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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그는 5월 광주의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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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얼굴>/1990년

 

오늘은 5·18광주민주화운동 32주년이다. 1995년 5·18특별법이 제정되고 1997년에는 5월18일이 공식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으니 국가 공식 기념행사로는 16번 째를 맞는 셈이다. 그러나 기념행사 그 어디에도 이명박 대통령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취임 첫 해 딱 한 번 참석한 이후 4년째 불참이다. 그 첫 해에도 기념행사 식순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삭제해 논란을 일으켰던 그였다. 더욱이 올해는 그 흔한 국무총리가 대독하던 대통령 기념사마저도 없었다. 얼마 전 버마(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명칭은 미얀마이나 쿠데타 정권을 인정할 수 없는 나는 버마로 쓰겠다.)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자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던 수치 여사를 만나 민주화 운운하더니 그가 지나온 자리마다 짙게 드리워진 가식과 정치쇼의 그림자만 새삼 확인할 뿐이다. 기념식장 한 켠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대통령의 조화가 한국 민주화의 여정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5·18 기록물'은 현대 기록물 중 유일하게 유엔 유네스코 세계기록물 유산에 등재됐고, 국제사회도 5·18광주민주화운동이 많은 동남아나 아프리카 국가의 민주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아직도 5월 광주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천박한 역사인식에는 전두환과 같은 5월 광주의 가해자들이 여전히 백주대낮에 거리를 활보하고 그를 영웅으로 떠받드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5월 광주의 아픔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당시의 사망자와 행방불명자, 부상자는 물론이고 그날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여전히 일상을 포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현실은 단순히 기념행사만으로는 치유될 수 없는 고통이자 정부가 짊어지고 가야할 숙제이자 의무다. 

 

 

여기 또 한 명의 피해자가 있다. 아니 그는 그날 살육현장의 가해자였다. 광주공원 쪽에 투입되어 시위를 완전 진압하고 소탕 후에도 죽일 것들은 죽이고 엎어놓고 묶을 것들은 손을 뒤로 돌려 비웃 두름 엮듯 묶은 다음 밝아오는 여명 속에서 의기양양하게 군가를 불렀던 7공수 공수부대원이었다. 광주 소탕 후 평범한 은행원으로 일하고 있는 그가 10년이 지난 지금 마치 미친 사람처럼 5월 광주 비디오에서 사진에서 자신의 얼굴을 찾고 있다. 그는 왜 그토록 자신의 얼굴 찾기에 매달리고 있으며 비디오 속 자기의 얼굴 속에서 무엇을 보고자 했을까.

 

이순원의 소설 <얼굴>은 5·18 당시 광주에 투입되었던 공수부대원의 얘기다. 소설은 MBC와 KBS에서 방영되었던 '어머니의 노래'와 '광주를 말한다'라는 광주 관련 다큐 프로그램과 사진 속 장면들이 중간중간 배치되는 형식으로 그날의 현장을 고발하고 있다. 주인공 '그'는 수십 번도 넘게 비디오와 사진을 뒤지며 자기의 얼굴을 찾고 있다. 심지어 정신과 치료까지 받고 있지만 그는 의사에게 그날 광주에 투입되었던 공수부대원이라는 사실을 숨겨야만 했고 이런 이유로 온전한 치료가 될 리 만무했다. 그가 집요하게 그날의 현장에서 자기 얼굴을 찾고자 하는 데는 평범한 은행원으로 일하면서 하루에 두 차례씩 출납 일을 보러온 어느 중소기업의 경리 박영은을 만나면서부터였다. 그는 결혼을 하게 된다면 그녀와 할 것이라고 생각해 왔었다. 그러나 그녀의 가족사를 알게 되면서 그녀에게 가졌던 애틋한 마음은 사라지고 병적인 그의 기행이 시작된다. 

 

"그 오빠는 …… 아시죠? 광주에서 있은 일. 그때 대학 3학년이었는데, 아마 살았다면 지금 김 주임님 나이쯤 됐을 거예요. 혹시 광주 가보신 적 있으세요?"
"아뇨, 아직 한 번도."

 

운명적인 사랑마저 포기하게 했던 그날의 기억. 그는 광주 비디오에서 자기의 얼굴을 확인하는 것으로 실연의 아픔을 달래려 했던 것일까? 아니면 평범한 일상인이 된 그에게 투영된 또 다른 얼굴을 확인하려 했던 것일까? 수십 번 되돌려 본 비디오 속에서 또 정신없이 모아 온 사진 속에서 자기의 얼굴을 발견하지 못한다. 그러면 그럴수록 엄습해 오는 것은 알 수 없는 불안감과 공포다. 그의 얼굴 대신 그의 눈에 비친 얼굴들은 시신들의 얼굴, 짓뭉개져 사람의 얼굴이라기보다는 정육점에 매달아놓은 고깃덩어리 같은 시신의 얼굴들과 죽은 아들의 관을 붙들고 통곡하는 광주의 어머니들 얼굴 뿐이다.

 

또 이 한장의 사진. '총을 든 다섯 명의 계엄군에게 붙잡혀 옷을 벗기우는 청년;그리고 그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라는 나레이션과 함께 보여진 그 사진.

 

 

그는 다섯 명의 얼굴들을 모두 알고 있었다. 카메라를 향해 손바닥을 내밀어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선 사람은 부대 내에서도 독실하다고 소문난 크리스찬이었다. 그리고 연행된 청년의 뒤에서 어깨 옷소매를 붙잡고 선 사람은 대학 3학년 중에 입대했다고 했다. 이 다섯 명의 공수부대원 중에 주인공 '그'도 있었을까. 소설은 확실히 밝히고 있지는 않다. 혹시나 있다고 해도 두 명을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의 얼굴은 확인할 길 없으니 말이다.

 

소설은 그날의 가해자가 동시에 피해자일 수 있다는 것을 조국과 어머니의 두 얼굴을 통해 보여준다. 즉 그날 그들을 부른 조국과 그를 그 자리로 끌어내 부른 조국의 두 얼굴, 죽은 자식의 시신을 붙들고 통곡하고 있는 그날의 어머니와 끔찍한 기억의 공포에 시달리는 그를 너도 피해자라며 자식을 두둔해야만 하는 그의 어머니. 저자가 이런 대비를 통해 고발하고자 한 것은 바로 국가폭력이다.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일 수밖에 없는 현실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무고한 시민들을 향한 국가의 폭력인 것이다.

 

언젠가 그들은 '폭도'의 누명을 벗고 복권되어도 우리는 영원히 그러하지 못할 것이다. 어둠과 광기, 누가 우리에게 그러한 살육이 우리의 유일한 임무인 것처럼 허락하고 강요하였던가. 그리고 그때 우리는 그들을 꼭 죽여야 할 어떤 절실한 이유가 있었던가. 턱없이 끓어올랐던 적의와 적개심, 내가 선 바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면 다른 사람들도 그러했을 것인가.

 

이명박 대통령의 이번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 불참에 분노하고 그의 역사인식이 천박하다고 비난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아직도 국가폭력의 주동자가 일부 세력에 의해 영웅시되고 있는 현실에서 국가 지도자의 무관심은 자칫 국가폭력을 정당화시켜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폭력은 물리적 가해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불법 사찰과 같이 정신적인 가해 또한 국가폭력의 또 다른 얼굴이다.

 

불을 끄자 방 안 가득 질흑 같은 어두움이 몰려오고, 꺼진 텔레비전 화면 속에 분명 예전의 그였을 철모를 쓴 얼굴 하나 바깥쪽의 그를 향해 어깨부터 총을 겨누고 있었다.

오랜만이다. 너……

그래, 오랜만이다. 너……

 

5·18광주민주화운동 32주년인 오늘 국가폭력의 야만성을 되돌아보고 아울러 그날의 후유증에 고통받고 있는 광주시민들과 그날의 트라우마에 갇혀있는 공수부대원들의 정신적 치료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주기를 바란다. 국가의 책임이자 의무이고 역사적 소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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