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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책 이야기

우정 때문에 불로초를 찾아나선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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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메시 서사시/N.K 샌다즈 해설/이현주 옮김/범우사 펴냄

 

그때 우룩의 한 곳에서는 사랑의 여신을 위해 신방이 차려져 있었다. 신부가 신랑을 기다리는 한밤중, 길가메시가 일어나 그 집으로 들어가려 하였다. 그 순간 엔키두는 박차고 일어나 길 한복한에 막아섰다. 강자 길가메시가 그 집에 도착하여 문에 서 있는 엔키두를 맞닥뜨렸다. 엔키두는 다리를 벌리고 그를 못 들어가게 막았다. 둘은 서로 으르렁거리다가 황소처럼 붙들고 늘어졌다. 그 바람에 문지방이 부서지고 벽들이 흔들렸다. 마치 황소처럼 콧김을 내뿜으며 그들은 서로 엉겼다. 문들이 박살나고 벽들이 흔들렸다. 드디어 길가메시가 땅 속에 다리를 박은 채 무릎을 꿇었고 이어서 엔키두도 쓰러졌다. 그 순간 그의 난폭한 성질이 사라졌다. 엔키두는 넘어지면서 길가메시에게 말했다.

"이 세상에서 당신같은 사람은 못봤습니다. 외양간에 갇힌 황소처럼 힘센 닌순이 당신의 어머니임이 분명합니다. 당신은 모든 인간 위에 뛰어나고 엔릴은 당신에게 왕위를 넘겨 주었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강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곤 엔키두와 길가메시는 서로 끌어안았고 바야흐로 그들의 우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중략>

길가메시는 그의 친구 엔키두를 잃고 비탄에 빠져 울었다. 사냥꾼이 되어 광야를 헤매며 들을 방황하였다. 그는 비통하게 외쳤다.

"내 어찌 편히 쉴 수 있겠는가! 어찌 편안히 지낼 수 있겠는가! 내 마음은 절망으로 가득 찼다. 내 형제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내가 죽는 날, 나도 또한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죽음이 두렵다. 있는 힘을 다해 '머나먼 곳'이라 불리는 우투나피시팀(Utnapishtim)을 찾아가리라. 그는 신들의 모임에 들어갈 수 있었으니까."

길가메시는 들을 지나고 광양르 방황하며 우트나피시팀을 찾아 먼 여행을 떠났다. 우트나피시팀은 홍수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로서 신들은 오직 그에게만 영원한 생명을 주어 태양의 정원인 딜문(Dilmun) 땅에 살도록 했던 것이다.

-<길가메시 서사시> 중에서-

 


 

요즘도 학교에서 세계 최고(最古)의 서사시를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로 배우는지 궁금하다. 필자가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일리아드>와 <오딧세이아>를 쓴 것으로 알려진 호메로스의 작품들을 세계 최고의 서사시로 배웠다. 그러나 최근 세계 역사학계에서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보다 더 오래된 서사시로 <길가메시 서사시>를 인정하는 분위기다.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길가메시의 영웅담이 19세기 이후 수메르인들이 문자를 기록했던 토판이 발견되었고 토판 해석이 성과를 내면서 그동안의 역사적 정설이 뒤바뀌고 있는 것이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일리아드>보다 무려 1000년 이상 앞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길가메시 서사시>와 <일리아드>의 주인공인 길가메시와 아킬레우스가 모두 반신반인이라는 점은 문화의 전파와 확산 측면에서 의미있는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길가메시가 어떻게 반신반인이 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킬레우스는 여신 테티스의 아들로 어릴 때 어머니가 아킬레우스를 스튁스 강물에 몸을 담가 불사신으로 만들었는데 그 때 잡고 있던 발목만은 강물에 잠기지 않아 그 부분만 유일한 약점으로 남았다고 한다. 요즘 약점을 말할 때 쓰는 '아킬레스건'의 유래가 바로 이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바로 반신반인 길가메시와 반인반수 엔키두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원래 길가메시는 우룩(지금의 이라크 지역)의 폭군 이미지로 등장한다.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했고 급기야 백성들의 호소를 들은 창조의 여신 아루루가 최고의 신 아누의 형상을 따라 진흙으로 창조한 피조물이 바로 엔키두다. 아루루는 엔키두를 인간세상(우룩)으로 보내 길가메시의 난폭한 성질을 고치려 했던 것이다. 한가지 재밌는 것은 원래 반인반수였던 엔키두가 창녀와의 하룻밤 동침을 통해 완전한 인간으로 변모했다는 사실이다. 모계사회의 특징이 반영된 결과라고 하겠다. 한편 길가메시와 엔키두의 대결은 수메르 초기의 농경문화와 목축문화의 충돌을 형상화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어쨌든 두 영웅의 대결은 그야말로 용호상박이었다. 천지를 뒤흔드는 막상막하의 대결은 끝내 승부를 내지 못하고 서로가 서로의 힘을 인정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 대결을 계기로 길가메시와 엔키두는 피를 나눈 형제 이상의 우정을 쌓아간다. 그러나 신이 아니었던 엔키두의 운명은 하늘황소와의 싸움에서 끝을 맺고만다. 가뭄을 형상화한 하늘황소를 물리치기 위해 길가메시와 엔키두는 협공을 펼쳐 끝내 가뭄을 이겨냈지만 길가메시는 친구(엔키두)를 잃고만다.

 

친구를 잃은 길가메시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방황했고, 자신도 결국에는 엔키두와 같은 운명에 처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떠나는 곳이 바로 딜문, 신들이 사는 곳으로 이곳에 우트나피시팀(바빌로니아의 노아에 해당됨)이 있어서다. 그러나 세계 어느 곳의 신화에서도 신이 인간에게 신의 능력을 주지는 않는다. 길가메시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영원히 늙지 않는 불로초에 대한 정보만 줄 뿐이었다. 기대에 못미치지만 길가메시는 불로초를 얻게 되었으나 우룩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뱀에게 불로초를 뺏기고 엔키두와 마찬가지로 죽음을 빗겨가지 못하게 된다.

 

요즘 <길가메시 서사시>가 아동용 동화로 많이 소개되는 것도 이야기 전반에 걸친 두 영웅의 우정 이야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요즘 '우정'에 관한 얘기를 꺼내면 조금은 진부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조폭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뿐 어디에서건 우정보다는 경쟁이 더 강조되기 때문이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무한경쟁의 시대를 살아야 하는 현대인들의 운명이 저 아프리카 초원의 초식동물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하기야 같이 친구가 없어 아이들을 학원에 보낼 수밖에 없다는 부모들의 하소연을 들으면 이것도 우정은 우정(?)인가보다 싶다. 더불어 사는 삶. 교육의 목표이어야 하고, 국가 정책의 기본이어야 하지 않을까. 조폭 영화 속 건달들의 말도 안되는 우정보다 신화 속 두 영웅의 진짜 우정 이야기에 하룻밤을 손해보는(?) 것도 썩 괜찮은 경험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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