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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책 이야기

유토피아를 향한 또 다른 열망, 디스토피아 소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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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꽝스러운 외모, 그러나 의리는 하나만은 끝내주었던 포비를 기억하는가! 30대 중반을 넘긴 한국 사람이라면 [미래소년 코난]에 추억이 아련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코난, 라나, 라오 박사, 악당 레프카...각자 역할이 분명한 캐릭터들이 있었지만 나는 왠지 코난과 라나를 졸졸 따라다니던 포비에 대한 기억이 더 생생하다. 나이가 들고서야 알게 됐지만 [미래소년 코난]은 일본의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이다. 30여년 전에 미래사회를 그렸던 이 만화영화의 미래는 2008년이었다. 벌써 2년이나 지난 과거에 되어 버렸으니 세월의 무상함이 새삼 느껴진다.

새삼스럽게 [미래소년 코난]을 들먹이는 것은 이 만화영화의 배경이 다름아닌 디스토피아적 미래 지구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미래가 이미 과거가 되어 버렸지만 말이다. 30년 후 미래 즉 2008년 지구는 가공할 무기가 등장한 전쟁으로 인해 대륙이 바닷속으로 가라앉았고 거기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내친김에 어릴 적 추억을 하나만 더 떠올려보자. 철이와 메텔이 등장하는 [은하철도 999], 우리나라 만화로 알고 보았던 이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물론 일본 만화영화다. [은하철도 999]를 굳이 따지자면 유토피아 속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서기 2221년 과학문명의 발달로 인간은 기계의 몸체에 정신을 불어넣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 그러나 영원한 생명을 얻은 사람들은 부자들에 국한되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기계의 몸체를 얻을 수 없었을뿐더러 기계인간으로부터 지배까지 받게 되었다. 철이와 메텔의 안드로메다를 향한 여행은 이 기계몸체를 얻기 위해서였다. 참고로 철이의 원래 이름은 호시노 데츠로라고 한다.

디스토피아 소설의 기저에는 유토피아에 대한 열망이 자리하고 있다. 디스토피아 소설의 작가들도 결국에는 유토피아를 꿈꾸지 않겠는가! 문제는 과학의 발달이 오로지 선의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욕망으로 유토피아는 언제고 디스토피아가 될 수 있다는 경고인 셈이다. 여기에 디스토피아 소설의 가치가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라고 본다. 그렇다면 인간의 그릇된 욕망을 그린 디스토피아 소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미래소년 코난]의 원작은 [살아남은 사람들]이라는 SF소설이라고 한다. 미국의 소설가 알렉산더 힐 케이(Alexander Hill Key, 1904~1979)의 [살아남은 사람들]은 세계3차대전으로 멸망한 지구에서 살아남은 코난과 라나 등이 원시공동체를 이루며 인더스트리아라는 새로운 문명과의 대립을 그리고 있다.

디스토피아 소설의 백미라고 하면 역시 조지 오웰(Eric Arthur Blair, 1903~1950)의 [동물농장]과 [1984년]을 꼽을 수 있다. 조지 오웰이 이 두 소설에서 그린 디스토피아는 인간성 말살의 전체주의를 의미한다. 평등사회를 쟁취한 동물농장에서 돼지인 나폴레옹은 특권을 누리며 인간들에게 지배당하던 시절보다 더 혹독한 착취를 하게 된다. 또 [1984년]에서는 빅브라더에 의한 전체주의 사회를 그리고 있다.

조지 오웰보다 알려지진 않았지만 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 소설에 영향을 준 이가 있었으니 러시아의 작가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마찐(1884~1937)이다. 자마찐은 그의 소설 [우리들]을 통해 개인이 사라진 1인이 통치하는 전체주의를 그리고 있다. 즉 1인 통제의 단일제국만이 우연성과 맹목성, 비과학성의 부조리를 뛰어넘을 수 있는 유토피아라는 것이다. 우연성과 맹목성, 비과학성의 부조리는 국가의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는 당시 러시아의 전체주의적 공산주의를 풍자한 것이기도 하지만 산업사회의 가속화로 생긴 물질만능의 비인간화와 획일화에 비판이기도 하다.

전체주의가 지배하는 디스토피아를 그린 소설로는 영국 작각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 1894~1963)의 <멋진 신세계>를 꼽을 수 있다. 여기서 인간은 출생에서부터 대량생산되어지고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운명(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을 타고나게 된다. 이게 과연 행복한 사회일까? 결국 야만인 '존'은 과학에 종속된 인간과 그 인간들이 구성한 사회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불행하더라도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고 개척하는 자유를 요구하게 된다. 이밖에 안드레이 플라토노프(1899~1951)의 [코틀로반]도 대표적인 디스토피아 소설로 손색이 없다.

로빈 쿡은 [코마], [DNA] 등을 통해 생명공학의 발달이 가져올 수 있는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려내기도 한다.

유토피아 소설이 현실을 반영한 공상이라면 디스토피아 소설은 좀 더 현실적인, 예측가능한 미래일 수도 있다. 과학문명과 지식산업의 발달이 인간의 그릇된 욕망과 결합된다면 디스토피아는 공상이 아닌 현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디스토피아 소설들은 이런 인간의 그릇된 욕망에 대한 경고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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