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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 신화/게리 어튼 지음/임 웅 옮김/범우사 펴냄

 

1964년 군부의 지지를 업고 페루 대통령에 당선된 페르난도 벨라운데 테리(Fernando Belaúnde Terry)는 쿠스코에서 헬기를 타고 파카리탐보 시 중앙에 위치한 광장에 도착했다. 그는 그곳에서 바라(vara)라고 불렸던 전설상의 나무 지팡이를 받고 지방관리들과 악수를 나눈 뒤 다시 헬기를 이용해 쿠스코를 거쳐 리마의 대통령궁으로 돌아갔다. 벨라운데 테리 전 페루 대통령의 갑작스런 파카리탐보 방문은 두고두고 화제가 되었는데 그의 이런 깜짝 방문은 자신의 대통령직에 정통성을 부여받으려는 속셈이었다.

 

파카리탐보에는 잉카인들의 기원 장소로 알려진 탐보 토코 동굴이 있었기 때문이다. 페루의 초등학교 국정 교과서에서도 잉카인들의 기원 장소로 공식 인정받고 있는 탐보 토코 동굴이 있는 파카리탐보 시 주민들에게 잉카 기원 신화는 자부심의 원천이었고 잉카인들에 대한 기억과 이미지는 아직까지도 엄청난 힘과 의미를 갖고 있다. 군부의 지지를 등에 업고 대통령에 당선된 벨라운데 테리로서는 꼭 거쳐야만 했던 장소였을 것이다.

 

지금의 페루 지역을 중심으로 한 잉카 신화는 잉카 왕의 부활과 천년 왕국의 도래라는 주제로 여전히 안데스인들에게 신성한 믿음의 원천이 되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현재 전하고 있는 잉카 신화가 수천 년 이 지역을 근거로 살았던 안데스인과 잉카인들이 남긴 정신적 소산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문자가 발달하지 못했던 이 지역에서 안데스인과 잉카인들 사이에 회자되던 신화의 원류가 16세기 스페인 침략 이후 연대기 작가들에 의해 씌여졌기 때문이다. 잉카 신화를 읽는데 있어 정치와 종교적으로 왜곡된 부분들을 추려낼 수 있는 것도 그들의 정신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잉카 신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알아두어야 할 사항들이 있다. 우선 안데스인과 잉카인의 차이다. 안데스인이 남아메리카의 서쪽에서 북서 방향으로부터 남동 방향으로 거대한 신경섬유 조직처럼 연결된 안데스 산맥을 근거지로 수천 년 동안 살아왔던 사람들이라면 잉카인은 안데스인 중에서도 지금의 페루를 중심으로 에콰도르와 콜롬비아,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한 잉카 제국의 사람들이다. 잉카인들은 이 지역 최초의 청동기 문화인 잉카 문명을 형성하며 1438년부터 1533년에 걸쳐 존재했다. 그들은 1533년 잉카 제국의 마지막 왕인 사파 잉카가 점령자 스페인에게 살해당할 때까지 안데스 산맥을 주축으로 살아왔다.

 

안데스 신화가 안데스 산맥을 중심으로 퍼져있던 아일루(토지를 소유하고 있던 친족집단)와 종족 그리고 조상과 관련된 신들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으로 안데스 지역에 뿌리내리고 있던 믿음과 관습이라면 잉카 신화는 잉카 귀족을 중심으로 그들의 종교적, 정치적 대리인들이 잉카 제국을 위해 장려했던 믿음과 제례 의식들이 망라된 것으로 제국 내의 모든 집단을 잉카인들의 지배권하에 통합하는 게 목적이었다. 결국 안데스 신화와 잉카 신화는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연결고리를 통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또 하나는 잉카 제국이 네 개의 연합 지역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타후안틴수유(Tahuantinsuyu)는 '네 개의 연합 지역'이라는 의미로 친차이수유, 안티수유, 콜라수유, 쿤티수유로 불렸다. 그 중심에는 잉카 제국의 수도인 쿠스코가 있었다. 쿠스코는 잉카 왕실의 혈통이 유래된 곳이다. 안데스 신화가 잉카 신화로 연결되는 지점은 안데스 신화가 타후안틴수유의  형성과정과 쿠스코에서 비롯된 잉카 제국의 탄생이 신화적으로 묘사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현존하는 잉카 신화의 대부분은 스페인의 연대기 작가들에 의해 채록되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점령자의 입장에서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왜곡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은 어렵잖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스페인 연대기 작가들의 잉카 신화 왜곡은 먼저 자신들의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으로 이루어졌다. 앞서 언급한 대로 잉카 신화의 기원은 파카리탐보(Pacaritambo) 탐보 토코(Tambo Toco) 산의 작은 동굴에서 시작되었다. 탐보 토코에서 네 명의 남자와 네 명의 여자가 나왔는데 이들은 서로 형제 자매간으로 서로 배우자가 되어 잉카 제국의 수도가 될 쿠스코를 향해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잉카인의 기원 신화는 시작된다. 8명의 형제 자매 중 아이아르 만코(Ayar Manco)가 바로 잉카 제국의 초대 왕인 만코 카팍(Manco Capac)이다.

 

그렇다면 탐보 토코에서 나온 8명의 형제 자매는 어디서 왔을까 궁금할 것이다. 여기서 안데스 신화와 잉카 신화의 연속성을 볼 수 있다. 안데스 신화에서 세계의 중심은 티티카카(Titicaca) 호수였다. 티티카카 호수에서 최초의 창조자인 바라코차(Viracocha)가 나타나는데 그의 이름은 '바다 기름', '바다 거품'이라는 의미다. 한편 안데스 신화에는 '땅과 시간을 만든 자'라는 의미의 파차카막(Pachacamac)이라는 또 한 명의 창조자를 볼 수 있는데 파차카막은 잉카의 몇몇 해안 지방에서 유래된 신화의 창조자로 알려졌다. 창조자 비라코차는 최초의 인간을 창조하지만 여느 신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인간은 늘 신의 노여움을 사게 마련이다. 비라코차는 티티카카 호수에서 창조했던 인간들 중 자신의 아들 둘을 제외하고 다른 인간들은 지하로 내쫓았다. 잉카 기원 신화의 주인공들은 이 때 쫓겨난 인간들이다. 

 

어쨌든 만코 카팍은 드디어 쿠스코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잉카 제국을 건설한다. 그러나 연대기 작가들의 잉카 신화 왜곡은 유치하기 짝이 없다. 만코 카팍이 금으로 장식된 화려한 옷을 입고 일출 순간에 후아나카우리 산 위에 서서 자신이 눈부시게 빛나는 신처럼 보이게 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와 그의 가족을 지배자로 받아들이도록 현혹시켰다는 것이다. 또 어떤 연대기 작가는 만코 카팍이 어렸을 때 아버지가 그에게 '태양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는데 파카리탐보의 '어리석은 종족들'(genta bruta)은 그가 진짜 '태양의 아들'이라고 믿었다는 것이다. 결국 만코 카팍은 철저한 계략에 의해서 잉카 제국의 초대 왕이 되었다는 것이 스페인 연대기 작가들이 전하는 잉카의 기원 신화다.

 

 

연대기 작가들에 의한 잉카 신화의 왜곡은 비단 정치적인 목적뿐만은 아니었다. 위에서 언급했던 티티카카 호수에서의 창조자 비라코차는 자신의 두 아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인간들은 모두 지하세계로 내쫓고 두 아들과 함께 다시 창조 여행을 떠난다. 즉 연대기 작가들은 창조자를 삼위일체(세 명의 비라코차)로 간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안데스 신화와 안데스인들이 스페인의 카톨릭교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을 암시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또 안데스 전역에 퍼져있던 다신문화와 미이라 숭배를 우상숭배라는 기독교적 믿음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왜곡시키기도 했다.

 

심지어 창조의 모습을 키가 크고 턱수염이 난 흰 피부를 가진 남자로 묘사하기도 했다. 어떤 연대기 작가는 창조자 비라코차를 예수의 12제자 주 한 명인 사도 도마였다고 주장하기도 했고 또 다른 연대기 작가는 창조자 비라코차를 성 바르톨로뮤(St. Bartholomew)로 간주하기도 했다. 물론 잉카 신화의 심신일체적 요소들이 세계 도처의 수많은 문화에서 발견되고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기독교의 삼위일체설에 따랐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안데스인들이 스페인 식민자들이 도착하기 전부터 기독교들을 따르고 있었다는 일관된 주장은 허황되고 황당할 뿐이다.

 

연대기 작가들에 의한 안데스와 잉카 신화의 왜곡은 스페인 침략의 정당성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이었음은 뻔한 사실이다. 게다가 안데스나 잉카 출신 연대기 작가들까지 이런 왜곡 대열에 합류했다는 것은 카톨릭으로 개종한 그들이 그들의 종교적 신념을 확인받기 위한 일종의 종교적 선택이었을 것이다. 우리도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침략자들에 의한 정신문화 말살을 위한 역사와 신화 왜곡 사례들을 무수히 경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데스 산맥 도처에서 공유되고 있는 잉카인들에 관한 신화는 훗날 인카리(Inkarri)라는 사람에 의해 스페인이 지배하는 세계의 파멸과 앙카 왕이 다시 최고 지배자로 복권된다는 천년 왕국의 도래는 안데스인들의 믿음과 신념으로 때로는 희망이 되어 면면히 내려오고 있다. 침략자들의 활자로 표현된 신화의 왜곡에도 불구하고 고대 안데스인과 잉카인들의 정신만은 결코 왜곡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잉카신화게리 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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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강여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