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화와 전설/한국

연오랑 세오녀가 일본으로 간 까닭은?

반응형

신화를 읽다보면 늘 궁금한 게 있다. 신화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과학으로 증명되지 않는다고 해서 모두 픽션으로 치부해도 될까? 정말 신들은 존재했을까? 유아적 호기심같지만 신화에 푹 빠지다 보면 결코 지나칠 수 없는 참새 방앗간과도 같다. 어린 헤라클레스가 헤라의 젖을 너무 세게 물어 그 젖이 흘러 은하수가 되었다고 하는데 사실일까? 무수한 별들이 빼곡히 박힌 밤하늘을 바라본다. 아니 도심 속 밤하늘엔 신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내가 신화를 읽는 건 신화의 진실을 믿기 때문이다. 진실이란 신의 존재가 아니다. 신들이 전하는 메시지의 진실이다. 신화 속에서는 신이 인간들을 창조했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신을 만든 건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들은 신을 통해 하고 싶은 얘기들이 있었을 것이다. 신화는 논픽션(Nonfiction)을 픽션(Fiction)의 형태로 표현한 경우가 많다.

 

 

일연의 [삼국유사]에는 연오랑과 세오녀에 관한 신화가 나온다. 연오랑과 세오녀는 실존했을까? 그들은 왜 하필 일본으로 갔을까? [삼국유사]의 기이(紀異)편에 전하는 연오랑 세오녀 신화의 내용은 대강 이렇다.


 

 

신라 제 8대 아달라왕때(AD 157년) 동해 바닷가에는 연오랑과 세오녀 부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날 연오랑은 바위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 왕이 되었다. 남편을 기다리던 세오녀는 바닷가 바위 위에 올라가 망망대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바위는 연오랑에게 했던 것처럼 세오녀를 싣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다시 상봉한 부부는 왕과 왕비로 일본을 다스리게 되었다. 이 때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빛을 잃어 버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신라에 있던 해와 달의 정기가 일본으로 가 버렸다는 점술가의 말을 들은 왕은 사자를 일본으로 보내 연오랑과 세오녀를 찾았다. 신라의 사자를 만난 연오랑은 세오녀가 짠 비단으로 하늘에 제사를 드리면 해와 달이 잃었던 빛을 되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왕이 연오랑의 말대로 세오녀가 짠 비단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니 해와 달의 정기가 전과 같아졌다고 한다. 이에 왕은 그 비단을 귀비고(貴妃庫)라는 창고에 보관했다고 한다.

 

 

KBS [역사 스페셜]에 따르면 일본 시마네현 오키섬에는 <이마지 유래기>라는 역사책이 있는데 오키섬에 최초로 도착한 사람이 사로국(신라)에서 온 남자와 여자라는 내용이 있다고 한다. 당시 한반도는 고구려, 백제, 신라 뿐만 아니라 가야가 여러 부족형태로 존재했다는 사실을 볼 때 사로국이란 가야의 여러 부족 중 하나였을 가능성이 높다. 연오랑 세오녀 신화가 일본에서도 비슷하게 전해지는 것은 이들이 일본에 제철기술과 직조기술을 전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연오랑 세오녀는 왜 일본으로 갔을까?

 

 

연오랑 세오녀 신화가 배경이 되는 곳이 경북 포항 영일 일대다. 이곳에서 해류와 바람을 이용하면 일본 시마네현에 닿는다고 한다. 신라가 562년 가야를 완전히 정복했으니 연오랑 세오녀 신화가 전하는 157년은 신라의 가야 정복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연오랑과 세오녀는 가야의 한 부족을 이끈 우두머리 부부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 부족이 신라에 패망하자 해류를 타고 일본으로 탈출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가야하면 철기문화가 발달했던 국가로 알려졌다.

 

신화에 전하는 연오랑 세오녀가 일본으로 가자 해와 달이 없어졌다는 표현은 제철기술자들이 연오랑 세오녀와 함께 일본으로 탈출했기 때문에 대장간의 불꽃이 사라진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연오랑과 세오녀 이름에 등장하는 '오(烏)'자가 이런 추정을 뒷받침해 준다.  '오(烏)'는 검다는 뜻으로 제철과정에서 숯을 사용하므로 이들의 얼굴이 검다는 의미로 신화 주인공을 이름을 이렇게 붙인 것으로 추정된다. 또 세오녀의 '세(細)'는 옷을 짜다라는 의미로 이들이 제철기술과 함께 일본에 전해준 문명이 직조기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삼국유사]는 우리 민족이 일본에 전파해준 고도의 문명을 연오랑 세오녀라는 신화를 통해 표현했던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이런 성과에 힘입어 연오랑 세오녀 신화의 근거지인 포항지역에서는 연오랑과 세오녀가 실존했다는 근거를 밝히기 위한 연구소도 설립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연오랑 세오녀 신화는 원래 박인량의 [수이전]에 먼저 등장하나 [수이전]에는 전하지 않고 일연이 [삼국유사]에 추가함으로써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연오랑 세오녀 신화의 철저한 역사적 고증을 통해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가는 일본의 고질적인 역사왜곡에 일침을 가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