는 것, 부모로 산다는 것이 있을 뿐”이다.<출처: 경향신문/육아와 행복은 반비례, 그래도 씨름하며 맺은 인간관계가 가장 큰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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