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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아내는 왜 밥그릇 뚜껑을 열어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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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한국소설] 중 이익상의 『어촌』/「생장」3호(1925.3)/창비사 펴냄

꽃 한 송이 피워 낼 지구도 없고 새 한 마리 울어 줄 지구도 없고 노루 새끼 한 마리 뛰어다닐 지구도 없다 -<슬픈 목가> 중에서-
 

한국의 대표적인 낭만주의 시인 신석정의 <슬픈 목가> 중 일부다. 20세기 한국소설을 얘기하려다 밑도 끝도 없이 신석정의 시는 왜 인용했을까? 낯선 이름, 소설가 이익상을소개하자니 마땅히 내세울 친숙한 이력이 없어서다. 소설 『어촌』의 작가 이익상은 신석정의 사촌매부다. 또한 이익상은 신석정을 시인으로 이끈 당사자이기도 하다.

 

이익상이 카프 발기인으로 참여한 데는 일본 유학 시절 접한 사회주의 사상 때문이었다.주로 신문사 기자로 활동했던 이익상은 그의 소설 『어촌』, 『번뇌의 밤』, 『젊은 교사』, 『위협의 채찍』, 『황원행』 등을 통해 신경향파적인 작품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당시 신경향파 작가들의 소설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살인이나 방화 등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익상이 추구했던 이상적 사회주의의 새로운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반면 이익상이 1930년부터 지병인 동맥경화와 고혈압으로 사망한 1935년까지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서 근무한 점으로 보아 그도 당시 지식인의 단골메뉴인 변절에서 자유롭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익상은 소설 『어촌』에서도 그의 지향점이었던 사회주의에 대한 직접적 언급은 피하고 있다. 다만 당시 민중들이 겪었던 고달픈 삶을 T어촌을 배경으로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뱃사람 성팔과 그의 아내 그리고 이 부부의 유일한 혈육 아들 점동이 살아가는 T어촌은 어부들만의 공간이 아니다. 힙겹게 삶을 지탱하고 있는 조선민중들의 삶의 축소판이다.

 


 

이 모여드는 사람 가운데에는 어장 주인들도 있었다. 어물을 무역하려는 상인들도 있었다. 또는 농부로서 고기잡이 한철을 어선의 품팔이꾼이 되어 일 년 동안의 농사 밑천을 장만하러 온 이도 있었다. 일평생을 두고 정한 처소가 없이 다만 한 조각배를 집을 삼아 금일에는 충청도, 명일에는 경기도 하는 유랑생활을 하는 선인들도 있었다. 또는 이 어촌에 집을 둔 사람으로 그들의 가족을 보내려고 나온 사람들도 있었다. -『어촌』 중에서-

 

멀리 황해 바다로 고기잡이를 떠난 성팔, 그리고 남편을 아비를 기다리는 아내와 점동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다. 바람과 물결의 휘파람 소리가 마을을 뒤덮고 있었다. 다만 성팔의 배는 새 배였기에 점동은 자꾸 새 배를 되뇌어 보지만 아내에게 찾아온 불길한 예감은 그의 가슴에서 점점 자라만 갔다. 급기야 마치 낙엽처럼 흔들리는 조각배에서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남편의 형상이 환영이 되어 아내의 머릿속을 흔들고 있었다.

 

휘익 문틈으로 기어든 바람이 사기등잔의 희미한 불을 꺼버리고 말았다. 바람에 불린 빗줄기는 방문을 두들겼다. 파도의 응얼거리는 소리는 악마의 저주처럼 길게 울리었다. -『어촌』 중에서-

 

다음날 이 조그만 T어촌은 온통 눈물바다가 되고 말았다. B도 부근에서 난파한 어선의 선원들이 생선 엮음처럼 서로 손과 손을 묶어 시체가 되어 나타난 것이었다. 그들은 왜 스스로 손과 손을 묶었을까?

 

그들이 난파를 각오하고 생명이 떠난 시체로 마을에 돌아갈 것으로 스스로 절망할 때 뒷날 시체 찾는 사람의 수고를 덜기 위하여 또는 한 배에서 최후의 운명을 같이하였다는 것을 표하기 위하여 손과 손을 단단히 맨 것이었다. -『어촌』 중에서-

 

죽음과의 사투를 벌이는 와중에도 가족의 행복과 그러한 저주에 걸리지 않기를 바라는 선원들의 비장한 결의에 고개가 숙여진다. 그러나 그 시체들 중에 점동의 아버지는 없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성팔의 생사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이 어촌에는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미신이 하나 있었다. 행방불명된 사람으로 밥 담은 식기의 뚜껑을 열었을 때 그 뚜껑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면 그 식기의 임자는 아직도 살아있다는 것을 의미했단다. 늘 바다와 사투를 벌여야만 하는 어촌 마을이었기에 있을법한 미신이지 싶다.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어촌 마을 사람들은 미신이지만 희망이고 작은 기대일 수밖에 없다. 이들 모자도 식기 뚜껑을 열어보는 일이 일과가 되고 말았다.

 

어머니! 이것 보아! 물이 떨어지네!”

 

그러나 성팔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식기 뚜껑에는 물이 으레 떨어졌다. -『어촌』 중에서-

 

앞서도 언급했듯이 이익상의 소설에는 신경향파 소설들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살인이나 방화 등이 나타나지 않는다. 특정 지식인에 의해 민중들이 각성하는 과정이 드러나 보이지도 않는다. 또 『어촌』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새 시대에 대한 자각도 없다. 그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미신에 의존해 삶의 희망을 이어가고 있다. 이익상은 주의니 사상보다 당시 민중들이 감내해야만 했던 고달픈 현실에 대한 고발을 통해 그가 지향하는 사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미신은 분명 타파해야 할 구시대적 유물이지만 미신에 의지해서라도 희망을 이어가려는 민중들의 삶에서 더 큰 슬픔과 분노를 자아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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