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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0.13 책이 무서운 당신이 책과 친해지는 방법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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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앞에서 머뭇거리는 당신에게/김은섭/지식공간/2012

 

2002 한일 월드컵이 시작되기 직전인 5월 어느 날에 대전으로 생활 터전을 옮겼으니 벌써 햇수로 11년이 되었다. 타향도 정들면 고향이라고 일 년에 몇 번 찾는 고향이 때로는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낯선 문화에 적응하기 위해 음식만한 게 있을까. 대전에 내려와 1년 가까이를 맛집 탐방에 열심이었던 이유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 당시 가장 자주 찾았던 식당이 바로, 으느정이 거리가 끝나고 삼겹살 골목이 시작되는 지점 모퉁이에 자리잡은 춘천 닭갈비였다. 당시만 해도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라 대전이라는 낯선 이름과 친해지기에는 딱 알맞은 장소였던 것 같다. 지금도 그 자리에 있는지 익숙함은 때로는 게으름으로 표현되기도 하나보다.

 

타향의 설움을 달래주었던 춘천 닭갈비 프랜차이즈 성공 신화의 주인공을 만났다. 그는 프랜차이즈 사업에 뛰어들어 성공한 것도 오로지 책 때문이란다. 스스로를 활자 중독자라고 말한 그는 선천적으로 책과 거리가 멀었다며 뒤늦은 나이에 책과 친해질 수 있었던 방법들을, 아니 활자 중독에 빠지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낱낱이 공개하고 있다. <책 앞에서 머뭇거리는 당신에게>의 부제는 '후천적 활자 중독에 빠지는 3가지 방법'이다. 독서를 강요된 학습이 아닌 책을 즐기는 경지에까지 오른 저자의 낭만이 느껴지지 않는가!

 

나에게는 Richboy라는 블로그 닉네임으로 더 익숙한 저자 김은섭은 '즐겁지 않은 책은 버리라'라며 '자기가 읽어서 즐거운 책'을 고르라고 조언한다. 자기계발서를 즐겨 읽지는 않는다. 뻔한 이야기, 교과서에서 다 들었을 법한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자신의 성공에 도취되어 독자들이 처해있는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나를 따르라는 독선과 아집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 앞에서 머뭇거리는 당신에게>는 달랐다. 읽는 내내 정체 모를 호기심에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은 침이 마를 새가 없었다. 정곡을 찌르는 저자의 한마디 한마디에 무한한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었으리라. 한편 읽는 내내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기껏 나 정도 독서량으로 책 좀 읽는다고 고개 빳빳하게 세우고 다녔으니 말이다. 

 

책 앞에서 머뭇거린다는 것은 책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익숙하지 않다는 것, 낯섬의 본질은 반복되면 두려워진다는 것이다. 평생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 손에 책을 쥐어주면 덜컥 겁부터 먹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책에 대한 두려움은 어떻게 떨쳐낼 수 있을까? 저자처럼 낭만적인 활자 중독자는 아니더라도 책과 서슴없이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물론 있다. 저자의 조언 중에 내 얕은 독서 경험으로 공감할 수밖에 없었던 몇 가지만 소개하고자 한다. 나머지는 직접 읽어보시라. 그저그런 자기계발서를 읽었던 것처럼 결코 후회할 일은 없을 것이다.

 

좋은 책은 버려라

 

책과 친해지는 가장 첫 번째는 책에 대한 편견을 버리는 것이다. 좋은 책, 양서를 읽어야 한다는 부담을 떨쳐내야 한다. 해마다 이런저런 기관이나 단체에서 '올해의 책'을 발표하곤 한다. 아무리 책을 읽지 않은 독자도 이 정도 책은 읽어야 지식인이고 지성인 쯤 되는 것처럼 떠들어대지만 저자의 말처럼 독서가 주는 최고의 미덕은 즐거움이다. 즐겁지 않고서야 그 어떤 책인들 내 것이 될리 만무하다. 어떤 전통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독서에 대해 다분히 현학적이다. 만화에 대한 편견이 그렇고 조금이라도 외설적인 장면이 있으면 내용의 앞뒤도 살피지 않고 터부시하는 경향이 그렇다. 우선은 두껍고 어려운 책이라야 '너 책 좀 읽는구나' 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독서가 주는 최고의 미덕은 즐거움이다.

 

나는 1년 동안 집과 학교를 오가는 지하철에서 소설을 읽으면서 '읽는 즐거움'을 알았다. 누가 그랬던가, 에든버러에서 런던까지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가는 것이라고. 소설을 읽으면서 다니는 등하굣길은 10분처럼 짧게 느껴졌고,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그 순간이 너무 좋아서 술자리를 피한 적도 수차례 있었다. 소설이 한창 재미있을 때는 공강 시간 1~2시간의 짬이 기다려졌다. 할리우드 영화의 어느 주인공처럼 맨발로 교내 벤치나 나무 그늘에 앉아 '그래, 다음은 어떻게 될까?'하면서 책장을 펼쳐들고는 했다. 그렇게 조금씩 책 없이는 못 사는 내가 되어갔다. -<책 앞에서 머뭇거리는 당신에게> 중에서-

 

내가 블로그에 우리나라 근현대 단편소설들을 연재하는 것도 책과 친해지기 위한 방편의 하나다. 나는 중고등학교나 대학시절 고전문학이나 인문고전을 꽤 즐겨 읽었다. 그러나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게다가 어줍잖게 사업이란 걸 한답시고 하루가 멀다하고 야근에, 주말마저 직장에 올인하는 생활을 몇 년에 걸쳐 하다보니 누구나 그렇듯 '시간이 없다'는 핑계 아닌 핑계로 차츰 책과 멀어져갔다. 내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적성과는 거리가 먼 사업이라는 것을 결국에는 접어야만 하는 때가 왔다. 물론 남은 것이라곤 빚밖에 없었다. 그렇게 어느 날 문득 뒤를 돌아보니 빈 껍데기만 덩그러니 남겨진 나를 보며 우선은 나를 찾자싶어 구직하는 동안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미 십 년 가까이를 책과 담쌓고 살았는데 플라톤이 제대로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우스개 소리로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자일 뿐이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단편소설이다. 한 시간만 짬을 내면 소설 한 편을 읽을 수 있으니 부담도 없고 학창시절이건 언론보도건 어디에선가 들었던 소설들이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러는 사이 책과의 낯선 재회는 시나브로 오래된 친구처럼 익숙해지고 있다. 책은 읽고 싶은데 아직까지 영 어색하다면 만화든, 잡지든, 신문이든 읽어라. 당신이 모르는 사이 책과 자연스럽게 재밌는 대화를 하게 될 것이다.

 

관심 분야를 찾아라

 

책과의 낯선 만남이 해소되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관심사로 눈을 돌리게 되고 관련 책들에 호기심이 발동하게 될 것이다. 읽는 즐거움을 만끽하지 못하면 결코 찾아오지 못할 과정이라 하겠다. 저자는 스승의 말을 빌어 '항아리 독서론'을 소개하고 있다. 즉 항아리는 한두 바가지 물을 붓는다고 해서 가득차지 않는다. 꾸준히 채워가다보면 마지마 한 바가지를 부었을 때 항아리가 흘러넘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데 이 때 항아리에서 흘러넘치는 것은 마직막에 부었던 물이 아니라 그동안 꾸준히 부어왔던 물 때문이다. 지식 또한 마찬가지다. 그동안 꾸준히 쌓아왔던 크고 작은 지식이 대류현상으로 뒤섞여 밖으로 흘러넘친다는 것이 '항아리 독서론'이다. 

 

저자가 '항아리 독서론'을 제기한 것은 읽는 재미를 자신의 관심분야에 적용해 책이 자아실현의 계기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신문 예찬론을 꺼내 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저자가 IMF라는 최악의 경제상황에서도 관심분야인 창업에 뛰어들어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책과 친해지지 않았으면 한낱 미래의 꿈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듯 모두 70여 권 정도를 탐독하면서 프랜차이즈의 이론과 성공사례들을 메모해 두었더니 서서히 전체적인 사업 방향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나는 책 한 권 분량의 자료와 기획안을 들고 학교 후문 뒤 닭갈비집을 찾아가 사장님을 만나서 다짜고짜 '프랜차이즈 사업을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10분 정도 내 말을 듣던 사장님은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책 앞에서 머뭇거리는 당신에게> 중에서-

 

나이 사십이 넘어 뭔가를 새로 시작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나는 소심하기까지 하다. 어린 시절부터 꿔왔던 꿈을 새로 다져보기도 하고, 새로운 관심 분야를 만들어보기도 하지만 막상 뛰어들라치면 더럭 겁부터 난다. 그렇다고 꿈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우선은 현재 다니는 직장에 최선을 다하면서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다만 현재 근무하는 직장이 워낙 열악한 환경인 관계로 지금 당장의 관심사는 노동 관련 문제들이다. 다행인 것은 꾸준히 신문을 읽어왔고 책읽는 재미를 어느 정도는 느끼고 있는 탓인지 대학시절 어렵게만 느껴졌던 책들이 지금은 술술 읽힌다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리뷰를 써라

 

책과 친해지고 더 나아가 책을 자아실현의 도구로 활용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책을 오롯이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리라. 누군가 말했다,  아무리 어려운 책이라도 백 번을 읽으면 그 내용이 훤히 보인다고. 책을 즐겨읽는 독자들은 열 번만 읽어도 그런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럴진대 백 전을 읽으면야 오죽하겠는가. 그러나 아무리 책읽기를 즐긴다지만 조금은 소모적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리뷰를 써라. 학창시절 깜지를 쓰고, 작가 지망생들이 베껴쓰기를 하는 것도 리뷰의 효과가 책을 백 번 읽는 것과 맞먹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리뷰의 장점으로 네 가지를 든다.

 

첫째, 독서 리뷰는 궁리하게 한다.

둘째, 독서 리뷰는 지혜를 낳는다.

셋째, 독서 리뷰는 요점정리력을 키운다.

넷째, 세상 보는 눈이 밝아진다.

 

저자는 <아티스트 웨이>의 저자 줄리아 카메론이 아내와 이혼 후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에 빠져 살다가 어려움을 극복하게 되었다는 '모닝 페이지'를 추천한다. 모닝 페이지란 매일 세 페이지 글쓰기를 말하는데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을 어떤 형식이나 내용에 구애받지 않고 써내려가는 것이다. 매일 같은 시간 꾸준히 쓰다보면 어느 날 내 잠재의식 속에 숨어있는 영감 같은 것이 생각과 함께 쏟아져 나온다는 게 바로 모닝 페이지다. 사실 매일 세 페이지의 글을 쓴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모닝 페이지가 아주 생소한 글쓰기만은 아니다. 블로그라는 문명의 이기도 있으니 말이다.

 

저자는 억지로 책을 읽었던 시절을 떠올리며 책과 친해지는 방법을 '후천적 활자 중독에 빠지는 방법'이라는 문장으로 대신하고 있다. 활자 중독까지야 아니더라도 독서가 생활의 일부가 되는 데 위에서 소개한 세가지 단계를 경험해 본 독자는 충분히 공감하고도 남을 것이다. 책 속의 책도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문제는 여전히 마음은 있지만 책 앞에만 서면 자신도 모르게 머뭇거리고 마는 독자다.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만큼 멋진 말이 있을까. 또 그만큼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용기는 미인만을 얻어주는 것이 아니다. 책과 친해지고 책을 통해 자아실현을 하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시작할 수 있는 용기.

 

나폴레옹이 전투 중에도 책을 수레 한가득 가지고 다니면서 읽었다는 일화는 믿거나 말거나 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책 속에는 그만큼의 가치가 숨어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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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강여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