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에밀 졸라

(2)
정미홍 사과로 떠올린 1894년과 1991년 그날 1894년 프랑스 육군 대위였던 알프레드 드레퓌스는 군사기밀을 유출한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더러운 유대인'이라는 군중들의 야유를 받으며 악마의 섬으로 유배당했다. 당시 프랑스 군부가 제출한 유일한 증거는 스파이가 남긴 편지 글씨였는데 드레퓌스와 필체가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드레퓌스를 되살린 사람은 의 작가 에밀 졸라였다. 에밀 졸라는 '나는 고발한다'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글을 신문에 기고해 독일 스파이라는 누명을 쓰고 유배당한 드레퓌스는 결백하다는 것과 프랑스 군 고위층이 범죄를 은폐했다는 것을 폭로했다. 당시 에밀 졸라는 비난 여론에 못이겨 런던으로 망명해야 했지만 결국 프랑스 지식인들의 노력으로 드레퓌스는 12년만에 무죄판결을 받고 누명을 벗었다. ▲에밀 졸라(1840년~1902년, 프랑스) 1..
목가시인과 연탄시인, 그들의 이유있는 절필선언 어머니/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깊은 삼림대를 끼고 돌면/고요한 호수에 흰물새 날고/좁은 들길에 들장미 열매 붉어 멀리 노루새끼 마음 놓고 뛰어다니는/아무도 살지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중에서- 정형화되고 상투적인 행동이나 말을 하는 사람을 가리켜 '교과서적이다'라고 말한다. 명문대에 수석 합격한 학생이 방송에 출연해 수석 합격 비법을 묻는 질문에 '교과서만 보고 공부했어요'라고 하는 말은 사교육 과열을 막기 위한 미디어의 계도적인 의도가 깔린 인터뷰이기도 하지만 많은 수험생들에게는 허탈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교과서란 본디 창의적인 사고를 위한 길잡이가 되어야 하지만 예상 답안을 줄줄 암기해야만 하는 입시 위주의 교육정책 하에서는 스폰지와 같아야 할 청소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