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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반레와 김지하, 두 시인의 같은 듯 다른 삶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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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형식/방현석/2002년

 

“문재인 지지하는 48%는 국가전복세력이고 공산화시키려는 세력이다.

 

어느 극우주의자의 발언 같지만 안타깝게도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유신독재투쟁의 상징적 존재였던 김지하 시인이 모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한 말이다. 그를 두고 누구는 화합을 위한 변신이라고도 하고 누구는 역사를 부정한 변절이라고도 한다. 변절을 밥 먹듯 하는 정치의 계절에 변신과 변절의 차이가 백지장보다 얇다고 하지만 민주주의를 향한 타는 목마름을 호소했던 김지하 시인의 그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의 시간을 요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신이든 변절이든 당사자에게는 그만의 변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변화된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눈높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모두가 똑같을 수는 없다. 변신과 변절의 차이는 바로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눈높이에도 불구하고 그 사회의 본질이 바뀌었느냐에 대한 문제다. 노랗게 익은 감을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찾아오는 떫은 맛의 전율처럼 사회도 겉과 속의 변화가 같은 속도와 내용으로 진화할 수는 없다. 껍데기는 화려하게 변했는데 그 속을 들여다보면 본질은 그대로인 경우가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어느 누구도 변화된 사회에 맞게 살아가는 자신의 삶을 변절이라 부르지 않는다. 변절은 변하지 않은 본질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 제3자의 지극히 주관적인 시선들의 총합이다.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이 김지하 시인에게 실망하고 그의 변신(?)을 안타깝게 바라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반레'라는 인물을 통해 그 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존재의 형식

 

2003년 한 해에 제11회 오영수 문학상과 제3회 황순원 문학상을 동시에 수상한 방현석의 소설 <존재의 형식>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반레'라는 실명의 인물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저자 방현석의 반레에 대한 깊은 존경심이 엿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반레라는 이름이 생소하게 들리는 독자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또 어떤 인물이기에 저자가 실명으로까지 등장시켜 깊은 존경심을 표현했는지 궁금할 것이다. 이 궁금증은 잠시 접어두고 우선 소설 <존재의 형식>에 대해 알아보자.

 

2002년 《창작과 비평》겨울호에 발표된 <존재의 형식>은 민주화 운동 세대의 후일담 소설이다. 80년대 학생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했던 세 친구가 6.10 항쟁 이후 투쟁 목표가 사라진 90년대를 살아가면서 겪었던 갈등과 화해의 과정을 극적으로 그리고 있다. 즉 '존재의 형식'은 90년대를 살아가는 세 친구의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이며 소위 말하는 민주화 시대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서로 다른 존재의 형식은 변화된 시대의 본질에 관한 엇갈린 시선에서 비롯된다.

 

 

적극적으로 현실과 타협하면서 살아가는 문태,  민주화 시대 이후에도 결코 변하지 않은 본질에 절망해 현실로부터 도피해 버린 재우, 여전히 원칙을 지키며 살아가는 창은. 과연 누구의 삶이,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민주화 시대의 담론은 6.10 항쟁의 한계이기도 했던 절반의 성공에서 비롯된다. 민주주의를 쟁취했지만 권위주의 시대의 유산을 온전히 갖고 있던 자가 다시 대통령이 되었고, 독재의 추억과 야합한 세력이 정권을 연장시킴으로써 민주주의의 진보는 대중의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했던 게 90년대 이후의 우리사회 현실이다. 주인공 재우의 경험에서 제대로 쟁취하지 못한 그래서 제대로 학습하지 못한 민주주의의 참혹한 현실을 목도하게 된다.

 

그를 결정적으로 참을 수 없게 만든 것은 노동자들을 대하는 한국 기업의 태도였다. 70년대 한국의 주력 산업이 베트남으로 이전해오면서 노동자를 다루는 습성도 70년데 한국의 것을 그대로 가지고 왔다. 그의 주선으로 베트남에 진출한 공장에 들렀다가 베트남 노동자들을 신발로 때리는 한국 관리자를 목격한 날, 그는 밤을 새워 통음했다. 그리고 그 기업들이 진출하는 데 첨병 노릇을 한 자신을 주먹질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 -<존재의 형식> 중에서-

 

사회적 목표가 하나였기에 존재의 형식도 같을 수밖에 없었던 세 친구의 서로 다른 90년대의 삶의 형식과 그로 인한 갈등은 21세기 오늘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민주주의가 성숙했다고 자부하지만 여전히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환경과 싸우고 있고 반공을 필두로 한 매카시슴적 광풍은 여전히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수백만 명의 서민들이 복지 사각지대에서 신음하고 있지만 정치적으로 외면당하고 있는 게 엄중한 현실이기도 하다. 어쩌면 권위주의 시대를 처절하게 경험했기 때문에 본질은 그대로인 채 껍데기만 화려해진 민주화 시대를 살아가는 세 친구, 더 나아가 우리 모두의 상처는 더 깊고 아린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존재의 형식을 두고 누구의 삶이 옳으냐 그르냐를 선택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오히려 이상과 현실의 크나큰 차이로 생긴 상처를 먼저 치유하는 것이 급선무일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베트남 출신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반레'다.

 

"바이 꼬 떰 롬(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반레에 대해서는 소설 속에서도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본명이 레지투이인 반레는 베트남 국립해방영화사의 시나리오 작가 겸 감독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이라는 소설로 알려져 있지만 정작 반레 자신은 시인으로 불리어지고자 한다. 그가 '시인 반레'를 고집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반레는 베트남 전쟁 당시 호치민 루트를 타고 내려와 남부의 게릴라전에 참여했던 '반협정 인민'이다. 베트남 북부의 닌빈이라는 아름다운 마을에서 태어난 반레는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베트남 전쟁에 참여했다. 호치만 루트를 타고 오로지 걸어서 3개월 만에 사이공에 도착했을 때 그와 함께 입대했던 3백 명의 부대원 중에 살아남은 사람은 반레를 포함해 5명 뿐이었다. 필명 '반레'는 전쟁 중에 만난 친구 중에 시인이 되고 싶었지만 시인이 되지 못한 채 죽은 친구의 이름이라고 한다. 베트남이 강대국 미국을 상대로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던 이유를 '베트남 국민이 옳았기 때문'이라고 말한 반레는 민주화 이후 서로의 존재 형식을 두고 갈등하고 있던 세 친구 앞에 힐링 전도사와 같은 존재로 등장한다. 주인공 재우가 반레에게 느꼈던 적멸감(해탈의 경지)의 이유이기도 하다. 

 

"전쟁 중에 우린 사람들을 만나면 서로 정을 주지 않으려고 애썼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헤어져야 한다는 걸 알았으니까. 그것도 영원히. 처음 만난 사람을 보면서 무슨 생각이 제일 먼저 드냐 하면 말야, 내가 저 사람을 앞으로 두 번은 더 만날 수 있을까, 아니면 세 번? 그 안에 우린 대부분 죽게 마련이니까. 살아서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존재의 형식> 중에서-

 

소설은 반레를 통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구하지 않는다. 다만 본질은 권위주의 시대와 다를 바 없는 민주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친 마음을 치유해주고자 하는 것 뿐이다.

 

"우리는 우리 세대가 해야 할 일을 끝냈을 뿐이지요. 다음 세대에게는 또 다음 세대가 해결해야 할 일이 기다리고 있지요. 우리가 다 해버리면 다음 세대는 뭘 하고 살겠어요? 어떤 세대도 다음 세대가 해야 할 일을 미리 할 수는 없지 않을까……." -<존재의 형식> 중에서-

 

반레와 김지하

 

하지만 저자는 반레의 메시지 중에 베트남어로 '떰 로옴'이라는 '마음가짐'을 원칙주의자 창은이 했던 "무언가를 꿈꾸려는 자는 그 꿈대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라는 말과 결부시킴으로써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나름의 해석을 은연중에 보여주고 있다. 배경이 베트남임에도 불구하고 택시에 오른 재우가 어디로 가느냐는 운전사의 질문에 무심코 '명동성당'라고 대답한 마지막 대목에서 저자의 이런 의도는 더욱 분명해진다.

 

'떰 로옴(마음가짐)'은 저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내가 김지하 시인을 떠올린 결정적 단어이기도 하다. 소설 속에서 반레는 사회주의 베트남에서만 볼 수 있는 인간적인 아름다움이 위태로워 보인다는 문태의 말에 이렇게 대답한다. 아마도 문태의 질문은 자본주의 물결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는 사회주의 베트남에 대한, 머지 않은 시일내에 베트남도 결국엔 자본주의의 비인간적 생존논리에 내몰리게 될 상황을 우려한 것이다.

 

"우리는 공산주의를 위해서 싸운 것이 아니고 공산주의를 살았어요.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남쪽에서 우리는 십 년을 싸웠지만, 최소한 그 십 년 동안 나와 내 친구들은 공산주의의 삶을 살았어요. 자기가 살지 않은 것을 남에게 요구할 수 있겠어요? 나의 삶을 지탱해온 것은 거창한 이념이 아니라 어머니가 우리 형제들을 기르면서 가르쳐준 사소한 것들이었어요.……'그러나 누구한테서도 경멸받을 삶을 살아서는 안된다.'는 어머니의 그 말이 지금도 내 머릿속에 남아 있지요." -<존재의 형식> 중에서-

 

한편 김지하 시인은 반레가 2002년 국내 작가들의 초청으로 처음 한국에 왔을 때 과거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인이 했던 역할에 대한 솔직한 심정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선, 한국인이 베트남 전쟁에서 좋지 않은 역할을 한 데 대해 사과한다. 새로운 문명은 동아시아로부터 나올 것이다. 그 중에서도 베트남 민족과 한민족이 손을 잡고 새롭게 출발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문화일보> 기사 중에서-

 

사회주의 작가에게 그것도 베트남 전쟁이라는 민감한 문제에 대해 솔직담백한 심정을 고백했던 김지하 시인. 이랬던 그가 자기가 지지하지 않은 후보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대한민국 국민 절반을 국가전복세력으로 규정했으니 그야말로 '종북좌파'에서 '애국투사'로의 변신이라 할 수 있겠다. 반레와 김지하. 두 시인 모두 젊은 시절 불의에 맞서 투쟁했던 그래서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을 받아왔던 터다. 세월만 몇 십년 흘렀을 뿐인데 이렇듯 이념에 매몰된 김지하 시인을 보면서 젊은 시절 가졌던 '마음가짐'은 다 어디로 흘려보냈는지 분노하기에 앞서 연민의 정이 느껴지기도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누구를 대통령으로 지지하든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일 뿐이다. 그러나 개인의 선택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타인의 그것을 극단적인 방법으로 폄하하고 경멸하는 것은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다. 그가 그토록 강조하던 생명의 근본이 이런 것인지 묻고 싶다. 아쉽지만 김지하 시인에게 '변절'이라는 꼬리표가 붙게 된 것도 젊은 시절 의기로웠던 '마음가짐'의 해체와 더불어 세상을 바라보는 편협하고 극단적인 시선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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