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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북 리뷰

서른 번 전직남은 있고 나에게는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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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상의 <서른 번 직업을 바꿔야만 했던 남자>/2011년

처음부터 맞지않는 옷이었을까. 때로는 너무 헐렁해서 바닥에 질질 끌리기 일쑤였고 때로는 꽉 조여서 움직일 때마다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7년을 버텼다. 그래, 버텼다는 말이 맞을게다. 7년간 연명했던 시간이라는 더 적절하고 정확한 표현이 있지만 아직 자존심이 남아있는 탓인지 완벽하지 못한 단어 선택이지만 안도의 한숨을 깊이 호흡해 본다. 

나는 내 기억 속에서 7년이라는 시간을 지워야만 하는 것일까. 지울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지만 7년을 하얀 여백으로 방치해 버리면 지금의 나는 일대 혼란에 빠지고 말 것이다. 기억의 일부를 빼앗겨버린 기억상실증 환자처럼 말이다. 지나고 보면 늘 후회한다는 진리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서도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었다고 자위만 하기에는 나의 뇌가 너무 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봉제공장 직공에서 시작해서 대학교수가 되었다는 어느 성공맨의 이야기는 인생의 단맛 쓴맛을 다 체험해 본 지금이야 고개를 끄덕이며 읽을 수 있지만 혈기왕성했던 사회 초년생 시절 읽었다면 킬링 타임으로 전락하고 말았을 것이다. 이 어찌 슬픈 아이러니인가! 도전하기에는 늦었다고 생각하는 나이에 도전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아무튼 인터넷상에서 '따뜻한 카리스마'로 더 유명한 정철상의 책 <서른 번 직업을 바꿔야만 했던 남자>는 인생의 터닝 포인트에 선 내가 그동안 부족했던 게 무엇이었을까를 잠시 생각하게 한다. 왜 누구는 자신의 성공담으로 많은 사람들의 멘토가 되고 또 누구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점에서 또다른 방황을 시작해야만 하는 것일까.

열정. 그게 삶이건 일이건 어딘가에 열정을 쏟는 사람에게 이기는 법은 없지싶다. 그런 사람은 꼭 이겨야만 하는 게 공정한 사회다. 나는 대학 시절 취업에 대한 걱정은 거의 하지 않았다. 미래의 나는 항상 안정된 생활 위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다보니 절박함이나 절실함은 없었다. 결국 나는 속물이었다. 학연·지연의 폐해를 얘기하면서 정작 나는 그 테두리 안에서 안주하려 했기 때문이다. 열심히 아니 열정적으로 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손가락 안에 드는 명문대라는 자부심은 최소한 안정적인 생활은 보장해 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이러니 내가 속물일 수밖에.

대학생활이 낭만 모드에서 취업모드로 바뀔 즘 느닷없이 찾아온 외환위기(IMF)는 나뿐만 아니라 우리 세대의 삶과 미래를 송두리째 바꿔놓고 말았다. 전혀 새로운 환경 심지어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무한경쟁, 승자독식의 새 패러다임은 비판의 대상과 동시에 내가 결국 헤쳐나가야만 했던 현실이었다. 그러나 당시 나에게는 능력도 없었거니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도 없었다. 사회를 보는 무사안일보다는 쓸데없는 자만과 속물 근성에 젖어있어서다.

숨이 찼다. 숨쉬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하늘이 까맣게 내려앉는 듯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승무원이 "도대체 달리는 열차를 왜 세웠습니까? 무슨 일입니까?" 하고 물었다. 나는 숨을 헐떡거리면서 "꼭 타야 하거든요……"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서른 번 직업을 바꿔야만 했던 남자> '달리는 열차도 세운 남자' 중에서-

이런 열정 때문에 서른 번이나 직업을 바꾼 저자의 직업관은 뭇 전직맨들의 그것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만의 목표를 향한 열정이 오롯이 녹아난 게 바로 그의 화려한(?) 전직 전력이다. 그는 어쩌면 직업을 바꿀 때마다 삶의 노하우와 열정을 하나씩 쌓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매사에 전전긍긍하는 나와는 너무도 비교된다. 

실패와 도전 그러고 보니 나도 꽤 많은 직업을 가졌었다. 전문지 기자, 보험사 영업사원, 여행사 직원…개인사업까지. 그러나 불행히도 지금 돌이켜보면 직업을 바꿀 때마다 업그레이드 된 나 자신을 발견할 수가 없다. 실패를 단절로 여겼기 때문이다. 보잘 것없는 경험들이 미래를 준비할 소중한 노하우가 된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지금이야 실패가 아름답다고 주장한 저자의 말을 이해하지만 소시적에도 이해했다면 그건 분명 가식이다.

모두 잘못된 내 탐욕에서 비롯한 벌칙이었다. 직장에서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안일하게 시간을 보내던 나태함이 만들어낸 실패였다. 이후로 주식 투자는 완전히 그만뒀다. 아무리 좋은 투자 정보가 있다고 해도 흔들리지 않았다. 설령 잠시 벌었다 하더라도 끝없는 탐욕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기 쉬운 것이 직접 투자임을 쓰디쓴 경험으로 배웠기 때문이다. -<서른 번 직업을 바꿔야만 했던 남자> '한 방에 성공하는 인생이라면 실패도 한순간이다' 중에서-

저자는 직업을 다양하게 바꾸면서 또는 실패를 거듭하고 그때마다 새로운 도전을 반복하는 경험을 통해 스스로 더 성숙해지고 강해졌던 것이다. 즉 실패가 거듭될수록 그 확률은 줄어들게 마련이다. 나는 미처 실패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어느덧 저자의 터닝 포인트가 됐다는 나이를 훌쩍 넘고 말았다. 사실은 막막하다. 저자의 제안대로 20년 후를 상상해 보면 이제는 사회적인 성공보다는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위한 준비를 시작해야 할 나이가 되었다. 그간의 삶과 직업을 통해 깨닫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새롭게 짚어보고 또 하나의 도전을 시작해야 한다. 과연 나는 할 수 있을까.

자기 계발서의 가장 큰 단점은 성공한 사람들의 뒷얘기가 너무도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지나치게 정신력만을 강조한다. 과거 스포츠 경기가 그랬던 것처럼. 나를 둘러싼 사회적 환경은 나몰라라 한채 개인의 역량만을 주장하다보니 독자들에게는 그려지지 않는 그림으로밖에 다가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사회가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은 확대되어만 가는 상황에서 자기 계발서의 지나친 개인 역량 강조는 자칫 자격지심을 유발할 수도 있다. 나 또한 그렇게 느낄 때가 있었다. 

<서른 번 직업을 바꿔야만 했던 남자>의 저자 정철상은 개인 역량만을 또 정신력만을 강조하지 않는다. 개인을 지배하는 우리 사회의 모순과 문제들을 누구보다도 절실히 고민했던 저자는 많은 젊은이들의 고민상담을 통해 다져진 내공으로 결코 추상적이지도 관념적이지도 않은 성공의 길을 제시해 준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사회에 대해서는 냉철하지만 독자들에게는 그의 닉네임만큼이나 따뜻한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마지막으로 자기 계발서가 도움이 되려면 읽는 이의 확고한 고집이 있어야 한다. 성공을 대부분의 자기 계발서의 주제라고 한다면 성공에 대한 자기만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 많은 자기 계발서는 성공을 객관화시켜 보여주지만 실제 성공의 개념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것이다. 남들이 볼 때 보잘 것 없지만 나에게는 성공의 기준일 수 있고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부화뇌동하지 않고 자기만의 성공 기준을 확실히 하고 읽을 때 자기 계발서는 현실적인 어드바이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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