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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북 리뷰

우리와 이웃을 위한 사회적 치유의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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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정혜신·진은영 지음/창비 펴냄

 

416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를 집단적인 충격과 슬픔, 분노와 무력감에 빠뜨리며 ‘사회적 트라우마’에 대한 관심과 각성을 불러일으켰다. 비단 세월호 참사뿐 아니라 용산 참사, 쌍용차 사태, 밀양 송전탑, 제주 강정마을 등, 한국사회는 숱한 사회적 고통에 대한 대책 없이 새로운 피해자들만을 속속 양산하는 중이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이 상처들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안산에 치유공간 ‘이웃’을 마련해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을 치유하고 있는 '거리의 의사' 정혜신과 문학을 통한 사회적 실천에 앞장서온 ‘행동하는 시인’ 진은영이 함께 만나 고민을 나눈다.


두 사람은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우리 사회 곳곳에 새겨진 상처들을 섬세한 시선으로 살피며, 재난과 폭력을 겪은 당사자들뿐 아니라 그 가족과 이웃들, 나아가 우리 모두의 아픔을 따뜻하게 어루만진다. 모든 피해자들이 슬픔을 온전히 완료할 수 있도록 이웃과 공동체, 사회 전체가 마음을 함께 나누고 서로에게 치유자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두 사람의 대화는 사회적 트라우마에 대한 가장 근본적이고 절실한 문제의식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서로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을 수 있는 치유의 공동체를 향한 두 사람의 소중한 고민에 우리 모두가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며칠 뒤, 정신과의사 정혜신은 무작정 진도 팽목항으로 달려가 생존자와 유가족들을 만났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하던 일을 모두 접고 안산에 치유공간 ‘이웃’을 마련해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들의 마음을 돌보고 있다. 이전부터 고문피해자들을 도와 고문치유모임의 집단상담을 이끌어왔으며,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들을 지원하기 위해 심리치유센터 ‘와락’을 만들기도 했던 정혜신은 세월호 참사에 대해 어른으로서 ‘죗값을 치르기 위해’ 안산으로 왔다고 말한다.  

 

 

주목받는 시인이자 최근 문학계를 뜨겁게 달군 ‘문학과 정치’ 논의를 이끈 장본인이기도 한 진은영 시인은 그간 용산 참사와 4대강, 한진중공업 현장 등에서 문학을 통한 사회적 실천에 앞장서왔으며 세월호 희생자 304명을 기억하는 ‘304 낭독회’에도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 또한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교수로서 예술을 통한 치유적 활동에도 남다른 관심을 지니고 있다.


2014년 가을 안산에서 시작된 두 사람의 만남은 계절을 바꾸어가며 계속 이어졌다. 세월호 트라우마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된 이 대화는 만남을 거듭하면서 세월호 참사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 빈발하는 갖가지 사회적 트라우마의 양상과 그 치유의 필요성, 치유의 근본적인 메커니즘, 나아가 치유의 공동체를 위한 사회적 실천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발전되어갔다. 정혜신은 고통의 현장에서 접하는 여러 색깔의 고통들을 생생하게 전하는 동시에 치유의 메커니즘을 사회적으로 확산하기 위한 기획들을 제시하고, 진은영은 정혜신의 뜨거운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때로는 같이 눈물을 지으면서 대화에 다양한 맥락과 함의를 더해 논의의 결을 더욱 풍성하게 이끌어간다.

연이은 사회적 재난과 폭력으로 인해 우리 사회는 어느새 ‘트라우마’ 또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같은 정신의학적 용어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트라우마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이해는 그리 높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정혜신 진은영 두 사람은 트라우마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는 일이 고통받는 이들에게 다가가는 데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트라우마에 대한 편견과 몰이해가 피해자들에게는 또다른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혜신은 세월호 트라우마로 인해 피해자 가족들이 겪는 다양한 고통의 양상을 자세하게 전하면서, 이것이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재앙이고 세월이 지나도 절대 줄어들지 않는 압도적인 고통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이들이 겪는 고통의 양상과 층위가 복잡다단하다는 점을 세심하게 헤아리려는 노력이 그들과 마음으로 소통하는 일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이 더이상의 상처 없이 충분히 슬퍼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치유의 가장 중요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두 사람이 한목소리로 강조하는 것은 트라우마를 사회적 맥락으로부터 분리해서 다루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세월호 참사나 쌍용차 사태 등과 같이 사회적인 맥락에서 발생한 트라우마는 개인의 내면적인 문제로만 접근해서는 결코 치유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정혜신은 명확한 진상규명이야말로 트라우마 치유의 전제라고 단언하면서, 사회적 문제에 대한 이해와 고려 없이 개인의 내면만을 문제 삼는 접근은 오히려 피해자들을 고립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진상규명을 위한 유가족들의 싸움은 곧 스스로를 치유하려는 몸부림이며, 그 싸움을 위해서도 치유가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정혜신은 이를 ‘잘 싸우려면 치유가 되어야 하고, 치유되어야 잘 싸울 수 있다’는 말로 표현한다. 사회적인 문제의식과 개별적인 인간의 마음 어느 쪽도 놓치지 않는 이러한 접근만이 ‘사회적 맥락에서 상처를 입은 개별적인 인간의 마음’에 온전하게 다가갈 수 있는 길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개별적인 한 인간의 마음에 집중하고 개인의 존재를 존중하는 일이 사회적 치유의 실마리이자 사회적 소통과 민주주의의 기초라는 두 사람의 지적은 경청할 만하다. 비판과 논쟁과 계몽에만 익숙하고 정작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지금의 우리 사회가 심각한 사회적 갈등과 트라우마를 확산시키는 토대가 되어왔다는 지적이다. 사회적 트라우마가 개인의 특수한 질환이 아닌 사회 전체의 문제임을 우리가 거듭 새겨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음을 나누기는커녕 오히려 상처를 퍼뜨리고만 있는 이 사회에서 사회적 치유란 어떻게 가능할까. 두 사람은 사회적 트라우마는 일부의 전문가들만이 다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나서야 하는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이를 위해 정혜신이 강조하는 것이 ‘상처 입은 치유자’(wounded healer)라는 개념이다. 상처를 입은 적이 있고 그 상처를 치유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치유자가 될 수 있고, 그런 사람이 곧 최고의 치유자라는 것. 정혜신은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만이 아니라 주변의 모두가 서로에게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곧 사람은 누구나 본래 온전한 존재이며 스스로 치유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치유의 핵심은 스스로 자신의 치유적인 힘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있으며,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복잡한 기법이나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일상의 근본적인 요소와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치유적 공기와 자극이라는 것. 그런 치유의 핵심을 공유하고 치유적 공기가 번져나가게 하는 일이 우리 사회를 좀더 건강하게 만들어가는 길이라고 두 사람은 말한다.


정혜신의 지적처럼,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우리 사회가 사회적 트라우마에 대해 좀더 관심을 갖기 시작했지만, 지금껏 우리가 확인한 것은 우리에게는 사회적 치유를 위한 바탕이 갖추어지지 않았다는 뼈아픈 사실뿐인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 사회적 치유의 첫걸음은 우리 자신의 마음의 문제에 귀를 기울이고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도록 서로 돕는 이웃이 되는 것, 서로가 서로에게 ‘이웃집 천사’가 되는 일일 것이다. 두 사람의 말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상처 입은 마음에 우리의 마음을 포개는 일이 그 시작일 것이다.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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