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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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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초들의 희망을 허무주의적 시선으로 그려야만 했던 이유 사평역/임철우/1983년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그믐처럼 몇은 졸고/몇은 감기에 쿨럭이고/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침묵해야 한다는 것을/모두들 알고 있었다/오래 앓은 기침소리와/쓴 약 같은 입술댐배 연기 속에서/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그래 지금은 모두들/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자정 넘으면/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한줌의 눈물을 불빛 ..
직선을 그릴 수 없었던 한 만화가의 절규 직선과 독가스-병동에서/임철우/1984년 생각해 보세요. 난 지금껏 다른 사람들하고 똑같이 평범하고 소박한 생활을 해왔습니다. 그야말로 약하고 힘없는 소시민 그대로지요. 게다가 보시다시피 겨우 오십 킬로그램 근처에서 체중기가 바늘이 왔다 갔다 하는 타고난 약골인 데다가 아직껏 닭 한 마리도 목 비틀어 죽여본 적이 없는 겁쟁이입니다. - 중에서- 그야말로 소시민이었던 이 남자가 지금은 정신병동에서 감호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끊임없이 숨통을 조여오는 독가스에 자기의 일은 물론 일상마저 위협받고 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이 독가스의 정체는 군대에 있을 때 사방을 밀폐시킨 천막 안으로 방독면을 쓴 채 오리걸음으로 들어가 훈련조교들의 명령에 따라 방독면을 벗은 이삼 분 동안에 눈물 콧물 질질 흘렸던 기억을 떠..
국가폭력을 대하는 두 작가의 같은 듯 다른 시선 임철우의 (1984년)과 이창동의 (1985년) 반값등록금 집회에서 야당 최고위원이 테러를 당했다. 평범한 우리네 이웃처럼 보이던 한 중년의 여성은 '김대중 노무현 앞잡이'니 '빨갱이'니 하면서 집회현장에 뛰어들어 정동영 최고위원의 머리채를 잡아흔들었다. 비단 정동영 최고위원만이 아니다. 최근들어 진보인사들에 대한 백색테러가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이 중년 여성에게 21세기는 여전히 '빨갱이' 소탕에 혈안이 된 반세기 전의 그 날에 불과했던 것일까? 분노보다는 연민과 안스러움이 앞서는 이유는 누가 그녀를 과거 속 악몽에 내던졌나 하는 것이다. 게다가 백주대낮에 야당 지도자를 상대로 자행된 테러에 대해 일종의 해프닝으로 치부해 버리는 경찰을 보면서 또다른 형태의 국가폭력을 보는 것 같아 답답할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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