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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잠수함 속 토끼의 아름다운 반란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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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신의 <토끼와 잠수함>/1973

                                                    

잠수함 이야기를 아시오? 옛날의 잠수함은 어떻게 함 내의 공기 중에서 산소 포함량을 진단해냈는지

토끼를 태웠답니다. 그래서 토끼의 호흡이 정상에서 벗어날 때부터 여섯 시간을 최후의 시간으로 삼았소. 말하자면 토끼가 허덕거리기 시작하여 여섯 시간 후엔 모두 질식하여 죽게 되는 거요. 그 최후의 여섯 시간 동안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면 끝장이란 말이오. 아시겠습니까? 지금은 정확히 말해 토끼가 허덕거리고 다섯 시간째요. , 최후의 한 시간이 남았소. 어떻게 하시겠소?”

 

1973년 발표된 박범신의 소설 <토끼와 잠수함>의 일부다. 다음은 소설 <25>로 유명한 콘스탄틴 비르질 게오르규(Constantin Virgil Gheorghiu, 1916~1992, 루마니아) 1974년 한국을 방문해서 가졌던 문학 강연회의 일부다.

 

“20세 때 나는 해군에 소속돼 잠수함에 근무했다. 비좁은 잠수함 한 가운데 통에는 잠수함의 산소부족 현상을 측정하는 토기가 있었다. 산소가 모자라면 토끼는 사람보다 7시간 먼저 죽기 때문이었다. 졸병인 나는 그 후 토끼가 없는 다른 잠수함의 맨 밑바닥에서 일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나의 건강상태를 살폈다. 그들은 내가 음식을 잘 먹지 않고 괴로워하면 잠수함 안에 산소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그 때 나는 시인이 왜 인류에게 유용한지를 깨달았다. 시인이 괴로워하면 그 사회는 병들어 있는 것이다. 아무 것도 지닌 것 없는 나의 유일한 자랑거리는 내가 글을 썼고 또 괴로워했다는 것이다. 시인과 작가는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는 사회를 고발하는데 목숨을 걸어야 한다.” –‘미디어 오늘에서 인용-

과거 독일에서 잠수함을 만들면 토끼를 태웠다는 토끼와 잠수함에 관한 위의 두 이야기는 서로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시인을 잠수함 속 토끼에 비유한 게오르규의 진단은 시인과 작가가 괴로워하면 그 사회는 병들어 있다는 것으로 유신 치하 국내 문인들의 반독재 투쟁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한편 박범신의 소설 <토끼와 잠수함>에서 토끼는 유신 치하의 시민들을 상징한다. 그렇다면 잠수함이 상징하는 것은 어렵지 않게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토끼와 잠수함>은 잠수함이라는 폐쇄된 공간을 통해 법의 논리와 억압의 논리가 지배하는 1970년대 초 한국사회를 다루고 있다. 잠수함에 비유되는 폐쇄된 공간은 호송버스로 대치된다. 갖가지 죄목으로 호송버스에 실리게 되는 다양한 군상들을 통해 부당한 권력에 대항하는 서로 다른 인간형을 보여주고 있다. 소설에는 세가지 유형의 인간형이 등장한다.

 

먼저 더벅머리 청년과 함지박 여인으로 대표되는 적극적인 저항형 인간이다. 글의 처음에 등장하는 토끼와 잠수함 이야기는 더벅머리 청년이 제복을 입은 사나이(경찰)에게 항의하기 위해 한 말이다. 또 함지박 여인은 호송버스가 신호대기하는 사이 탈출을 감행하게 된다. 물론 멀지 않은 곳에서 다시 잡혀 호송버스에 실리게 된다. 결국 더벅머리 청년과 함지박 여인은 유신정권의 실체를 간파한 일부 지식인들의 행동하는 저항을 상징한다. 이에 반해 창녀는 현실 순응형 인간을 대표한다.

 

법이 딱지로만 처리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들은 일련번호로 떼어진 딱지의 숫자가 아니라 주어진 환경 속에서는 더위를 피할 권리도 있는 하나의 인간입니다. 문을…” -<토끼와 잠수함> 중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인물은 주인공 나와 중년의 사내다. 이들은 법의 논리와 억압의 논리가 부당하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는 인간형이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저항하지는 못하는 당시 대다수의 시민들을 상징한다. 그렇다면 소통을 거부한 채 잦아드는 토끼의 호흡을 방치한 호송버스는 어떻게 되었을까.

 

경찰버스에 아기를 안고 가던 여자가 친 모양이었다. 나는 벌떡 일어섰다. 둔탁한 것으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눈앞이 아찔해왔다. 도대체 나는 뭘 하고 있단 말인가. 아내는 거꾸로 서서 버둥대는 아기 때문에 사지가 찢겨 죽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아내는 이미 시뻘겋게 피를 뒤집어쓰고 죽었을 것이다. -<토끼와 잠수함> 중에서-

1970년대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나와 중년의 사내로 대표되는 대다수 시민들이 2012년에는 저항과 변혁의 주인공으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그 가능성은 이미 2008년 촛불집회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권력이 행사하는 부당한 법의 논리와 억압의 논리가 개인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구축되었다고 생각했던 민주주의가 권력의 성격에 따라 후퇴할 수도 있음을 바로 눈 앞에서 목격하고 있다는 점은 침묵하는 다수를 깨우는 기폭제가 되고 있는 현실이다. 게다가 개인 미디어의 발달은 제기능을 상실한 언론을 대신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12년은 선거의 해다. 2008년 촛불집회가 대다수 침묵하는 시민들이 변화의 주역이 될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면 2012년은 다수 시민들의 미래를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이미 한 차례 선거를 통해 바꾸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바 있다.

 

2012, 잠수함 속 토끼의 아름다운 반란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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