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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어린이날, 우리 아이들이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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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 샤쓰/방정환 지음/신형건 엮음/네버엔딩 펴냄

 

우리 아이들이 위험하다. 사랑으로 위장된 부모의 폭력에 아이들의 가슴은 멍이 들고 심지어 목숨까지 위협받는 세상이다.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의 말만 철석같이 믿고 차가운 바닷물 속을 헤매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 탱글탱글 몽울진 꽃봉오리가 채 피기도 전에 매섭게 휘몰아친 비바람에 슬픈 낙화를 거듭하고 있는 현실이지만 누구 하나 사과하는 사람도 없고 가책을 느끼지도 않는다.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라지만 우리 아이들이 마주한 거울 속에는 <백설공주>의 마귀할멈이 독이 든 사과를 들고 있을 뿐이다.

 

왜 우리 아이들은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는 대신 아슬아슬한 현실을 살아가야만 할까? 어른들의 아이들에 대한 인식 부족과 어른들 자신만의 지나친 욕심 때문일 것이다. 계모의 폭력으로 온몸에 상처만 남긴 채 죽은 아이, 이런 계모의 폭력을 방치한 아버지, 게임에 빠져 어린 자식을 굶어 죽게 한 비정한 젊은 아빠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수학 여행의 추억을 차가운 바닷물 속에 영원히 묻어버린 세월호 참사가 온 국민을 충격 속에 빠뜨리고 있다. 아이들의 안타까운 죽음 뒤에는 성장제일주의에 매몰된 어른들의 욕심과 욕망이 자리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아이들이 어른들을 믿지 못하게 된 현실. 이런 와중에 맞는 어린이날은 이 시대 부모와 어른들에게 뼈를 깎는 참회의 시간을 요구하고 있다.

 

  

어른들이 '아들아 딸아, 너는 이렇게 살아라'고 차마 가르치기 민망한 오늘, 소파 방정환을 떠올리는 것은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지켜주고자 했던 몇 안되는 어른이기 때문이다. 참혹했던 일제 강점기, 게다가 인권이란 용어 자체가 생소했던 시절 아이들을 '어린이'라는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올려놓았던 그에게 오늘날 어른들은 이런 절망적인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할 뿐이다. 방정환이 <만년 샤쓰>에서 '모자가 다 해어져도 새것을 쓰지 않고, 양복 바지가 해어져서 궁둥이에 조각조각 붙이고 다니는' 창남이라는 학생을 통해 어린이들에게 주고자 했던 교훈을 이 시대 어른 중 누가 당당히 똑같이 가르칠 수 있을지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만년 샤쓰>는 방정환이 1923년 3월부터 1928년 6월까지 『어린이』 잡지에 연재했던 동화와 동극, 수핑을 모은 작품집이다. 방정환은 이 작품집 한 토막인 '만년 샤쓰'를 통해 어린이들이 어두운 현실이지만 늘 희망을 잃지 마라고 가르친다. 

 

모자가 다 해어져도 새것을 사 쓰지 않고, 양복바지가 해어져서 궁둥이에 조각조각 붙이고 다니는 것을 보면 집안이 구차한 것도 같지만 그렇다고 단 한 번이라도 근심하는 빛이 있거나 남의 것을 부러워하는 눈치가 없었다. 남이 걱정이 있어 얼굴을 찡그릴 때에는 우스운 말을 잘 지어내고 동무들에게 곤란한 일이 있을 때에는 좋은 의견도 잘 내어서 비행가의 이름은 더욱 높아졌다. -<만년 샤쓰>중에서-

 

암울한 시절 어린이들이 늘 밝게 자랐으면 하는 것은 방정환의 가장 작은 소망이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사인 안창남과 이름이 같아 별명이 '비행가'인 창남이 겉모습은 보잘 것 없지만 늘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어린이들이 밝게 자라주길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만년 샤쓰'는 어려운 형편 때문에 따로 속옷을 사입을 수 없는 창남이 자기의 맨몸을 당당하게 이르는 말이다. 이런 창남이의 용기에 친구들은 '비행가'라는 별명 대신 '만년 샤쓰'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창남이가 오늘은 양복 웃저고리에 바지는 어쨌는지 얄따랗고 해어져 뚫어진 조선 겹바지를 입고, 맨발에 짚신을 끌고 뚜벅뚜벅 걸어온 까닭이었다.

맨가슴에 양복저고리, 아래는 조선 바지(그나마 다 뚫어진 겹바지), 맨발에 짚신, 그 꼴을 하고 이십 리 길을 걸어 왔으니 행길에서는 오죽 웃었으랴…. 그러나 당자는 태평이었다. -<만년 샤쓰> 중에서-

 

창남이는 왜 만년 샤쓰를 입게 되었을까? 방정환은 어린이들이 용기있는 밝은 마음과 더불어 이웃과 부모를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라고 가르친다. 동네에 큰 불이 나서 창남이 집도 반이나 넘게 타버렸지만 더 큰 피해를 입은 동네 사람들에게 가지고 있던 옷가지를 다 내어준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창남이는 이웃들에게 옷가지를 다 내주고 정작 어머니 자신은 정작 추위에 벌벌 떨고 있길래 나머지 옷가지를 어머니에게 내주고 만다. 그래도 그렇지. 이런 차림으로 자식을 이런 차림으로 학교에 보낸 어머니는 오늘날로 치면 일종의 '아동 학대'에 해당할 것이다. 하지만 창남이는 맨몸, 맨발이면서도 '네, 샤쓰도 잘 입고, 버선도 잘 신었으니까 춥지는 않습니다.'하고 어머니에게 거짓말까지 하게 된다. 만년 샤쓰 창남이의 거짓말은 마지막 장면에서 친구들은 물론 독자들의 코끝을 시큰하게 만든다.  

 

"저희……저희 어머니는 제가 여덟 살 되던 해에 눈이 멀어저 보지를 못하고 사신답니다."

 

<만년 샤쓰>에는 '만년 샤쓰' 말고도 '금시계', '삼태성', '양초 귀신', '호랑이 형님' 등 방정환이 어린이들에게 들려주고자 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이 실려있다.

 

우리 아이들이 위험하다. 어른들의 학대와 안전 불감증에 많은 아이들이 위험에 노출돼 있는 현실도 현실이지만 이런 현실이 재고되지 않으면서 아이들이 어른들을 믿지 못하게 된 현실은 우리 아이들을 더욱 더 위험하고 혼란한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 아이들이 쳐다보며 머리도 정갈히 하고 옷매무새도 다듬어야 할 거울이 금이 가고 깨져 있으니 믿고 들여다볼 수 있겠느냐 말이다. 맑고 깨끗한 아이의 거울인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이 시대 어른들 모두가 방정환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들을 소유물이 아닌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보는 사회적 인식이 확고하게 자리잡아야 한다. 어린이들을 향한 방정환의 가르침이 여전히 감동과 공감을 주는 이유는 아이를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본 우리나라 최초의 어른이었기 때문이다.

 

새삼 어린이날이 아니더라도 변할 수 없는, 변해서는 안될 명제가 있다. 복지 국가의 완성은 아이들이 안전한 나라, 아이들이 행복한 나라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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