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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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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조국으로 여겼던 한국문학의 선구자들 이윤옥의 시집 관련 포스팅을 하고 가장 아쉬웠던 점은 공간이 주는 한계였다. 한국 근대 문학의 위대한 작가들로 둔갑한 20인의 친일문학인들을 만나면서 정작 그들이 화려한 글재주를 이용해 어떻게 조선민중들을 악의 구렁텅이로 내몰았는지는 소개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의 화려한 글재주만큼이나 일본 제국주의를 향한 아부 또한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그들의 전력이 민족시인이었건, 좌파작가였건, 순수문학인이었건 단 한 번의 변절은 그들이 뼛 속까지 일본인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굳건한 애정을 보여준다. 그들에게 조선 민중들은 일본 제국주의가 세계를 지배할 도구에 불과했던 것이다. 한국 근대문학의 등불이라던 그들의 실체는 이랬다. 카프(KAPF)의 실질적 지도자였던 김기진 태평양 동쪽의 언덕 언덕..
추악한 세상을 허우적대는 우리의 자화상 다자이 오사무(1909~1948)의 여기 세 장의 사진이 있다. 귀엽게 생긴 열 살 남짓한 어린아이의 사진이지만 그 아이의 웃는 얼굴은 뜯어보면 볼수록 어딘지 모르게 음산하고 불길한 것이 느껴진다. 또 하나의 사진은 어엿한 청년이 된 그 아이의 사진이나 어쩐지 괴담같은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는 사진이다. 마지막 사진은 어른이 된 그 아이가 분명한데 도무지 나이를 짐작할 수가 없다. 화로에 손을 쬐고 있는데 그대로 죽어버린 듯한 음산하고 불길한 인상을 풍기는 사진이다. 전후 일본문학의 거장 다자이 오사무(1909~1948)가 본 이 세 장의 사진 주인공은 다름아닌 '요조'라는 사람이다. 은 이 세 장의 사진에 얽힌 요조의 에피소드를 모은 액자소설이다. 다자이 오사무는 친절하게도 후기를 통해 이 수기를 쓴 광..
장례식장에 울려퍼진 메이데이의 노래 [20세기 한국소설] 중 이북명의 『질소비료공장』/「분가꾸효오론」(1935.5)/창비사 펴냄 이북명의 소설 『질소비료공장』은 그가 흥남비료공장에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로 1932년 조선일보에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했다. 조선일보에 연재되던 『질소비료공장』은 연재 도중 일제의 검열로 중단되기도 했으나 한국 프로 문학의 대표 작품으로 인정받아 일본이나 중국에 번역 소개되기도 했던 소설이다. 창비사에서 발굴 소개한 『질소비료공장』의 출처가 일본의「분가꾸효오론,文學評論」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해방 후 이북명은 조선플롤레타리아문학동맹에 가담했고 이 후 북한에서도 문화계 요직을 두루 거친 북한 문단의 대표적인 작가로도 유명하다. 여기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일제의 사상탄압으로 중단되었던 연..
가출한 아내와 남편의 죽음 그리고 전쟁 바진(巴金, 1904~2005)의 장편소설 《차가운 밤》 바진(巴金, 1904~2005)은 루신, 라오서와 함께 중국의 3대 문호로 꼽힌다. 그는 무려 한 세기를 꽉 채우고도 남은 인생을 살았다. 프랑수와 미테랑 프랑스 전대통령의 “두 세기에 걸쳐 시련으로 단련하면서 끊임없이 스스로 부활의 원동력을 만들어낸 바진의 삶은 중국 그 자체이다.”라는 말처럼 바진은 중국의 근대와 현대를 관통하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중국이 겪었던 질곡을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았다. 중국이 자랑하는 문호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이 낯선 이유가 그의 기나긴 삶 때문이라는 조금은 아이러니한 생각을 해본다. 《가》에 이어 만난 《차가운 밤》은 고전 작가로서의 바진을 더 이상 낯선 이름으로 기억해야만 하는 수고로움을 덜어주기에 충분할 만큼..
'국가가 나에게 해준 게 뭐 있어' [20세기 한국소설] 중 채만식의 『논 이야기』/「협동」(1946.10)/창비사 펴냄 파출소 한 켠 긴 의자에는 늘 한 남자가 자고 있다. 넥타이는 반쯤 풀어져 있고 양복 윗도리는 의자에 걸쳐져 있으며 흰색 와이셔츠는 바지 밖으로 삐져나와 추레하기 짝이 없다. 신문지로 경찰서 아니 스튜디오의 환한 조명을 가리고 자고 있는 이 남자. 그도 평범한 늑대인지라 여우의 향기에 벌떡 일어나 방청객을 향해 사자후(?)를 토해낸다.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국가가 나한테 해준 게 뭐 있어” 방청객들은 박수를 넘어 열광적인 환호로 이 술취한 남자의 등장을 맞이해 준다. 많은 논란 끝에 폐지되었던 KBS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 코너에서 박성광은 이렇게 세상을 향해 소리쳤다. 방청객들과 시청자들은 묘한 카타르..
도진개진 인생들의 도토리 키재기 [20세기 한국소설] 중 채만식의 『치숙』/「동아일보」(1938.3.7~14)/창비사 펴냄 ‘도진개진’이라는 말이 있다. 윷놀이에서 도가 나오나 개가 나오나 거기서 거기란 뜻일 게다. 표준어인지 사투리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말 중 하나다. 한자의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와 같은 말이다. 도토리가 제 아무리 크다 해도 재보면 다 고만고만하다는 뜻이다. 도진개진 인생들, 도토리들만 사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채만식의 『치숙(痴叔)』은 폼나는(?) 인생들이 너 잘났냐, 나 잘났다 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채만식은 이들을 고만고만한 도토리로 만들어 버리고 만다. 이들이 채만식에게 밉보인 이유를 들어보자. 채만식의 풍자는 전방위적이다. 『치숙』에서는 등장인물 모두가 풍자의 대상이 된다. 등장인..
'목매이는 여자' 그녀는 왜? [20세기 한국소설] 중 박종화의 『목매이는 여자』/「백조」3호(1923.9)/창비사 펴냄 성삼문, 하위지, 이개, 유성원, 박팽년, 유응부를 기억하는가? 이들은 어린 임금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 수양대군, 세조에 의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인물들이다. 역사는 그들을 사육신(사六臣)이라 부른다. 사육신과 함께 또 기억해야 할 인물들이 있다. 김시습, 원호, 이맹전, 조려, 성담수, 남효온. 이들은 단종복위운동이 실패로 끝나자 관직을 거부하고 재야에 묻혀 살았다. 살아서 주군에 대한 충성을 다했으니 이들을 생육신(生六臣)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승자의 기록이라는 역사가 그들을 어떻게 기억했고 또 어떻게 기억하든 그들은 멋진 남자였다. 12명의 멋진 남자와 동시대를 살았던 천재가 ..
연오랑 세오녀가 일본으로 간 까닭은? 신화를 읽다보면 늘 궁금한 게 있다. 신화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과학으로 증명되지 않는다고 해서 모두 픽션으로 치부해도 될까? 정말 신들은 존재했을까? 유아적 호기심같지만 신화에 푹 빠지다 보면 결코 지나칠 수 없는 참새 방앗간과도 같다. 어린 헤라클레스가 헤라의 젖을 너무 세게 물어 그 젖이 흘러 은하수가 되었다고 하는데 사실일까? 무수한 별들이 빼곡히 박힌 밤하늘을 바라본다. 아니 도심 속 밤하늘엔 신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내가 신화를 읽는 건 신화의 진실을 믿기 때문이다. 진실이란 신의 존재가 아니다. 신들이 전하는 메시지의 진실이다. 신화 속에서는 신이 인간들을 창조했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신을 만든 건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들은 신을 통해 하고 싶은 얘기들이 있었을 것이다.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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