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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현대인이 게임에 빠질수 밖에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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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라는 이름의 천국/김영하/1996년

 

병아리와 달걀프라이의 차이점은 ‘스스로 깨고 나왔는가?’ 아니면 ‘남이 깨서 나왔는가?’라고 한다. 게임의 절제력 키우기는 이제 부모의 통제방식에서 임파워먼트를 통해 아이들 스스로 통제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임파워먼트, 곧 아이들 스스로 조절하는 힘을 키우려면 무엇보다도 자녀들에게 게임중독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게임을 많이 하게 되면 치매환자처럼 전두엽 기능에 손상이 온다는 연구나 코카인 중독자의 뇌구조와 게임 중독자의 뇌구조가 일치한다는 연구결과 등이 있다. 따라서 게임은 의지만으로 빠져나올 수 없는 중독이라는 질병이 될 수 있다는 위험을 아이들이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겨레> 2012년 1월2일자 인터넷판 기사 중에서-

 

 

게임 중독을 경계하는 기사가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중독되기 전에는 누구나 취미생활의 일부였을 것이다. 어느날 자신도 모르게 헤어나올 수 없는 수렁에 빠진 상태가 중독이다. 분명 치료가 필요하지만 중독은 그럴만큼의 심적 여유를 허용하지 않는다. 특히 '폐인'이라는 신조어가 생길만큼 게임중독은 개인의 영혼을 파멸시킬 뿐만 아니라 갖가지 사회문제를 생산해내는 원인이 되고 있다. 중독까지는 아니더라도 게임에 빠져있는 현대인은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모순적 구조들에 대한 거울인 셈이다. 그렇다면 현대사회의 어떤 모습들이 사람들을 게임에 빠지게 하는 것일까.

 

김영하의 소설 <삼국지라는 이름의 천국>은 컴퓨터 게임이라는 가상현실을 전면에 배치함으로써 새로운 대중문화에 대한 저자의 적극적인 수용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한편 컴퓨터 게임이 요즘을 사는 독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가장 대중적인 소재라는 점에서 독자와의 교감을 중시하는 신세대 작가로서의 면모도 확인할 수 있는 소설이다. 저자가 포착해낸 어느 자동차 세일즈맨의 일상을 통해 현대인이 게임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살펴보고자 한다. 

 

관우, 장비, 마초로 하여금 각가 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선봉에 서게 하고 제갈량을 중진에 포진시키고 후미를 조자룡으로 하여금 방비케 한 후, 하후돈이 지키는 형주성을 공격케 하였다. 관우와 장비가 우회하여 형주성에 접근하는 동안 서남풍이 불었고 이를 틈타 제갈량이 화공(화공)으로 형주성을 공격하니 하후돈의 병사 중 반이 전사하였다. -<삼국지라는 이름의 천국> 중에서-

 

소설 <삼국지라는 이름의 천국>은 이렇게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의 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누구나 알고있는 소설 <삼국지>와는 차이가 있어 보인다. 이유는 일본 코에이사가 발매한 역사 시뮬레이션 게임 '삼국지 시리즈'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탁물, 담뱃갑, 맥주병이 어지러워져 있는 방 안의 묘사에서 알 수 있듯 주인공 그는 컴퓨터 게임, 삼국지 폐인이다. 그에게 삼국지 게임은 제목 그대로 '천국'이다. 그는 자동차 세일즈맨이지만 제 월급에서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한 달에 '한 대'만 팔면서 버티는 현실에는 어떤 열의도 갖고 있지 않다. 그는 탈출하고픈 현실을 가상세계를 통해 대리만족을 얻으며 살아간다. 현실은 그가 어떻게 살든 자신의 의지보다는 주변환경에 의해 자신의 실체가 드러나지만 게임에서는 게임의 규칙만 따르면 언제든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하루가 멀다하게 지점장의 잔소리에 시달리고 믿었던 동료에게는 제대로 뒤통수를 얻어맞는다. 그에게 일상은 그야말로 전쟁이다. 전쟁같은 일상은 그에게 환멸이다. 한편 그가 삶에 환멸을 느끼는 것은 일상 뿐만 아니라 과거의 기억 때문이기도 하다. 대학시절 사회변혁을 꿈꾸던 동기들이 '애국적 사회 진출'과는 전혀 상관없는 곳에 취업해서 옛날 얘기하며 술이나 마시는 그런 변절에 대한 환멸 때문이다. 배 나오고 머리 벗겨진 그 옛날의 4.19세대들이 변해가는 것처럼 말이다.

 

아니다. 얘기는 간단한 것이었다. 바로 이 전화 때문이다. 녀석과 그가 나누었던 대화 속에서 형성되었던 불쾌하게 끈적거리는 이 기류 때문이다. 감색 양복과 꽃무늬 넥타이를 걸치고도 마치 '선'을 대듯이 연락하는 그 기질과의 부조화. 서로를 경멸하고, 때론 연민하면서, 공유하는 것은 과거밖에 없는 사람들이 만나서 이 모든 부조화 속에서 고백성사를 치르는 의식에 대한 예감 때문이다. 고통보다는 고통의 예감이, 패배보다는 패배의 예감이, 페스트보다는 페스트의 예감이, 사랑보다는 사랑의 예감이,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삼국지라는 이름의 천국> 중에서-

 

게임에서는 배신하는 법이 없다. 소설 <삼국지>에서 보여주던 '도원결의' 같은 끈끈한 의리의 세계를 굳이 지키지 않아도 된다. 전투력의 지표가 되는 '지력, 전투력. 카리스마'가 입력된 수치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에 게임 세계에는 배신이 있을 수 없다. 배신이 감지되면 게임자에 의해 응징하면 된다. 그러나 주인공 그는 이길 수 있는 게임을 규칙을 어기면서까지 현실에서의 패배를 가상현실에서도 반복한다. 지기만 하는 유비를 선택하는 것도 그렇고 산동성으로 병력을 집중하지 않고 관우쪽으로 군사를 돌리는 것이 그렇다. 관우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다. 그의 감정이입은 실적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안가리는 지점장을 삼국지 게임의 '위연'과 비교한 대목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냥 튀어나온 것도 아니고 양쪽으로 갈라져 있었다. 반골이다. 그래. 위연이다. 제갈량은 죽으면서 "위연을 조심하라. 그는 반역자의 골상을 가졌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게임 속의 위연도 배신을 밥 먹듯이 했다. 애초에 위연을 데리고 있던 건 그였다. 그러나 적벽전투에서 오나라에 투항했고 그 뒤에 여러 차례 그의 영토를 공격해왔을 뿐 아니라 그의 장수 마속과의 일대일 대결에서 마속을 죽이기까지 했다. 언젠가는 내 너의 목을 반드시 베고 말리라. -<삼국지라는 이름의 천국> 중에서-

 

 

저자는 주인공 그가 게임의 법칙을 어기는 과정을 통해 일상을 환멸을 탈출하고자 가상현실에 빠져들지만 결국 게임세계도 현실세계와 마찬가지로 비정한 생존경쟁이 존재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위연을 처단함으로써 지점장에 대한 복수심에 종지부를 찍는다.

 

위연. 뒤통수가 갈라진 채 튀어나온 자. 힘만 세고 머리는 없는 놈. 차 못 하는 게 어째서 내 죄냐? 차만 좋아봐라. 길 가는 거지에게도 할부로 팔 수 있어. 내가 너에게 전생에 무슨 그리 큰 죄를 지었기에 날 그리 못살게 구는 거야? 이놈의 막장인생이 나도 지긋지긋해. 이 사디스트 자식아. -<삼국지라는 이름의 천국> 중에서-

 

현실세계의 비정함을 탈출하고자 가상세계에 빠져들었지만 결국 현실세계에 대한 환멸을 게임에 적용함으로써 가상현실에서도 패배하고 마는 그는 현대인의 슬픈 자화상이다. 그가 결국 다시 돌아가야만 하는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현실과 가상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게임 중독자의 비애일까. 어쩔 수 없는 생존경쟁의 비정한 세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현대인의 운명일까. 어쨌든 그는 삼국지 게임에서 목이 떨어지는 유비를 자신과 동일시하면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싸움은 끝났다. 모니터는 황혼이 지는 무렵, 망나니에 의해 목이 떨어지는 유비의 모습을 삼차원 그래픽으로 보여준다. 그는 한동안 모니터를 망연히 바라본다. 그러고는 고리 모양으로 걸려 있는 넥타이를 꺼내 목에 건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목을 조인다. 때묻은 셔츠의 깃이 그의 목에 완전히 밀착할 때까지. 그런 후에 그는 컴퓨터의 전원을 끄고 자신의 방을 한번 둘러본다. -<삼국지라는 이름의 천국> 중에서-

 

분명 게임 삼국지의 세계는 비루한 현대인들에게 천국이다. 그러나 '삼국지라는 이름의 천국'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게임의 규칙을 지켜야만 한다. 게임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 채 게임의 규칙이 파기되는 순간 가상현실에서도 천국은 존재하지 않는다. 비정하기는 현실이나 게임이나 마찬가지다. 중독은 또 하나의 비정한 세계로 자신을 내맡기는 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비루하고 비정하지만 현실과 맞닥뜨려야만 하는 게 현대인의 운명이다. 비록 모순 덩어리지만 현실 그 바깥에는 또 같은 현실이 있을 뿐이다. 모순과 맞닥뜨려 끊임없는 투쟁을 해야만 하는 운명이 슬프지만 현대인의 어쩔 수 없는 자화상이다.

 

그가 이미 죽여버린 위연에게로 돌아가지만 그의 게임은 계속된다. 그러나 그 게임은 가상의 공간이 아닌 현실에서 계속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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