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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그리스

아도니스 신화의 원형이 된 두무지와 인안나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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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의 대표적인 미소년 꽃미남을 꼽자면 나르키소스와 아도니스를 들 수 있다. 이 두 꽃미남의 공통점을 들자면 하나는 여신의 사랑을 받았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죽어서 꽃이 되었다는 것이다. 알다시피 나르키소스는 숲의 요정 에코의 사랑을 거부한 채 그녀를 타인의 말만 따라하는 메아리로 만들어 버렸다. 한편 아도니스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로마 신화의 비너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미인박명이라고 했던가! 꽃미남의 운명은 그리 길지 않았던 모양이다. 대신 신화 속에서는 영원한 꽃미남의 대명사로 남겨두었으니 비극 아닌 비극이지 싶기도 하다. 에코의 사랑을 거부했던 나르키소스는 연못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에 반해 끝내 연못 속에 빠져죽었고 훗날 그 자리에 수선화로 다시 태어났다고 한다. 아프로디테의 연인 아도니스는 사냥 도중 멧돼지에 물려 죽었지만 아프로디테의 마법으로 그가 흘린 피는 아네모네꽃으로 피어났다고 하니 이보다 극적인 반전은 없을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아도니스의 죽음은 아프로디테를 짝사랑했던 전쟁의 신 아레스의 계략이었다고도 한다.

 

아도니스 신화의 원형이 지금의 이라크 지역인 메소포타미아에 존재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수천년 전 지금처럼 교류가 활발하지 못했을 그 시절에도 문화교류가 있었다는 증거라고도 할 수 있겠다. 가깝게는 일연의 <삼국유사>에 전하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라는 설화 또한 비슷한 내용으로 그리스 신화와 알렉산더 신화에도 전하고 있으니 신화의 확산과 전파는 지리적, 시간적 한계를 뛰어넘어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것 같다.

 

특히 메소포타미아 신화는 이집트와 구약성서로 대표되는 히브리 신화에까지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두무지와 인안나 신화'라고 할 수 있다. 두무지는 풍요의 신으로 오히려 탐무즈라는 바빌론식 표현이 더 익숙할 것이다. 두무지는 탐무즈의 수메르식 표현이다. 수메르의 기본신화로 일컬어지는 '두무지와 인안나 신화'의 내용은 이렇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두무지와 인안나 신화'의 시작은 인안나가 저승세계로 내려가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메소포타미아 신화의 대부분이 토판 형태로 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발굴 작업이 더 진행된다면 그 이유도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인안나의 저승행은 다양한 추측만이 있을 뿐이다.

 

인안나가 들어가고자 했던 저승세계는 그녀의 자매인 에레쉬키갈이 지배하는 곳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저승세계에는 철칙이 하나 있다. 한 번 저승세계로 들어가면 절대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 그러나 이 금기를 깬 신이 있었으니 그리스 신화의 헤라클레스가 유일하다. 어쨌든 인안나는 저승세계로 떠나면서 자신의 시종인 닌슈부르에게 만일 자신이 사흘 이내로 돌아오지 못하면 수메르 최고의 신인 엔릴과 난나, 엔키에게 도움을 청하라고 당부해 둔다.

 

그리스 신화에서 저승세계로 가는 길목에 아론 영감이 있듯이 수메르 신화에는 네티라는 저승세계의 문지기가 있다. 네티의 도전을 물리치고 저승세계에 도착한 인안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저승세계의 심판관 아눈나키였다. 그리고 죽음이었다. 인안나가 사흘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자 닌슈부르는 신들에게 이 상황을 알리게 되는데 저승세계의 법칙을 알고 있던 신들이 선뜻 나설 리 없었다. 엔키만이 인안나를 구하기 위해 나서는데 그렇다고 저승세계의 법칙을 거역할 수는 없는 법, 인안나가 다시 이승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인안나를 대신할 생명이 있어야만 가능했다.

 

신화를 즐겨읽는 독자라면 여기서 대충 짐작을 할 것이다. 인안나의 남편 두무지가 대신 저승세계로 끌려가야 한다는 것을. 엔키가 인안나를 대신할 많은 신들을 지목했으나 정작 인안나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는데 아내가 저승세계로 내려가 있는데도 희희낙락하고 있는 두무지를 보자 이를 괘씸하게 여긴 인안나는 남편을 끌고가도 좋다고 허락하고 만다. 그러나 실제로 두무지가 저승세계로 들어갔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두무지는 풍요의 신이다. 두무지는 계절의 변화에 따라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신이다. 겨울에 곡식이 모두 사라지면 죽었다가 봄이 되면 곡식들과 함께 다시 살아나는 신이 두무지다. 그렇다면 인안나 대신 끌려간 두무지가 다시 살아돌아 올 것이라는 신화 또한 존재해야만 한다. 그 내용 또한 재미있다.

 

두무지는 태양신 우투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우투는 두무지의 손과 발을 도마뱀으로 변신시켜 도망치게 해준다. 꼬리가 잘려도 문제없이 달릴 수 있으니 가장 탁월한 변신술이지 싶다. 두무지의 도망은 오래가지 못했다. 바로 파리 때문이었다. 파리가 두무지의 숨은 곳을 그의 누이인 포도주의 여신 게쉬틴안나와 인안나에게 알려주고 만다. 결국 인안나에게 붙잡힌 두무지는 게쉬틴안나와 함께 반년씩 저승세계에 잡혀있어야 하는 운명에 처해진다. 봄에 곡식이 피어나고 겨울이 되면 시드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신화는 메타포(은유)라고 하지 않았던가! 기상천외하고 도저히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얘기들이지만 인류가 수천년 동안 걸어온 길을 상징 언어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신화다. '두무지와 인안나 신화'가 여러 지역 신화의 원형이 되었다는 점도 대단하지만 계절의 변화를 이렇게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 또한 너무도 멋진 상상력의 소산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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