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고전 <바가바드 기타>
“저 신문쟁이들을 몰아내라. 잡지쟁이, 연극쟁이, 라디오, 텔레비전쟁이들을 모두 몰아내라. 그놈들 우리 울음 울어 달라고 내세웠더니 도리어 우리 입 틀어막고, 우리 눈에 독약 넣고, 우리 팔다리에 마취약 놓아버렸다. 그놈들 소리한댔자 사냥꾼의 개처럼 짖고, 행동한댔자 개의 꼬리 치듯이 할 뿐이다. 쫓아내라. 돌로 부수란 말 아니다. 해가 올라오면 도깨비는 도망가는 법이다. 우리가 울어야 한다. 우리가 울면 우리 소리에 깰 것이다. 힘도 우리 것이요 지혜도 우리 것이다. 그것은 참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함석헌 선생이 1970년 창간한 <씨알의 소리>에 실린 글 중 일부이다. 강산이 네 번이나 새 단장을 한 오늘에도 선생의 외침을 쉬 잊을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고 비정하게 느껴진다.
바가바드 기타(오늘을 위한 인도의 지혜) 서평을 시작하면서 굳이 함석헌 선생의 글을 인용한 이유는 선생의 명성에 영합(?)해서 읽는 이들의 관심을 유발시켜 보려는 상술만은 아니다. 군사독재에 저항했던 함석헌 선생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유명하다. 그러나 단순히 기독교에 머무르지 않고 동서양의 종교들을 통합해 신앙인으로서 중요한 것은 교리에 매몰되지 않고 나 자신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바가바드 기타]를 ‘힌두교의 성경’이라 일컫기도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특정 종교와는 무관한 영적 생활을 위한 가이드임을 알 수 있다. 어쩌면 [바가바드 기타]의 이런 특성이 함석헌 선생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지 않았나 싶다. 뿐만 아니라 인도의 민족주의자이자 평화주의자인 마하트마 간디는 [바가바드 기타]를 ‘정신의 참고서’라고 부르며 늘 곁에 두었다고 한다.
흔히 종교라고 하면 보수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바가바드 기타]에서는 종교를 단순한 개인 차원의 해탈로 보지 않는다. 불교로 치자면 해탈, 영적 삶에 이르기 위해서는 자신의 내면에 감춰진 자아(아뜨만)를 발견하고 천부적 소명인 다르마(뭔가를 행하는 의무)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행동하는 양심이 진정한 종교인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잭 홀리의 [바가바드 기타(오늘을 위한 인도의 지혜)]는 저자가 서문에 밝혔듯이 [서양인을 위한 바가바드 기타, The Bhagavard Gita: A Walkthrough for Westerns]에서 가장 적절하면서도 중요한 가르침만을 선정하여 재구성한 [바가바드 기타] 입문서이다. 아마도 물질 문명으로 대표되는 서구 문명에서 나타나는 각종 사회적 문제들을 서구적 시각에서 해소하는 데 어느 정도 한계에 봉착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최근 서구사회에서 동양철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도 이런 연유일게다.
[바가바드 기타] 입문서라고는 하지만 결코 쉽지 않다. 반복해서 읽어도 선뜻 전체적인 내용을 이해했다고 자신할 수 없다. 그나마 저자는 독자들의 [바가바드 기타]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5개의 장으로 구분하고 다시 각 장마다 핵심적인 문장을 맨 앞에 배치하고 ‘서곡’을 추가해 알기 쉽게 풀이해 준 다음 본문으로 들어가는 방식을 취한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나는 누구이며, 왜 나는 살고 있으며 삶의 목적인 신은 누구이며 어떻게 하면 신에 도달할 수 있는지 가르쳐 주며 마지막으로 영적인 삶이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누구도 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를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앞서 언급했듯이 세속적 의무를 다 함으로써 신에 이르고 영적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가바드 기타]를 글자 그대로 해석한다면 ‘신의 노래’가 될 것이다. ‘바가바드’는 신을 의미한다. 이 신이 인간적 모습으로 육화한 인물이 크리슈나이다. [바가바드 기타]는 고대 인도에서 판다바족과 카우라바족 사이에 전쟁이 막 시작하려고 하는 순간 판다바족의 왕자인 아르주나는 적국이지만 자신의 형제들인 카우바라족과 피를 흘려야 하는 현실을 자각하고 망설이지만 그의 전차몰이꾼인 크리슈나는 아무리 냉정하고 비참한 전쟁이지만 정의로운 일 앞에서 전사로서의 의무감을 냉정하게 수행하는 것이 위대한 길이고 신에 이르는 길임을 설득하는 내용이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
[바가바드 기타] 원전은 아니지만 읽어가면서 친숙한 단어도 만나게 된다. 바로 ‘복종’이다. 크리슈나는 복종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복종은 비참한 패배라는 협소한 생각을 점진적으로 극복하고자 노력하십시오. 영성에 있어 복종은 전체적인 수용(받아들임)입니다. … 이러한 복종의 행위에 의해 당신은 나를 발견하고, 나에게 올 것입니다.”
우리의 아픈 과거 중 하나인 일본 제국주의 시절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이었던 한용운의 [복종]이라는 시에도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즉 신에 대한 복종은 굴욕이 아니라 나를 알아가는 과정(신에 이르는 길의 시작)이며 신에 이르기 위해서 필요한 나 아닌 타인에 대한 우주적 사랑인 세속적 의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일깨워 주는 행위라는 것이다.
또 한가지 [바가바드 기타]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요즘 유행하는 ‘요가’라는 것이다. 유명 연예인이 ‘요가 다이어트’ 비디오를 히트시켜면서 소위 ‘요가 열풍’을 불러일으켰지만 실은 생활에서의 요가는 물질문명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작은 탈출구를 제공해주는 ‘느림의 미학’이다.
[바가바드 기타]에서 요가란 감관과 호흡과 마음을 통제하는 방법이다. 이런 수련을 통해 궁극적 실재를 깨닫고 그것과 하나가 된 상태이며 우주적 의식, 즉 지고신에 이르는 길을 의미한다.
앞서 밝혔듯이 입문서라고는 하지만 결코 만만치 않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열 번 가까이 읽었는데도 아직 반의 반도 이해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바가바드 기타] 원전은 앞으로 이 책을 열 번은 더 읽어야 도전할 자신이 생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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