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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따따부따

북극항로 개설 보도와 맹목적 애국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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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레디앙, 2013년 8월2일, '온난화로 생긴 국뽕의 세계' by 이진우/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

 

“나는 매일매일 모든 면에서 좋아지고 있다.” (Day by day, in every way, I am getting better and better)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s)’로 유명한 프랑스의 에밀 쿠에(Emile Goue)라는 약사가 만든 자기 암시의 공식이다.

 

어느 날, 에밀 쿠에는 통증을 호소하는 한 지인의 방문을 받게 됐다. 지인은 너무 늦어서 병원에 갈 수 없으니 약을 지어달라고 읍소했다. 처방전이 없어서 약을 지어줄 수 없었던 쿠에는 고민 끝에 증상과는 아무런 상관 없지만 인체에 무해한 포도당류의 알약을 지어주었다.

 

며칠 후 지인은 병이 깨끗하게 나았다며 쿠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제대로 된 처방을 받았다는 믿음이 증세 호전에 영향을 준 것이다. 이를 플라시보 효과(가짜 약 효과)라고 한다.

 

에밀 쿠에는 이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긍정적인 사고가 병세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고 간단한 문장으로 자기 암시를 걸 수 있는 ‘쿠에의 공식’을 만들어낸 것이다. 플라시보 효과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널리 활용되기 시작했다. 의약품이 턱없이 부족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의사들은 가짜 약을 투약하고서 특효약이라고 속여 부상병들의 병세를 완화시키려고 했기 때문이다.

 

오늘 날, 플라시보 효과는 긍정적인 생각이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심리 효과를 증명해가면서 정신심리학의 상징적인 위치까지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만 알고 하나는 모른다. 어떤 행동이나 생각에서 도취할 수 있을 만한 장점이 나타나면, 그것의 단점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듯 혹은 없는 듯 치부해버린다. 플라시보 효과 역시 마찬가지였다. 긍정적인 생각을 통해 현상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플라시보 효과는 부작용도 심화시키는 단점이 있었던 것이다.

 

피부병 약인 그리세오풀빈의 실험보고에 따르면 가짜 약을 투여받은 사람에게서 실제약을 투여받은 사람보다 일부 부작용이 더 많이 일어나는 효과가 나타났다.

 

어쩌면 플라시보 효과가 부작용까지 수반한다는 것은 약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노시보 효과(Nocebo Effects)’다. 노시보 효과란 진짜 약을 처방받은 사람 중 부작용에 관해 공지 받지 못한 사람들이 공지 받은 사람에 비해 통증과 부작용이 훨씬 심하게 나타나는 현상을 의미한다.

 

실제로 혈액응고방지를 위해 아스피린을 장기 처방받은 사람 중 부작용에 관해 듣지 못한 사람들이 3배 정도 극심한 부작용을 호소했다는 임상실험 결과가 있다. 모든 게 사람 먹기 나름이라지만, 증상에 대한 1차 처방 없이 외부적인 효과에만 기대거나 모든 일에 부정적인 영향은 생각하지 않은 채 좋은 점만을 떠올리는 것도 위험한 일이다. 어쨌건 질병이 근본적으로 치유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며칠 간 거의 모든 언론을 흥분시켰던 북극항로 개설 소식은 증상 완화를 위해서가 아닌 고통 완화를 위해 언론이 놓은 마약성분과도 같았다.

 

 

 

정부는 장관 임명 때 입은 자질 부족 논란을 만회라도 하려는 듯 근래 들어 언론 브리핑을 도맡아하다시피 하는 해수부 장관을 통해 새로운 북극 비즈니스 길이 열렸다며 해운기업들의 북극항로 이용을 지원하기 위해 관련 인력을 대규모로 양성하겠다고 자신만만하게 발표했다.

 

유럽까지 북극항로를 이용하면 수에즈 운하를 통과할 때보다 거리가 32%(약 7,000km)나 단축되고 운항일수도 열흘이나 줄일 수 있어 물류비 절감효과가 매우 크다는 게 정부의 분석이다. 8월 말 현대글로비스가 내빙 유조선을 띄워 시범 운항에 들어갈 계획이다. 다른 해운회사들도 벌크선 등을 적극적으로 띄워 온난화를 블루오션으로 적극 활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는 이를 위해 북극 항로 이용 활성화를 위해 운항 선박에는 항만 시설 이용료를 50% 감면하는 안까지 추진 중이다. 결과야 열어봐야 알겠지만 이 정도면 정부도 기업도 가히 열풍이다. 미지의 땅이 열리니 이를 선점해 경제적 효과를 최대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이런 입장이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 그러나 무서운 건 도대체 왜 북극이 열리기 시작했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게 도대체 어떤 의미인지를 알아달라는 건 무의미해 보이기까지 한다.

 

얼마 전 영국 케임브리지대와 네덜란드 에라스무스대는 동시베리아해의 북극 빙하만 녹아도 피해액이 ‘6경 7,000조원(미화 60조 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보고서를 <네이처>에 발표했다. 2020년경이면 여름철에 바다얼음은 완전히 사라질 수 있고, 이 경우 바다 속 메탄이 일거에 방출되면서 지구온난화는 더욱 극심해진다는 분석이다.

 

연구진은 온난화로 동시베리아해가 녹아 10년에 걸쳐 500억톤 상당의 메탄을 방출하는 상황을 가정하니 2200년까지 ‘45경원(미화 400조 달러)’의 피해가 발생한다고 경고했다. 전세계 연간 GDP가 70조 달러(2011년 기준) 정도니 6년치의 경제가 통째로 사라지는 셈이다.

 

이쯤 되면 북극항로로 인한 경제적 이득은 그야말로 길가의 껌 수준이다. 그간 학자들이 경고해온 지구마을의 파국이 점점 실체화되고 있는 수순이다. 게다가 그 피해의 80%는 개발도상국으로 집중될 예정이라고 하니 약간의 경제적 이득이 생긴다고 해도 이는 언급하는 것조차 반인간적인 것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북극은 ‘선점하기 위한 새로운 시장’이며 ‘대한민국을 먹여 살릴 블루오션’이고, 북극 해빙은 ‘북극 개발을 둘러싼 만인의 투쟁의 신호탄’이다. 정부는 한 술 더 떠, 지난 5월“북극권의 환경보호, 지속가능한 발전과 관련한 이슈를 논의하는 국제 거버넌스”라는 북극이사회에 옵저버 자격을 획득한 것을 두고 “북극해 진출을 위한 국제사회 교두보 마련”했다며 “북극항로의 개척 촉진, 북극해 연안국에 부존된 가스, 석유 등 미개척 자원개발”이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게 어디가 봐서 환경보호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것인지. 2020년경 바다 속 메탄이 본격적으로 방출되기 시작하면 지구온난화는 통제불가능한 수준으로 갈 것이라는 경고에 관한 정부의 대책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럴 때는 남의 바다인가보다.

 

언론 역시 편협한 시각을 확대하는 데에 도움을 아끼지 않는다. 해양수산부의 기자회견이 있었던 7월 말, 거의 전 언론들이 북극시대가 열렸다며 해수부의 보도자료를 그대로 받아 적었다. “국적선사 내달 북극항로 처녀 운항…북극 비즈니스 모델 발굴”(연합뉴스), “해양 실크로드’ 북극 바닷길 개척한다”(SBS), “북극항로 8월 시범운항… 미래영토 선점 속도낸다”(동아일보), “유럽 에너지, 내달부터 북극항로로 열흘 빨리 온다”(중앙일보), “‘금싸라기’ 북극자원 선점위해 항로 개척”(헤럴드 경제).

 

제목만 봐도 자원 부족과 운송비 증가라는 병이 나아가는 듯하다. 그런데 정점은 조선일보가 찍는다. 해수부의 자료를 그대로 받아 적기 멋쩍었는지 기자의 분석을 곁들였다. “불투명한 북극항로 청사진…사업성 낮고 지원책은 ‘허망’”(조선일보).

 

보이지 않는 위험에 대해 생각할 때다. 지금도 이미 늦었다. 눈앞의 이익에 천착해 장기적인 위험을 외면하는 건 사악한 의사나 내리는 처방전이다.

 

‘국뽕’이란 말을 아시는가? 지나칠 정도로 맹목적인 애국주의를 비꼬아 ‘국가라는 뽕을 맞았다’라는 의미로 쓰는 신조어다. 국가 경제도 좋고,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도 좋다. 그 모두가 자유다. 하지만 그것이 다른 이들의 파국적인 희생을 바탕으로 한다면 그건 범죄나 다름없다. 국뽕의 주사를 놓자.


 

허접한 글이지만 참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강여호를 만나는 방법은 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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