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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11.11 예술을 위해 딸을 실명시킨 아버지의 행위는 정당했나 (11)

 

선학동 나그네/이청준(1939~2008)/1979

 

우리나라 엄마들의 교육열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가난이 대물림 되던 시절 그나마 교육은 신분 상승의 몇 안되는 기회였으니 교육에 올인하는 부모들의 심정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가 근대화와 산업화는 물론 정치 민주화를 서구 사회보다 짧은 시간 안에 이룩할 수 있었던 것도 불타는 교육열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신분간 계층 이동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현실에도 여전히 교육은 한 가닥 희망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교육열이 늘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과거와 달리 요즘 부모들에게 교육열은 자식 사랑에 대한 잣대가 되기도 한다. 학교 교육 외에도 다른 부모들이 시키는 각종 과외 교습은 나도 똑같이 해야 한다. 그게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아니면 내 아이에게 꼭 필요한 교육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남들이 하는만큼 해야 최소한 남들 수준으로 자식을 사랑한다고 믿는다. 어쩌면 부모들의 자기 만족일지도 모르지만 사회가 암묵적으로 조장하고 있는 병폐 아닌 병폐다. 심지어 설소대 수술을 하면 영어 발음이 좋아진다는 근거없는 소문만 믿고 자녀에게 설소대 절개 수술을 시키는 부모도 있다고 하니 자식 사랑이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한편 그릇된 자식 사랑으로 치면 소설 <선학동 나그네>의 이 아버지만큼 할까?

 

 

<선학동 나그네>는 <서편제>(1976), <소리의 빛>(1978)과 함께 이청준의 '남도 사람' 연작 소설 중 하나다. 세 편의 '남도 사람' 연작 소설은 영화 '서편제'와 '천년학'의 원작이기도 하다. 소설은 기구한 삶을 살아가는 어느 가족의 이야기다. 전국을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면서 오직 소리 하나만을 위해 신명을 바치는 아버지와 앞을 보지 못하는 딸, 그들을 버리고 떠났으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누이를 찾아 헤매는 오라비. 이 가족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한을 품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내는 그때 그런 몽롱한 심기 속에서 또 한 가지 기이한 광경을 보았다. 사내가 다시 눈을 들어 보았을 때, 길손의 모습이 사라지고 푸르름만 무심히 비껴 흐르고 있는 고갯마루 위로 언제부턴가 백학 한 마리가 문득 날개를 펴고 솟아올라 빈 하늘을 하염없이 떠돌고 있었던 것이다. -<선학동 나그네> 중에서-

 

소설 속 '선학동 나그네'는 누이의 흔적을 찾아 선학동을 찾은 사내이기도 하지만 선학동을 잠시 거쳐간 부녀이기도 하다. 선학동 포그에 물이 차오르면 석양 무렵 산 그림자가 물에 비쳐 학이 나는 것(비상학)처럼 보였지만 사내가 찾은 선학동은 옛날의 그 선학동이 아니었다. 사내는 이내 실망했지만 주막집 주인으로부터 선학동에 잠시 거쳐하다 홀연히 떠나버린 소리꾼 부녀의 이야기를 듣는다. 세월이 흐른 뒤 여인이 아비의 유골을 수습하기 위해 다시 선학동을 찾았지만 자신을 찾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하고는 또 다시 선학동을 떠나고 말았다. 주막집 주인 이야기를 들은 사내는 한을 승화시키고 선학동을 떠난다.

 

 

저자는 애끓는 여인의 한이 판소리라는 예술로 승화되었다는 것을 학이 날아 오르는 장면으로 묘사한 것이다. 즉 한이 예술로 승화되어 '비상학'이 되었지만 사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으로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세속에 찌들어 사는 부녀였지만 뭇 사람들과는 달리 이 부녀는 그들의 한을 예술로 승화시킨 것이다. 

 

포구에 물이 차오르고 선학동 뒷산 관음봉이 물을 타고 한 마리 비상학으로 모습을 떠올리기 시작할 때면, 노인은 들어주는 사람이 있거나 없거나 그 비상학을 벗 삼아 혼자 소리를 시작하곤 했어요. 해 질 녘 포구에 물이 차오르고 부녀가 그 비상학과 더불어 소리를 시작하면 선학이 소리를 불러낸 것인지, 소리가 선학을 날게 한 것인지 분간을 짓기가 어려운 지경이었지요. -<선학동 나그네> 중에서-

 

한이 예술로 승화되는 순간이기도 하지만 인간과 자연이 하나가 되는 경이로운 장면이기도 하다. 소리꾼 부녀가 만들어 내는 장면은 신비하고 환성적이기까지 하다. 이처럼 아름답게 한을 예술로 승화시킨 작가가 또 있을까 싶다. 마치 바로 눈 앞에서 펼쳐지는 경이로운 순간을 지켜보고 있는 듯 하다.

 

 

이토록 아름다운 소설에 애써 딴지를 걸려 하는 것은 평생 소리 하나만을 위해 살아왔다는 아비의 예술적 욕망이 과연 옳았나 하는 의문이 드는 대목 때문이다. <서편제>를 비롯해 '남도 사람' 연작 소설을 읽어본 독자라면 누구나 품었을 의문일지도 모르겠다. 

 

"아, 그랬지요. 내가 여태 그걸 말하지 않고 있었던가? 그 여잔 앞을 못 보는 장님이었다오. 그래 그 노인이 여자의 앞을 인도하고 다니면서 손발 노릇을 대신해 줬지요." -<선학동 나그네> 중에서-

 

소리에 미친 소리꾼 아버지가 딸의 목소리에 한을 실어 진정한 소리꾼으로 거듭나게 하기 위해 딸의 눈을 멀게 한 것이다. 문학과 예술이 아니었다면 이보다 더 엽기적일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딸은 이런 아버지의 행위를 원망하지 않았다니 가슴이 더 메어지는 듯 하다. 과연 예술을 위해 딸의 눈을 멀게 한 아버지의 행위를 어떻게 봐야 할까? 솔직히 따지면 소리꾼 아비는 한을 예술로 승화시킨 것이 아니다. 예술을 위해 딸에게 한을 심어준 것이다. 아비의 애끓는 자식 사랑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욕망 때문에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한의 승화라는 그럴 듯한 명분을 내세우지는 않았을까? 아버지의 이런 행위는 분명 끔찍한 아동 학대에 해당한다.

 

마찬가지로 요즘 부모들의 자식 사랑도 <선학동 나그네>를 통해 한번쯤 반추해 볼 필요가 있다. 자식의 미래를 위해 교육에 올인하는 부모들의 행동이 진정 자식 사랑의 표현일지 아니면 자식을 통해 대신 성취하려는 부모의 욕심과 욕망은 아닐지 말이다. <사진=영화 '천년학',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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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용자 여강여호 트랙백 73 :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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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s://bonlivre.tistory.com BlogIcon 봉리브르 2014.11.11 09:01 신고

    저도 여강여호님 말씀에 동감입니다.
    자식은 그냥 자식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부모의 도리라고 생각하니까요.
    아무리 부모가 보기에 옳고 성공하는 길이라 해도
    아이에게 맞지 않은 옷을 입히는 것은 올바른 자식 사랑이 아니라고 봅니다.
    선택권도 없고, 또 자기주장도 강하지 않은 아이라면
    평생을 부모가 만들어준 그늘 밑에서 살아가야 할 텐데,
    아마 절대로 행복하지 않을 겁니다..^^

  2.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s://chamstory.tistory.com BlogIcon 참교육 2014.11.11 09:06 신고

    가슴시린 사연이군요.
    인간적인 갈등이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예술에 대한 애증과 집착.... 글쎄요. 그게 자신의 욕망을 너머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문제일지....

  3.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s://xuronghao.tistory.com BlogIcon 공수래공수거 2014.11.11 09:11 신고

    사랑이 극한에 이르면 비극입니다

    말이 될런지 모르겠지만 부모와 자식간은 남만큼 하는 사람
    중용의 사랑이 좋은거 아니겠습니까?

  4.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s://seattlemom.tistory.com BlogIcon The 노라 2014.11.11 09:29 신고

    예전에 영화 서편제를 보면서 한이 있어야 진정한 소리꾼이 된다고 딸의 눈을 멀게 한 아버지의 그 설정이 너무 끔찍했어요.
    이건 절대적으로 명창으로 키워낸 아버지라는 명예를 얻고 싶었던 아버지의 이기적 욕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딸은 효라는 사상에 짖눌려 이게 아비의 사랑이라고 믿고 원망할 줄도 모르구요. 그것도 너무 가슴아파요. ㅠㅠ

  5.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s://windyhill73.tistory.com BlogIcon 바람 언덕 2014.11.11 11:21 신고

    이청준 선생님이 돌아가실 때,
    가슴 깊은 곳에서 울컥하고 감정이 복받쳐 올랐습니다.
    우리시대의 장인을 잃은 느낌이랄까.
    그의 소설은 정말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예술작품이었습니다.
    오늘은 책장에서 오래된 그의 소설을 다시 꺼내야 겠네요..
    ^^

  6.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www.smpark.kr BlogIcon 풀칠아비 2014.11.11 11:56

    "부모의 욕심이나 욕망이 아닐지"라는 말씀에 저도 차분히 다시 생각해 봐야만 할 것 같습니다.
    아이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제일 중요한데 말입니다.

  7.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s://saenooree.tistory.com BlogIcon 耽讀 2014.11.11 12:08 신고

    서편제를 보면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예술과 욕심을 가르는 기준을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8.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s://zoahaza.net BlogIcon 조아하자 2014.11.11 16:18 신고

    솔직히 공감해요. 이게 문학작품이 아니라 실제 현실 상황이라면 아버지는 감옥가서 콩밥먹어야한다고 생각함...

  9.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s://2losaria.tistory.com BlogIcon 굄돌* 2014.11.11 22:09 신고

    한의 승화...
    전에 청산도에 갔다가 송화의 흔적을 더듬었었지요.
    자신의 한을 딸에게 전수시키고자 눈을 멀게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는
    소설로도 용납하기 힘들었어요.

  10.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s://lovelee.tistory.com BlogIcon Ellie's 2014.11.12 07:47 신고

    제목 보고 놀라서 들어왔다가
    많은 걸 얻고 갑니다.
    원하는 길을 닦아주는 것이 아니라 소유물처럼 정해진 길을 걷게 하는 것부터 학대의 일부분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11.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s://sensechef.com BlogIcon SenseChef 2014.11.12 17:18 신고

    자식을 위해 정말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 하지만 그 결과를 겸허히 받아 들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투자한 돈을 기준으로 아이에게 일정 수준의 성취도를 강요하나 그것이 아이에게 압력으로 작용 해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니까요 ! 예술을 위해 딸의 눈을 멀게 한 아버지만큼이나 지금도 많은 부모들이 자신의 위신을 위해 아이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