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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월리에게 스티커를 붙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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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리를 찾아라/윤고은/2012년

 

올해 6월 기준 우리나라 실업률은 3.3%이다. 이 중 청년층 (15~29세) 무려 7.9%로 전체 실업률을 훨씬 상회하고 있으며 전체 실업자 84만 1000명 중 청년 실업자는 32만 7000명에 달한다고 한다. 청년 고용률도 계속 하락해 올해는 40%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 통계만 보면 주위에서 체감하고 있는 실업률에 비해 그리 심각하게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민간연구소의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년 실업자 수는 1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정부와 민간연구소의 실업률 통계는 지나친 괴리가 있다. 심지어 체감 실업률과는 더 큰 차이가 느껴진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

 

정부 통계는 불완전 취업자까지 모두 취업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실업자는 4주 동안 적극적인 구직활동을 해야 하며 취업이 가능하지만 일자리를 얻지 못한 경우를 말한다. 그러다 보니 취업하기 위해 학원에 다니거나 집에서 쉬고 있는 사람은 실업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또 심각한 취업난으로 애초에 구직을 포기한 사람도 정부 통계에서는 실업자에 포함되지 않는다. 게다가 아르바이트 등 일주일에 18시간 이상만 일을 하면 사실상 실업 상태이지만 정부 통계상 공식 실업자로 분류되지 않는다. 그러니 정부 통계와 달리 실제 청년실업은 심각한 수준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정부와 정치권은 여전히 청년실업 해소를 위한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월리는 비정규직

 

윤고은의 소설 <월리를 찾아라>는 청년실업의 심각성과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으려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처절한 몸부림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소설은 누구나 한번쯤 눈이 벌게지도록 찾아봤을 월리에 대한 소개로 시작한다.

 

나는 1987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개성있는 삽화가인 마틴 핸드포드는 내게 '월리'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내 첫 이름은 월리가 아니라 왈도였지만, 스물몇번 국경을 넘으면서 월리, 윌리, 찰리, 발리 등의 이름도 필요해졌다. 나는 출간되자마자 그해의 유명인이 되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내가 한국에 진출한 건 1990년 겨울이었는데, 책을 사지 않은 사람들도 모두 내 이름을 알았고, 설령 이름을 모르더라도 내 인상착의는 익숙했다. 그 인지도에는 25년이 넘도록 한결같은 옷차림도 한몫했다. 나는 늘 빨간색과 흰색으로 된 가로 줄무의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방울 달린 니트 모자를 쓰고 다닌다. 동그란 뿔테 안경과, 올리브색 지팡이, 그리고 같은 색깔의 크로스백도 익숙하다. -<월리를 찾아라> 중에서-

 

월리의 존재감은 청년실업을 바라보는 우리사회의 무관심과 냉소적인 시선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 그지 없다. 월리를 찾아도 그만 안찾아도 그만이다. 찾으면 그저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뿐이다. 수많은 군중 속에서 특이한 복장을 하고 미소를 지어보이지만 좀처럼 찾을 수가 없다. 한편 마틴 핸드포드의 책에서 월리가 없는 페이지는 의미가 없다. 마찬가지로 청년 세대는 국가와 사회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우리의 미래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마틴 핸드포드의 월리가 아닌 우리 사회의 수많은 월리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소설 속 주인공 제이는 어느 사과 유통사에서 하는 홍보 이벤트로 월리 분장을 하고 일당을 받고 일하는 비정규직이다. 리버시티는 거대한 홍보 공간으로 백화점 일곱개를 합친 규모다. 리버시티에서는 물건을 판매하지 않는다. 리버시티를 거쳐간 사람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 다양한 샘플과 체험서비스로 가득찬 곳이다. 리버시티의 유동인구는 하루 30만명이고 그중 80%인 24만명이 오후 12시부터 9시 사이에 몰려 있다. 제이가 월리 분장을 하고 일하는 시간도 이 시간대로 '좋아요' 스티커를 100개 받게 되면 오늘 월리의 일과는 끝난다. 

 

 

비록 비정규직 아르바이트에 불과하지만 리버시티의 유동인구에 비해 월리의 숫자는 턱없이 부족하다. 마틴 핸드포드의 그림 속에서 한 페이지에 월리가 존재하기 위해 400명 정도의 군중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유동인구 24만 명의 리버시티에는 적어도 600명의 월리가 필요하지만 이날 출근한 월리는 모두 60명에 불과했다. 리버시티의 예산 때문이었다. 최저임금 인상과 정년 연장을 핑계로 청년 채용을 줄일 수 밖에 없다는 기업의 논리와 마찬가지다. 어쨌든 제이는 60명 중의 월리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한 셈이다. 

 

몰인간적 생존경쟁

 

제이는 좀체 '좋아요' 스티커를 받지 못한다. 행인들을 가로막고 마치 홍보용 풍선처럼 허우적품을 추고서야 겨우 스티커 세개를 받았다. 그러나 제이가 받은 세개의 스티커는 또다른 월리들의 표적이 되고 말았다. 월리들끼리 스티커를 갈취하기 위해 폭력까지 난무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이번 행사에서 가장 근성있는 월리 한명을 챔피언으로 뽑는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챔피언이 되면 리버시티 이벤트 부문 관리직급으로 취직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챔피언의 조건은 모르지만 리버시티 월리들은 단시간에 백개 채우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심지어 제이를 채용한 이벤트 회사 소장까지 월리 분장을 하고 폭력 현장에 합류해 있었다.

 

제이는 전화를 끊었다. 엉덩이만으로도 제이를 알아볼 수 있다던 소장은 통화 중에 제이의 옆을 스쳐 저만치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제이는 목소리로 소장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 또한 월리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는 제이보다 덩치가 작고 좀더 늙었지만, 좀더 계산적인, 그런 월리였다. -<월리를 찾아라> 중에서-

 

그야말로 생존경쟁이다. 대학이 상아탑으로써의 위상을 잃어버린 지는 이미 오래다. 오직 취업을 위한 스펙쌓기의 장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타인에 대한 배려는 거추장스러운 악세사리에 불과하다. 사회와 기업은 정규직을 무슨 감투마냥 희소성의 공간으로 내몰고 비정규직 양산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이제 비정규직 월리에게는 삶 자체가 생존을 위한 투쟁이다. 진짜 월리가 아니면 나머지는 군중의 몸체만 불려줄 들러리로 전락하고 만다. 몰인간적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 체제는 수많은 의미없는 월리, 낙오자만 양산할 뿐이다. 

 

 

스티커를 받아야 진짜 월리였다. 어쩌면 그 책 『월리를 찾아라』에는 한 페이지당 월리가 한명만 있는 건 아닐지 모른다고, 제이는 생각했다. 어릴 때는 한명이라도 월리를 찾으면 그만이었고, 월리를 찾으면 곧 다음 페이지로 책장을 넘겼지만, 어쩌면 선착순 같은 거였는지도 모른다. 월리는 사실 400명 중에 네다섯명쯤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월리만 정답이 되고, 발견되지 못한 월리는 결국 군중의 몸체만 불려줄 뿐이었다. -<월리를 찾아라> 중에서-

 

결국 제이가 리버시티에서 한 일은 월리가 월리를 찾아다닌 것뿐이었다. 제이는 유리문에 비친 자신을 보았고 줄무늬 티셔츠는 그에게 조금 컸다. 그의 것이 아닌데 굳이 입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제이는 줄무늬 티셔츠와 지팡이를 벗어던지고 리버시티를 떠났다.

 

마틴 핸드포드의 책에서 월리가 없는 페이지는 의미가 없지만 월리만 있는 페이지도 의미가 없긴 마찬가지였다. 제이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무한경쟁 속에서 잃어버린 나를 찾는 과정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청년실업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악순환의 고리로 연결시키고 있다. 등록금 천만원 시대에 학업보다는 아르바이트로 전전해야 하고 졸업 후에는 심각한 취업난의 덫에 걸려 신용불량자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청년실업은 곧바로 만혼이나 싱글족으로 이어지고 이로 인한 저출산의 문제는 미래 경제의 발목을 잡을 게 불보듯 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여전히 청년실업문제가 탁상공론의 주제에 그치고 있고, 사회적 무관심은 어느덧 몸에 밴 습관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을 살아간다. 고용률을 높이기 위해 비정규직 해고라는 살인적인 꼼수 소식마저 들리는 요즘이다. 청년실업은 미래를 말하기 전에 눈앞에 펼쳐진 생존의 문제다. 

 

월리를 찾거든 그냥 지나치지 마세요. '좋아요' 스티커 한 장만 붙여주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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