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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북 리뷰

장근석의 도쿄돔보다 화려했던 조선통신사의 일본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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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나의 <노빈손 조선통신사의 누명을 벗겨라>/일러스트 이우일/2011년/뜨인돌

#1. 도쿄돔을 가득 메운 4만여 일본팬들은 자리에 앉아 파도타기를 하며 장근석의 귀환을 기다렸다. 일본인들에게 '장근석'이라는 단어는 발음하기 힘들다고 하던데 그래도 '장근석' 세 글자는 도쿄돔을 펄펄 끓는 도가니로 만들고 있었다. 드디어 장근석이 등장한다. 일본팬들의 우뢰와 같은 함성 소리에 거대한 도쿄돔은 마치 부상이라도 할 것 같다. 형형색색의 야광봉으로 물든 도쿄돔은 장근석의 몸짓 하나에 하나에 괴성 아닌 괴성으로 가득찬다. '웰컴 투 마이 월드'라고 외치며 등장한 장근석은 무대 곳곳을 누비며 이날 하루만큼은 도쿄돔의 주인공이 되고 있다.

#2. 1719년 조선통신사 일행의 일본 행렬에는 쓰시마 군사 1,300명이 동원되었다. 대마도에서 에도 사이에 직접 접대를 맡았던 다이묘(과거 헤이안 시대부터 중세에 걸쳐 지방정부를 지배했던 봉건영주)는 33명이었지만 그밖의 조선통신사 행렬이 지나는 해로와 육로에는 인접한 수많은 지방의 다이묘들이 자신의 관할구역 주민들을 국역부과 형식으로 동원했는데 그 수가 하루에 3,000명에 달했다고 한다. 막부는 조선통신사의 왕복을 다이묘에 대한 군역과 인민에 대한 국역으로 융숭하게 대접했다. 

#1은 요즘 새롭게 뜨고 있는 한류스타 장근석의 도쿄돔 콘서트 현장을 스케치한 국내언론의 보도를 대강 정리해 본 것이다. 장근석의 도쿄돔 공연이 한류로 대표되는 민간교류의 문화 전파라면 #2는 신유한의 <해유록>에 묘사된 조선통신사의 일본 행렬로 당시 국가 차원에서 진행되었던 문화 교류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당시 조선 통신사 인원은 4~5백명 수준으로 일본은 조선통신사 일행을 맞이하는데 1,400여 척의 배와 1만여 명의 인원을 동원했다고 한다. 게다가 조선통신사 일행을 맞이하는데 드는 비용이 1년 예산과 맞먹었다고 하니 그 규모는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조선통신사는 한류 열풍의 원조라고 할 수 있겠다. 한·일간의 아픈 역사를 사이에 두고 이렇게 화려한 문화 교류가 있었다니 여전히 소원한 한·일간의 관계를 풀기 위한 새로운 대안으로써 문화 교류가 가지는 의미를 되새겨봄직하다. 문화란 이성으로 인식하기 전에 몸에 체화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과거 역사에 대한 진정성있는 사죄가 없는 상황에서 양국간의 문화 교류는 분명 한계가 있을 것이다.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이자고 하기에는 전쟁과 평화를 반복했던 역사, 그 가운데서도 가해자의 입장이었던 일본의 반성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공허한 메아리에 그칠 게 뻔하다.

뜨인돌 출판사의 '신나는 노빈손 한국사 시리즈' 제7편인 <조선통신사의 누명을 벗겨라>는 300년 전 있었던 양국간 문화 교류의 현장을 코믹하게 엮어내고 있다. 그렇다고 한류 열풍의 원조격인 조선통신사의 화려했던 일본 행렬을 동화적 상상력으로 그려내는데 그치고 있지는 않다. 한·일간에 존재했던 미묘한 역사적 사건들을 재구성하고 상기시키는데 의의가 있다 하겠다. 역사란 반복된다고 하지 않은가.

<조선통신사의 누명을 벗겨라>는 표지에서 보듯 어린이용 역사물이다. 그렇다고 어른들은 조선통신사에 대해 잘 알고 있느냐 하면 그건 아닐 것이다. 엄마가 또는 아빠가 아이에게 읽어주면서 중간중간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 쉽게 설명할 수 있도록 편집되어 있다. 재밌게 그려진 일러스트는 아이들이 어렵지 않게 역사를 접할 수 있게 해준다. 우스꽝스럽게 생긴 노빈손이 조선통신사 일행에서 이탈해 벌였던 모험을 통해 화려했던 조선통신사의 위용과 당시 한·일간에 존재했던 아픈 역사의 단면을 들여다보자.

보기만 해도 절로 웃음이 나는 주인공 노빈손은 마재인으로 조선통신사의 일원이 된다. 놀기 좋아하는 노빈손이지만 아버지의 유언으로 일본에 할아버지를 찾으러 온 박지기와 함께 쇼군 암살 음모를 막고 조선통신사의 누명을 벗기는데 지대한 공을 세우게 된다. 꽃미남 마재인 쌍둥이인 노훈남, 노화남 형제도 주목해야 할 캐릭터다. 당시 조선통신사는 일본의 수도였던 에도로 향하는 도중 각종 문화 공연을 펼쳤는데 대표적인 것이 조선의 뛰어난 마상재 기술을 보여주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박지기의 할아버지는 어떻게 일본에 오게 되었을까. 당시 문화 선진국이었던 조선은 화려한 도자기 문화가 꽃피고 있었다. 일본은 임진왜란 때 많은 조선 도공들을 조선인 포로로 일본에 압송해 갔는데 그들이 현재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 도자기의 효시가 되었다. 책 속에 등장하는 도공 할아버지는 당시 조선인 도공들의 애환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여기서 불편한 진실 하나. 일본 도자기의 효시로 알려진 이삼평에 대한 새로운 학설이 제기되고 있단다.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진 도공 이삼평은 그의 후손들이 가지고 있는 기록에 따르면 일본으로 끌려간 게 아니라 임진왜란이 발발했던 당시 왜군에게 길을 가르쳐주고 왜군이 철수할 때 따라갔다는 것이다. 결국 이삼평은 일본이 조선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던 것이다. 책 속에는 이런 역사적 사건들이 각주 형식으로 소개되어 있다.

이밖에도 도요토미 따라와 이에미쓰 쇼군은 여전히 과거의 과오에 대한 제대로 된 반성을 하지 않고 있는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을 대표하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서 보듯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은 겉으로는 친선을 내세우면서 속으로는 침략 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다. 도요토미 따라가 조선통신사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어떤 음모를 꾸미고 있을까. 직접 읽어보시라. 살짝 맛보기로 조선통신사의 누명을 벗기는데 일본의 대표적인 무인인 닌자 모르겐치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는 사실. 그가 적국의 스파이가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한·일간에는 활발한 문화 교류에도 불구하고 늘 긴장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 종군 위안부 문제와 독도 침탈 야욕, 교과서 왜곡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과거사 사과는 여전히 시늉에 그치고 있다. 가깝고도 먼 나라가 될 수밖에 없는 이 불편한 진실. 한양에서 에도에 이르는 조선통신사의 행렬을 통해 이 불편한 진실을 아이들에게 쉽게 설명해 줄 수 있는 책이 바로 <노빈손 조선통신사의 누명을 벗겨라>라고 할 수 있다. 한류의 이면에는 일본의 또다른 음모가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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