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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그리스

신들은 어떻게 꽃이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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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어머니'라 불리는 탤런트 김혜자는 유엔난민홍보대사로도 많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녀가 쓴 책 중에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왜 하필 꽃일까? 누구나 동의하듯 꽃은 사랑이다. 가장 맑고 순수한 사랑의 표현이 꽃이다. 연인에게 프로포즈할 때도 꽃을 빼놓는 법은 없다. 아무리 격한 감정에 휩싸여 있더라도 꽃을 보고 얼굴을 찡그리는 사람은 없다. 꽃이 주는 마력이자 상징이다.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아이들에 대한 그녀의 사랑을 대변해 주는 제목이기도 하다.

신화가 전해주는 꽃의 유래도 슬프기는 하지만 그 주제는 사랑이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꽃으로 환생시켜 변치않는 사랑의 약속을 지키고자 한다. 신화를 믿건 안믿건 우리가 사랑을 꽃으로 대신하는 것도 이런 신화의 상징을 믿기 때문은 아닐까?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를 읽으면서 꽃과 관련된 이야기를 몇 개만 추려보았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지만 들을 때마다 가슴시린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다음에 소개하는 꽃들의 원산지는 당연히 그리스 신화의 무대가 된 지중해 연안일 수밖에 없다. 사랑의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아레스의 질투? 아프로디테의 사랑? 아네모네 anemone

고대 키프로스 섬에는 키누라스라는 왕이 살고 있었다. 키누라스에게는 스뮈르나라는 딸이 있었는데 어찌나 예뻤던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시샘할 정도였다. 신들의 질투는 항상 상상 그 이상이다. 아프로디테는 아들 에로스에게 스뮈르나가 처음 본 남성에게 견딜 수 없는 사랑을 하게 만들라고 명령했다. 스뮈르나가 에로스의 황금화살을 맞고 처음 본 남성이 아버지 키누라스였다니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아버지에게 참을 수 없는 욕정을 느낀 스뮈르나는 급기야 아버지가 술에 취한 틈을 타 동침을 해서 아이까지 임신하고 만다. 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결실을 알게 된 키누라스왕은 딸인 스뮈르나를 죽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신의 질투가 비극적 종말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아프로디테는 스뮈르나가 아버지 키누라스왕의 칼에 죽임을 당하는 찰나 스뮈르나를 몰약나무로 변신하게 했다.

훗날 아프로디테는 이 몰약나무의 껍질을 벗기고 아이를 한 명 꺼냈는데 이 아이가 바로 아도니스다.  몰약나무로 변신할 당시 스뮈르나가 아버지의 자식을 임신하고 있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프로디테 여신의 사랑에 대한 욕망을 누가 말릴 수 있을까! 아프로디테는 몰약나무에서 꺼낸 아도니스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또 아프로디테를 열렬히 사랑했던 신이 있었으니 바로 전쟁의 신 아레스다. 아레스는 아프로디테의 사랑을 받고 있던 아도니스가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멧돼지로 둔갑한 아레스는 아도니스의 옆구리를 어금니로 찔러 죽이고 만다. 이 때 아프로디테가 아도니스의 시신에 넥타르를 뿌려 꽃으로 피어나게 했으니 이 꽃이 바로 '아네모네'라고 한다.

자기를 사랑한 슬픈 사랑, 수선화 narcissus

강의 요정 리리오페는 강의 신 케피소스에게 순결을 잃었는데 여기서 태어난 이가 바로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청년 나르키쏘스였다. 그런데 나르키쏘스는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운명(?)을 살아야만 했다. 나르키쏘스가 태어날 당시 리리오페는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에게 아이의 운명을 물어보았는데 자신을 알지 못하면 천수를 누린다고 대답했다.

어느날 나르키쏘스는 산에 사냥을 하러 나갔다. 한찬 사냥을 즐기다 갈증을 해소하려고 옹달샘을 찾았다. 테이레시아스의 예언대로 나르키쏘스는 옹달샘에 비친 자신을 모습을 보고 말았다.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나르키쏘스는 옹달샘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자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이 때 숲의 요정 에코(메아리)는 나르키쏘스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고 참을 수 없는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옹달샘에 비친 자신을 사랑하고 만 나르키쏘스에게 에코가 눈에 보일 리 없었다. 심지어 나르키쏘스는 에코의 구애를 무시해 버리기 일쑤였다. 결국 에코는 수치심을 이기지 못하고 목소리만 남긴채 재가 되어 사라지고 말았다.

한편 나르키쏘스는 붙잡을 수도 안을 수도 없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하루 하루 여위어 갔다. 결국 나르키쏘스는 옹달샘 옆 풀밭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숲의 요정들이 나르키쏘스의 죽음을 애도하며 장례를 치르려고 했으나 그의 시신은 온데간데 없고 그가 있던 자리에는 꽃 한 송이가 피어있었다고 한다. 이 꽃이 바로 수선화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히아신스 hyacinth

태양신 아폴론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유명하다. 아폴론은 남자를 사랑하곤 했는데 아들을 사랑하기도 했고(백조 신화) 히아킨토스라는 청년을 사랑하기도 했다.

특히 아폴론의 히아킨토스라는 청년에 대한 사랑은 각별했다. 운동할 때나 사냥할 때 항상 히아킨토스를 데리고 다녔다. 어느날 아폴론은 히아킨토스와 원반던지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어떤 사랑이건 질투하는 자가 없으면 사랑의 깊이를 알 수 없는 법. 아폴론이 히아킨토스에게 원반을 던졌을 때 제피로스(서풍)는 원반을 히아킨토스의 머리로 날리고 말았다. 아폴론은 정신을 잃고 쓰러진 히아킨토스를 안고 통곡했다.

아폴론이 히아킨토스를 부둥켜 안고 있는 사이 히아킨토스의 이마에서 흐른 피는 한 곳에 모여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났다. 아폴론은 이 꽃잎에 히아킨토스의 이름을 아로새겼다. 우리가 보고 있는 히아신스는 이 때 아폴론이 히아킨토스의 이름을 아로새긴 그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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