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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마지막 표범/엔도 키미오 지음/정유진,이은옥 옮김/이담북스 펴냄

 

살짝 비탈진 마당과 기울어진 듯한 기와지붕의 작은 집. 돌을 쌓아 점토로 굳힌 허리 높이의 토대가 집을 받치고 있었다. 마당에서 보이는 격자문의 창호지는 찢어져 있고, 구멍 난 흙벽은 감색 종이로 막아 붙여 놓았다. 집 측면에 위치한 아궁이 입구는 온돌에 불을 지피는 곳이라 검게 그을려 있었다. 호랑이와 표범이 부부라고 믿고 있었던 순박한 부부가 이 가난한 산골 집의 주인이었다. 남편인 홍갑씨는 젊었을 적부터 사냥을 즐겼는데 총은 사용하지 않고 철사를 말아서 만든 올무만으로 노루나 멧돼지, 꿩 등을 잡았다. 그 해 겨울도 홍갑씨는 올무를 설치해 놓은 뒷산에 올랐다. 한 시간이나 지났을까? 홍갑씨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돌아와서는 소리쳤다.

, , 호랑이가…… 올무에 걸려 날뛰고 있어!”

마침 집에 있었던 아들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아버지가 말한 곳으로 갔다. 호랑이는 허리가 올무에 걸려 옴짝달싹 못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드럼통으로 우리를 만들어 호랑이를 집어넣고 마을로 내려왔다. 잡아 온 호랑이는 아흐레 동안 드럼통 안에서 집토끼를 먹이로 주며 키웠는데 엄청난 식욕 때문에 시장에서 돼지고기나 소고기까지 사와 챙겨주어야만 했다. 이 날 이후로 마을 사람들은 바람 소리만 들어도 호랑이가 아닐까 겁을 먹었다고 한다.

 

울던 아이가 호랑이보다 곶감을 더 무서워했다는 시절의 이야기가 아니다. 불과 52년 전 겨울 소백산맥의 작은 오지 마을에서 있었던 일이다. 마을 사람들이 호랑이라고 믿었던 맹수는 다름아닌 표범이었다. 1962 212, 경상남도 합천군 묘산면 산제리 가야마을 오도산(해발 1,134m)에서 황홍갑씨와 마을 사람들이 잡은 표범은 서울 창경원(현 서울 동물원)으로 옮겨져 12년간 사육되었다. 이 후 더 이상 표범이 발견되지 않아 오도산 표범은 한국의 마지막 표범이라는 타이틀을 갖게 되었다

 

▲1962년 경남 합천군 오도산에서 잡혀 서울 동물원으로 옮겨진 후 12년간 사육된 한국 표범

 

TV 동물의 왕국에서나 볼 수 있었던 표범. 그런 표범이 한국에도 살았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대중에게 알린 사람은 안타깝지만 일본의 동물문학 작가 엔도 키미오다. 2010 <한국호랑이는 왜 사라졌는가?>를 통해 한국 호랑이가 일제의 해수구제정책에 의해 멸종됐다는 사실을 밝혀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엔도 키미오는 이 저서에서 『조선총독부 통계연표』를 인용해 일본이 조선을 개발한다는 명목으로 1919년부터 1942년까지 호랑이와 표범 등을 해수(害獸,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짐승)로 지정하고 관청과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 죽여 없앴다고 폭로한 바 있다. 이 기간 동안 호랑이는 97마리, 표범은 무려 624마리가 사라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은 사람들의 기억 저 편으로 사라진 한국 표범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엔도 키미오가 <한국의 마지막 표범>에서 묘사한 한국 표범은 고양이과 동물 특유의 신비스러운 빛을 띠고 있다고 한다.

 

조선의 표범은 열대지방의 표범에 비해 훨씬 덩치가 크고 털이 많았다. 넓은 이마와 조금 작아 보이는 귀, 두꺼운 입술에 은빛의 수염을 갖고 있었으며, 앞발은 크고 다부졌다. 전체적으로 담황빛을 띠는 가운데, 가슴 부분은 희고 머리에서 등까지 짙은 갈색이 퍼져있다. 그 위에 표범 무늬가 드러나는데 특히 등과 몸 옆쪽에는 커다란 매화 무늬가 있었다. -<한국의 마지막 표범> 중에서-

 

책에서는 한국 표범의 존재에 관한 또 다른 중요한 사실들을 보여주고 있다. 오도산 표범이 잡히고 2~3년 후 이리시(현 익산시)에 있는 교회 목사가 젊은 암컷 표범이 필요하자 않냐며 서울 창경원에 연락이 왔다. 동물원 측에서는 오도산 표범과 짝을 지어 번식시키려 했지만 동물보호에 관한 인식이 전무했던 시절이라 거래 가격이 문제가 되어 끝내 성사되지 못했다고 한다. 당시 동물원 담당자가 퇴직했고 정확한 기록도 남아있지 않지만 1960년대까지 우리나라 남부 뿐만 아니라 서부에도 표범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한국 표범의 존재를 밝힌 엔도 키미오의 <한국의 마지막 표범> 

 

엔도 키미오는 한국 표범에 관한 또 하나의 중요한 사진 한 장을 확보한다. 엔도 키미오는 진돗개가 표범을 잡았다는 1963 1113일 동아일보 기사를 토대로 현장을 직접 방문해서 마을 사람들로부터 당시의 생생한 증언을 들었다. 오도산에서 표범이 잡힌 1년 후인 1963 323. 1962년 표범이 잡혔던 오도산에서 북쪽으로 18킬로미터 떨어진 경상남도 거창군 가야면 대전리 비끼니산에서 또 표범이 발견된 것이다. 진돗개 두 마리를 키우고 있던 황수룡씨는 진돗개 한 마리와 함께 비끼니산을 산책하던 중 갑자기 나타난 표범에게 개 한 마리를 잃었다. 다음 날 황씨는 남은 진돗개를 데리고 동네 사람들과  비끼니산을 다시 올라가 몸길이 1미터, 꼬리 길이 70센티미터의 표범을 사살했다. 불행히도 이 죽은 표범은 대구의 총포상을 거쳐 뱀 가게에 팔리고 말았다. 표범을 잡은 진돗개와 마을 청년들이 죽은 표범과 함께 찍은 사진만이 존재할 뿐이다.

 

죽은 표범을 뱀 가게에 팔아버린 동네 사람들도 그렇지만 표범을 잡은 진돗개에 촛점을 맞춘 동아일보 기사 또한 야생동물 보호에 관한 인식이 전무했던 당시의 시대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게다가 읽는 내내 우리나라에도 표범이 살았다는 충격적인(?) 사실보다 이 엄청난 일을 외국인의 글을 통해 접해야 한다는 사실에 더 기가 막히는 것은 비단 필자의 소회만은 아닐 것이다. 평생을 민화 수집에 힘을 쏟은 한국 민화의 대가이자 책에서 엔도 키미오와 동행하며 한국 표범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 가회민화박물관 조자용 관장도 이런 현실을 개탄한다.

 

우리나라에는 왜 표범이나 호랑이를 소중히 여기는 학자와 작가가 없는 거야! 어째서 일본 사람이 찾으러 다니는 거냐고!”

…중략…

내가 고리타분한 걸까. 미국의 최고학부에서 공부를 했지만 내 고향은 북한의 벽촌이지.그래서 늘 아버지가 말씀하신 정직하게 살아라라는 가르침을 계속 잊지 않고 살아왔어……. 하지만 고속도로가 놓이고, 호랑이는 멸종하고, 마을에서는 신앙이 사라졌지. 선조 대대로 지켜 오던 것들이 모두 없어져 가는데 무엇이 남는단 말인가…….” -<한국의 마지막 표범> 중에서-

 

일제 강점기의 해수구제정책과 한국전쟁이 우리나라 야생동물의 멸종 위기를 재촉했다는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더욱이 한국전쟁 이후 근대화와 산업화가 본격화되면서 환경에 대한 관심이 정책 우선 순위에서 밀려남으로써 한반도에 서식했던 야생동물들은 하나 둘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또 호랑이에 비해 표범은 더더욱 관심 밖의 동물이었다. 그러나 책 표지 그림에서 보듯 조상들이 표범을 민화로 남겼다는 것은 호랑이만큼이나 표범도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들과 역사를 같이 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 표범을 잡은 진돗개와 4명의 청년들 뒤로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있다.  

 

이 책을 기획한 ()한국범보전기금 이 항 대표(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기획 후기에서 조자용 관장의 한탄에 이렇게 화답한다.

 

이 두 권의 책을 기획하고 출판함으로, 한반도에서 사라져간 호랑이와 표범을 위한 진혼곡의 서곡 부분이 겨우 마무리 되었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많은 부분은 관심 있는 한국인 연구자에 의해 후속 연구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잊힌 한반도의 동물,

호랑이와 표범이 스러져 간 쓰라린 이야기.

이들의 슬픈 역사가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에 의해 수집되고 기록되어야 한다는 것도 어찌 보면 무척이나 안타까운 일이지만, 사실 야생의 동물들에게 무슨 국적이 있고 국경이 있으랴. -<한국의 마지막 표범> ‘기획 후기중에서-

 

기획 후기에서 이 항 교수에 따르면 한국 표범은 역사적으로 한반도를 중심으로 중국 동북부와 러시아 연해주 남부에 널리 분포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50마리 정도만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다행인 것은 러시아 정부가 2012 49, 기존의 케드로바야 자연보호구, 바르소니 연방야생동물보호구, 보리소브코 고원지역 야생동물보호구와 중국 접경지대에 있는 표범 서식지를 더해 표범의 보전을 주목적으로 하는 표범의 땅 국립공원(Land of Leopard National Park)” 설립을 공식 발표한 것이다. 이 국립공원은 러시아에서 단 한 종의 야생동물을 위해 설립된 유일한 국립공원이라고 한다.

이 항 교수는 이 표범의 땅 국립공원이 한국 표범 보전에 획기적인 전기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한편 이 항 교수는 엔도 키미오도 확신하지 못했던 DMZ 일대의 한국 표범 생존 가능성에 대해서도 희망 섞인 전망을 내놨다. 표범은 호랑이보다는 훨씬 그 크기가 작기 때문에 먹이 요구량이 작고 따라서 호랑이처럼 넓은 서식영역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DMZ 일대에 회복된 멧돼지, 고라니, 너구리 등의 동물은 표범의 먹이동물로서 충분한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에서의 아무르 표범(한국 표범과 같은 종) 재도입 계획이 성공한다면 남한에서의 표범 재도입 구상도 그 실현 가능성이 더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분단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DMZ가 남과 북의 긴장 완화는 물론 야생동물의 평화지대가 될 수 있다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 오른다.

 

이 항 교수의 말대로 이런 노력들이 결실을 맺어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 누군가가 한국 표범의 귀환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쓰게 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 굳게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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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강여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