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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세계명작단편소설

19세기 프랑스에도 된장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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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걸이/기 드 모파상(Guy de Maupassant, 1850~1893, 프랑스)/1885

 

작년에 꽤 재미있게 읽었던 기사 하나가 생각난다. 아르바이트 전문포털 알바천국이 전국 남녀 대학생 1,48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였는데 제목이 캠퍼스 된장남 된장녀의 소비와 저축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체 응답자 중 10%가 캠퍼스 내에서 된장남’, ‘된장녀로 불린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된장남’, ‘된장녀대학생들의 소비와 저축은 어떤 특징이 있었을까?

 

알바천국에 따르면 된장남녀대학생들의 평균 용돈은 43 3천원으로 일반 대학생들의 26 3천원에 비해 17만원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된장남녀대학생들의 지출 항목 중 일반 대학생들의 그것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품위유지비였다. 용돈 중 품위유지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일반 대학생들의 경우 10.6%에 그쳤으나 된장남녀대학생들은 20.3%에 달했다. 하지만 된장남녀대학생들은 소비에 비해 저축은 인색한 것으로 나타났다. ‘된장남녀대학생들의 용돈저축률은 평균 18%로 일반 대학생들의 15%와 큰 차이가 없었다. 용돈이 많건 적건 모두 비슷한 비율로 저축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된장남’, ‘된장녀가 아니었을까 싶다 

 

▲사진>구글 검색 

 

된장녀라는 별난(?) 인종이 처음 생겨난 때는 새 천 년이 시작된 2000년대 초였다. 이 별난 인종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명품으로 치장하고 늘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다녔다. 사람들은 이 별난 인종을 보며 젠장하고 혀를 차기도 했고, 똥과 된장도 구별 못한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짧게 된장녀라고 불렀다. ‘된장녀가 있으면 그 짝으로 된장남이 등장한 것은 당연지사였다. 하지만 된장녀도 시간이 흐르면서 의미가 변질되어 갔다. 처음에는 명품을 선호하는 여성들에 국한되어 사용되었지만 점차 남성들에게 과도하게 의지하며 살려고 하는 여성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심지어 여성을 포비아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남성들의 차별적 용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한편 된장녀 21세기 대한민국에만 존재하는 별난 인종은 아닌 모양이다. 하기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용어만 다를 뿐 된장녀’, ‘된장남이 없지 않았으리라. 19세기 프랑스에도 오늘날 명품만 선호하는 된장녀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마틸드 르와젤이었다. 마틸드가 꿈꾸는 삶은 오늘날 된장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여자가 꿈꾸는 것은 동양풍의 벽지를 바르고 청동의 높은 촛대로 불 밝힌 조용한 응접실이다. 그리고 짧은 바지를 입은 덩치가 큰 하인들이 일의 피로를 잠시 덜기 위해 따뜻한 난로 옆의 안락의자에서 졸고 있는 그런 장면을 꿈꾸고 있었다. 또한 고급스러운 비단이 깔린 객실과 진귀한 골동품과 고급스럽고 으리으리한 가구 또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선망하는 유명 친구들과 오후 5시에 모여 그윽한 향기가 가득 찬 살롱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꿈꾸고 있었다. –기 드 모파상의 <목걸이> 중에서- 

 

▲사진>구글 검색 

 

어느 날 남편과 함께 파티에 초대된 마틸드, 사치스럽고 허영심 많은 그녀가 파티에 그냥 갈 수는 없었다. 하급 공무원이었던 남편을 졸라 400 프랑 정도 되는 옷을 샀다. 고가의 옷을 사고 보니 이번에는 옷에 어울리는 보석이 필요했다.

 

이 멋진 드레스에 어울리는 장신구가 없어서 걱정이에요. 보석도 하나 없고 몸에 지닐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어요. 내가 너무 초라해 보일 거예요. 정말이지 파티에 안 가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어요.” –기 드 모파상의 <목걸이> 중에서-

 

남편 월급으로는 400 프랑이나 되는 옷도 한참 무리한 셈이었으니 보석까지는 엄두도 내지 못할 게 뻔했다. 결국 마틸드는 친구인 포레스티에 부인에게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빌려 파티에 가게 되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파티에서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으나 목걸이가 사라지고 없었던 것이다. 이 후 된장녀마틸드의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결국 빚을 내어 36천 프랑짜리 목걸이를 사서 포레스티에 부인에게 돌려준 뒤 이 빚을 갚기 위해 그야말로 된장녀의 삶은 포기해야만 했다. 그것도 10년 동안이나. 소설의 반전은 마지막 몇 구절밖에 되지 않았다. 포레스티에 부인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는 가짜였고 겨우 500 프랑밖에 되지 않았다.

 

한 때 된장녀를 결정짓는 중요한 행동양식 가운데 하나는 스타벅스 커피였다. 하지만 지금은 전국에 넘쳐나는 게 커피전문점이다. 300원짜리 자판기 커피보다 원가가 싸다는 아메리카노를 마시기 위해 밥값보다 비싼 비용도 마다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10년 전만 해도 된장녀’, ‘된장남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겠지만 지금은 이들이 이 시대의 보통 사람들이 되었다. 오히려 커피전문점 한 번 가보지 못한 필자 같은 사람이 되레 원시인이라는 비아냥을 감수해야만 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전세계 명품 기업들이 한국에 안달이 났다고 하니 보통 사람들과 된장남녀의 구별은 점점 희미해질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되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금전적으로,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긴 것인지, 광고 속 허상과 현실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것인지, 감각적이고 감성적인 소비 뒤에 숨은 자본주의의 잔혹성을 모르는 것인지, ‘된장남녀가 보통 남녀가 되는 데는 강산이 한 번 변할 틈도 주지 않았다. 어쩌면 19세기 프랑스 '된장녀' 마틸드나 21세기 대한민국 평범녀, 평범남이 된 '된장남녀'는 지극히 자본주의적 인간형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기 드 모파상의 소설 <목걸이> 반전도 그 시대만의 설정이 아니었으리라. 자연스러운 시대의 흐름을 만끽하지 못하고 사는 이의 푸념일지도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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