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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태양주물 천씨가 김장 보너스를 받고 우쭐해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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쇳물처럼/정화진/1987년

 

업무 특성상 물류센터는 야간 노동력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업장 중 하나다. 야간 물류센터 노동자들에게는 낮에 자고 밤에 일한다는 것 자체가 고역이다. 본디 낮에 일하고 밤에 자는 게 만물의 자연스런 생체리듬이거늘 이를 거슬러 일하는 습관이 제 아무리 몸에 밴다한들 정상적인 건강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근무환경이 좋냐. 그것도 아니다. 어쩌면 근로 기준법의 사각지대가 야간물류센터일지도 모르겠다. 필자가 아는 한은 그렇다.

 

여름에는 열대야와 빗물처럼 쏟아져내리는 땀과 싸워야 하고, 겨울에는 혹독한 추위에 옷을 몇겹이나 껴입어도 살을 애이는 추위를 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작업복으로 갈아입을 수 있도록 마련된 캐비넷은 군대 관물대보다 못해서 몇 사람씩 옷을 돌돌 말아 쳐박아두니 온통 찌린내로 진동한다. 쏟아지는 졸음을 쫓기위해 마실 수 있는 커피 한 잔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서 현장 동료들끼리 갹출해서 마련한다. 작업복이니 작업화니 장갑은 제때 지급되지 않아 해지고 찢겨 보기에도 민망할 뿐더러 안전사고에 노출되어 있다. 작업이 식사나 간식 시간도 없이 밤새 이뤄진 탓에 돈으로 받는 식대라곤 요즘 전문점 커피 한 잔 값에도 훨씬 못미친다. 그나마 최저임금이라도 받고 있으면 다행이다. 상황이 이러니 젊은 사람들이 거들떠 볼 리도 없고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평균 연령은 해를 거듭할수록 고령화되고 있다. 휴가 한 번 쓰려고 해도 그 기간 동안 고생할 동료들을 생각하면 차마 용기를 낼 수도 없다. 한 해가 저물 즈음이면 결정되는 내년도 최저임금만 바라보고 있는 야간물류센터 노동자들에게 보통의 직장에서 연말이나 명절에 지급되는 보너스(상여금)를 기대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언감생심이다.

 


"배 안 고프냐?"

"고프다."

"뭐가 먹고 싶노? 아빠가 오늘은 먹고 싶은 거 다 사줄 수 있다."

"햄버그."

"그기 뭐고?"

"그런 거 있다." -<쇳물처럼> 중에서-

 

하루 일을 끝내고 동료들과 술 한 잔 하려고 대포집을 향해 가고있는 천씨에게 아들 석환이 녀석이 찾아왔다. 뭣 하러 여기까지 왔냐며 타박이라도 할 성 싶은 천씨가 오늘따라 목에 잔뜩 힘을 주고 더없이 살갑게 대하고 있다. 느닷없는 아버지의 태도에 기가 산 석환이도 밥집 문을 개선장군처럼 열어젖힌다. 애초에 탄가루가 지겨워 야반도주하듯 황지 광산촌을 떠나 도시로 나온 천씨. 도시로 나왔으나 일당잡이로 이리저리 구르다 결국 주물공장에 들어와 다시 탄가루와 어우러져 벌써 3년을 보내고 있으니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그래도 오늘 하루만은 우쭐해 있는 천씨. 천씨에게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어느 날 갑자기 광부들의 운명을 강타하는 규폐증은 야음을 타고 머리맡에 와서 벼락같이 '이젠 갑시다'하고 외치는 사형집행인이었다. 해고가 두려워 남한테 알리지도 못하고 속으로 분진과 함께 썩어 죽을 준비를 하게 되겠지. 마누라는 허우대는 장승만 한 사내를 옆에 두고 지새워야 하는 독수공방에 지쳐 대처에서 스며든 어느 놈팽이와 주린 밤농사를 짓다가 애새끼도 버린 채 멀리 도망가는 그 흔하디 흔한 광부들의 미래상……중략……공포에 질리고 질려 천씨는 진저리를 쳤던 것이다. -<쇳물처럼> 중에서-

 

작가 정화진의 데뷔작이기도 한 <쇳물처럼>은 대학 졸업 후 인천에서 노동자로 일했던 작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체험소설이다. 샤꾸(쇳물을 나르고 따르는 바가지), 스락스(첫물 위에 막을 형성하여 함부로 넘쳐 나지 못하도록 하는 가루) 등 주물공장 관련 전문용어는 물론 생생한 현장 묘사는 체험소설의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소설은 작은 주물공장에서 벌어지는 파업의 과정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지만 등장인물들의 세세한 감정들을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어 여느 노동소설과 달리 너무 과격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비현실적이지도 않다. 소설의 배경은 사회 각계각층에서 민주화 요구가 봇물처럼 쏟아졌던 1980년대가 배경으로 태양주물 노동자들이 김장 보너스를 받기까지의 투쟁 과정을 그리고 있다. 투쟁의 주체가 노동조합이 아닌 현장 노동자들들의 각개 약진으로부터 비롯되고 있다는 것도 주목할만하다. 노동조합 가입률이 10%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현실에서 대부분의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의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투쟁은 어느 별나라 이야기처럼 막연하고 공허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이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한 궁극의 목표이기도 하다. 저자 또한 현장 노동자들의 파업 과정을 통해 은연중에 자본의 탄압에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맞설 수 있는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랬다. 오늘은 천씨에게 있어서나 다른 동료들에게 있어서나 보통의 월급날하고는 판이하게 다른 월급날이었다. 김장 보너스를 함께 쥔 날이었기 때문이다. '태양주물' 10년 역사에 어느 누구도 쥐어보지 못했던 최초의 보너스를, 그것도 회사가 아량을 베풀어 동냥 받듯 감지덕지 받은 것이 아니라 폭풍이 몰아치듯 한바탕 뒤집는 싸움 끝에 받아낸 것이다. -<쇳물처럼> 중에서-

 

태양주물 노동자들에게 11월은 자신의 존재를 되씹어보는 계절이다. 생활비가 두 배는 더 들 겨울나기에 누구나 오한을 느끼는 계절이 11월이다. 통장을 깨서도 안되고, 김장이라도 할라치면 탄값을 제하고 나면 생활을 빠듯해지고, 평상시의 가불 갖고는 어림없는 달이 11월이다. 그래서 조출을 하고 잔업이나마 빠지지 않으려고 혼신의 힘을 다하지만 남는 것은 어김없이 찾아오는 몸살기뿐이다. 게다가 열악한 작업환경으로 젊은이들은 떠나고 노땅(?)들만 할 수 없이 남아있는 곳이 태양주물이다.

 

이런 태양주물에 변화가 시작된 것은 천씨의 몰딩 단짝인 칠성이 때문이다. 선천적인 붙임성으로 젊은이들이 다들 떠나는 태양주물에 20대인 칠성이가 버티어주면서 드디어 총각들이 열 명 넘게 불어난 것이다. 이들은 자기들끼리 술자리나 등산 모임 등을 통해 회사의 부당한 요구에 대응할 수 있는 힘을 키워나간다. 한편 불량율은 태양주물 회사측이 노동자들을 옥죄는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 불량이 어쩌니 저쩌니 하면서 회사의 손해를 들먹일 때면 태양주물 노동자들은 자라목 기어들어가 듯 괜시레 흐물흐물해지고 만다. 이런 태양주물에 그해 11월은 가슴 저 밑바닥에 응어리져 있는 분노가 서서히 끓어오르기 시작한 달이었다. 칠성이와 그 패거리(?) 총각들로 인해. 여기에 이들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고만 있던 우리의 천씨도 분노가 폭발하고 만다.

 

"거 상무님 말끝마다 불량 찾고 양심 찾고 하시는데 누가 잘못됐는지 따져봅시다. 현장 안에 환풍장치가 있습니까. 안전장치가 하나라도 돼 있습니까? 이 중에 누구 헬멧 쓰고 일해본 사람이나 쇳물 부을 때 보안경 써본 사람 있습니까? 아니면 장갑을 매주마다 받아본 사람 있습니까? 게다가 하루에 뽑아내는 물량이 다른 주물공장에 비하면 아마 20%는 더 될 겁니다. 저번 10월에 익수 형 허리나간 걸로 올해 벌써 산재가 네 건입니다. 노동부가 경고를 냈는데도 눈썹 하나 까닥했습니까?" -<쇳물처럼> 중에서-

 

주물공장의 생리를 잘 알고 있던 천씨는 오늘밤까지 요구조건을 받아주지 않으면 일손을 놓겠다는 최후통첩을 한다. 그래서 얻어낸 것이 바로 김장 보너스다. 이 정도가 뭐 그리 대단한 것이라고 할 독자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배경이 1980년대라는 것과 80년대가 아니고라도 30년 가까이 지난 오늘에도 최저임금마저 못받는 노동자가 수백만 명이라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태양주물 노동자들의 보잘 것 없는 승리는 결코 과거의 일로 치부할 수 없는 21세기 대한민국 노동자들의 비루한 현실이다.

 

처음으로 김장 보너스를 받았으니 우리의 천씨, 비상금조로 몇 장 꼬불쳐두고 남편 역할, 아버지 역할 한 번 제대로 할 기회가 생겼으니 어찌 우쭐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것이 다는 아니었다. 이 남자가 김장 보너스를 받고 우쭐해진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번 싸움을 통해 노동자의 권리라는 오래전에 묻혀버린 쇳덩어리가 벌건 형체를 드러내 듯 진짜 노동자로서 자각하는 자신을 보았기 때문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응어리져왔던 한이었던가! 그리고 얼마나 긴 세월 제대로 펼쳐볼 엄두를 못 냈던 못난 의식이란 말인가! 그것은 얼마를 더 받고 덜 받고의 문제가 아니라 뼈를 깎는 노동을 하면서도 사람다운 대우를 받아보지 못한 자신들의 과거에 대한, 또한 그동안 자신들을 기만해온 당사자에 대한 쇳물같은 분노였다. 그들 하나하나가 가슴 속에 수천 도의 분노를 안고 있는 용광로와도 같은 것이었다. -<쇳물처럼> 중에서-

 

열악한 물류센터 노동자들의 현실을 얘기하다 느닷없이 소설로 빠져 무슨 연관성이 있을까 의아해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사실 언급한 물류센터의 풍경은 필자가 일하는 곳이다. 업종은 서로 다르지만 30년 전과 지금의 노동환경이 어쩌면 이렇게 닮을 수 있는지, 아니 강산이 세 번 바뀔 동안 노동자들의 현실은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었다는 살아있는 증거를 보면서 희미했던 희망의 불씨마저 오월 미풍에 사그라들고 있음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대부분의 물류센터는 하청이라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여기에도 요즘 불거진 '갑의 횡포'는 어김없이 존재한다. 대부분 대기업인 원청의 하청업체에 대한 횡포와 하청업체의 노동자들에 대한 횡포는 선진국을 내다본다는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몇 년 전에 이명박 전 대통령이 물류노동자들의 얘기를 듣는다면 어느 택배회사의 물류센터에서 하룻동안 물품 분류하는 작업을 직접 경험하고 현장 노동자들의 고충을 들었다는 기사가 있었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필자가 속속들이 내막을 알 수는 없지만 태양주물 회사측이 불량율을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다면 물류센터에서 벌어지는 갑의 횡포는 파손과 배송 오류일 것이다. 이런 이유로 대기업인 원청은 하청 업체를 압박할 것이고 피해는 고스란히 현장 노동자들 몫으로 돌아오는 게 현실이다. 또 많은 원청 기업이 하청 노동자들의 근속을 인정해주지 않는 단가조정을 하기 때문에 물류센터는 하루 일당으로 전전하는 노동자들로 넘쳐나고 숙련된 노동자들은 찾아볼 수가 없으니 파손과 배송 오류는 거의 상시적인 일상이 될 수밖에 없다. 악순환의 근본원인은 바로 '갑의 횡포'에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인력 수급이 어려운 탓에 하청에 하청을 주는 방식도 비일비재하다. 그러니 어떤 물류센터에서는 부모의 동의를 받지 않는 것도 불법이지만 아르바이트로 고용된 중고등학생들이 근로기준법에 무지하다는 약점을 이용해 야간 수당이 빠진 최저임금을 지급하는 경우도 있다. 아마도 이런 현실은 비단 물류센터만에 해당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IMF 이후 경제를 살린다는 명목으로 기업들에게 준 노동 유연성이라는 특혜는 해가 갈수록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나락으로 추락시키고 있다. 현실이 이런데도 최저임금협상 시기가 오고 대체휴무 이야기만 나오면 자본과 권력과 언론은 이것 때문에 대한민국이 망할 것처럼 국민들을 협박한다. 대통령이 방미 성과랍시고 미국 기업의 투자를 자랑삼아 얘기하지만 노동자들의 피같은 임금을 담보로 했다는 사실은 어느 누구도 언급하지 않는다. 태국 노동자들의 최저임금마저도 우리 돈으로 환산해서 만원이 넘었다는 소식은 뉴스거리도 안되고, 되어서도 안되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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