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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그리스

'오미크론' 확산과 반인반수 종족 '켄타우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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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이 끝났나 싶었는데 또 다시 기존의 오미크론보다 훨씬 강력한 전파력을 가진 BA.2.75의 확산으로 전세계가 다시 코로나 정국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는 인도에서 처음 발견된 이후 미국, 캐나다, 독일, 호주 등으로 확산되었으며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발견되었다. 전문가들은 BA.2.75가 이전 변이들과 다르다는 의미에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인반수의 이름을 따 ‘켄타우로스Centaurus’라는 별칭을 붙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에 발견된 새 변이 바이러스를 왜 ‘켄타우로스’라고 부르는지에 대한 설명이 썩 와 닿지는 않는다. 어쨌든 여기서는 코로나 팬데믹을 잘 이겨 내길 기원하며 그리스 신화 속 켄타우로스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켄타우로스Centaur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인반마(半人半馬)의 창조물이었다. 켄타우로스의 머리와 팔, 몸통은 사람이었고 허리는 말의 몸과 다리가 연결되어 있었다. 켄타우로스는 야만과 통제되지 않는 혼돈을 상징했고 그리스의 건축과 도자기 장식에 자주 표현되었다. 켄타우로스의 야만적이고 호색적인 명성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신화에서 그들 중 일부는 최소 그들이 술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 때에 한해 그렇게 비호의적으로 묘사되지는 않았다. 켄타우로스는 우리가 예의를 갖추지 못하고 우리의 능력과 이성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인간 모두가 직면하게 될 위험에 대한 조심스러운 은유일 것이다.

 

켄타우로스 종족의 아버지는 헤라와 사랑을 나눈 익시온의 자손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헤라는 제우스가 헤라에게 불경한 욕망을 품은 익시온을 속이기 위해 제우스가 구름으로 만든 가짜 헤라였다. 켄타우로스는 인간의 법이 미치지 않는 테살리아의 숲에 살았다. 당시 테살리아에는 말을 타고 황소를 사냥하는 전통이 있었고 켄타우로스라는 말 자체가 원래 ‘황소를 죽이는 자’를 의미했기 때문에 이 신화적 생명체들은 실제로 현실에서 근거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테살리아의 기병들은 너무 능숙해서 말과 하나가 된 것처럼 보였을 것이고 이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는 이들에 의해 켄타우로스 신화가 생겨났을 것이다.

 

 

아마도 가장 유명한 켄타우로스는 키론Chiron(또는 케이론Cheiron)이었을 것이다. 좀 더 문명화된 켄타우로스 키론은 그의 위대한 지혜로 유명했으며 의술의 신 아스클레오피스, 영웅 헤라클레스, 아킬레우스, 이아손, 이아손의 아들 메데우스 등의 스승이었다. 그는 신화에서 실루엣이었으며 단지 버금 신에 불과했으며 그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거의 없는 상태다. 헤시오도스에 따르면 키론은 필리라(대양의 신 오케아노스의 딸)의 아들이었다. 그는 님페 카리클로와 결혼했다. 키론은 또한 펠리온 산의 숲에 산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짧은 튜닉(고대 그리스나 로마인들이 입던, 소매가 없고 무릎까지 내려오는 헐렁한 웃옷)과 망토를 입고 종종 여우나 토끼 등 사냥한 동물을 매단 나뭇가지를 어깨에 걸치고 다니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아마도 그의 명성이 그를 가장 문명화된 켄타우로스로 보여주듯 그의 앞다리는 종종 인간의 것이고 다른 켄타우로스에 비해 털이 덜 나 있다.

 

신화에서 키론은 펠레우스(아이아코스의 아들이자 아킬레우스의 아버지)의 스승이었다. 일반적으로 펠레우스는 네레이드 테티스와 결혼했다. 이 결혼식은 그리스 신화에서 중요한 사건이었으며 그리스 예술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이 부부의 아들 아킬레우스는 어린 시절 키론에게 맡겨져 교육을 받았다. 이 위대한 영웅은 또한 키론이 펠레우스에게 준 무시무시한 창을 물려받았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 따르면 이 창은 매우 크고 무거워서 오직 아킬레우스만이 능숙하게 휘두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키론만큼이나 유명한 켄타우로스로는 헤라클레스가 에우리스테우스가 부과한 과업 중 하나인 거대한 멧돼지를 사냥하는 동안 그를 도운 폴로스일 것이다. 필로스는 헤라클레스에게 음식과 동굴을 제공했으며 그들은 디오니소스가 준 특별한 선물이자 모든 켄타우로스의 것이었던 포도주로 가득찬 거대한 피토스 항아리를 함께 마셨다. 그러나 포도주 냄새에 이끌린 다른 켄타우로스들이 연회장을 침입해 연회장을 부수기 시작했다. 보다 못한 헤라클레스가 나섰다. 하지만 켄타우로스는 이 위대한 영웅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싸움은 예상대로 일방적이었다. 불행하게도 이 혼란 속에서 헤라클레스는 우연히 히드라의 피를 묻힌 독화살로 키론을 죽였다. 폴로스 역시 이 사건에서 독이 든 화살을 자신의 발에 떨어뜨려 죽고 말았다.

 

우리가 아는 세 번째 켄타우로스는 네소스로 그 또한 어리석게도 헤라클레스와 싸움을 벌였다. 영웅과 그의 새 아내 데이아네이라가 티린스로 가는 길에 에베누스 강을 건너야 했다. 네소스는 데이아네이라에게 강을 건너도록 도와주겠다고 하면서 그녀를 추행했다. 헤라클레스는 재빨리 네소스에게 독화살을 날렸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 도자기에는 헤라클레스가 몽둥이나 검으로 네소스를 공격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죽어가던 네소스는 숨을 몰아쉬며 데이아네이라에게 독이 가득한 그의 피를 모아 태양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항아리에 보관하고 헤라클레스의 사랑이 식으며 사랑의 묘약으로 쓰라며 그녀에게 건넸다. 실제로 훗날 남편과 이올레 사이의 불륜설이 나돌면서 데이아네이라는 헤라클레스의 사랑을 되찾기 위해 네소스의 피로 망토를 적신 후 영웅에게 입혔다. 헤라클레스는 피부에 묻은 독 때문에 미쳐 버렸고 오이테 산의 장작더미 위에 몸을 던졌다. 데이아네이라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비극의 결과 헤라클레스는 신들에 의해 올림포스 산에 올려져 불멸이 되었으며 이곳에서 젊음의 여신 헤베와 결혼했다.

 

켄타우로마키아는 고대 그리스 건축물 특히 신전의 장식 조각에 대한 인기있는 주제였다. 테살리아 숲에 살았던 폭력적이고 잔인한 종족이었던 켄타우로스에 반해 그들 옆에는 전설적인 법을 준수하는 라피타이인들이 살고 있었다. 라피타이인들의 통치자이자 켄타우로스의 조상이었던 익시온의 죽음 이후 권력 공백이 생겼다. 이 때 켄타우로스 종족과 라피타이인들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 바로 켄타우로마키아이다. 켄타우로마키아는 종종 문명과 야만 사이의 투쟁에 대한 은유로 묘사되고 있다. 어떤 신화학자들은 켄타우로마키아를 기원전 5세기 경 페르시아에 대한 그리스의 승리를 빗댄 은유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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