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에서 이카로스(Icarus)는 크레타섬의 미궁을 설계한 거장 다이달로스와 그의 아내 나우크라테의 아들이었다. 아테네의 왕이자 미노스왕의 적이었던 테세우스가 미궁에서 탈출하자 미노스는 이카로스와 다이달로스가 미궁의 비밀을 누설했다고 의심하여 ​​그들을 감금했다. 그들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큰 탑에 갇혔다고도 하고 미궁 안에 갇혔다고도 한다. 이카로스와 다이달로스는 다이달로스가 새의 깃털, 실, 신발끈,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이용하여 탈출했다. 탈출하기 전 다이달로스는 이카로스에게 너무 낮게 날면 깃털이 물에 젖을 것이고 태양에 너무 가까이 날면 날개의 밀랍이 녹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이카로스는 다이달로스의 경고를 무시했고 결국 날개의 밀랍이 녹아버렸다. 이카로스는 바다에 떨어져 익사했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이들 부자가 배를 타고 탈출했다고 한다.

 

추락하는 이카로스. 제이콥 피터 고위(1635년~1637년)

 

그리스 신화에서 이카로스는 지나친 자만과 무모함의 대명사가 되었다. 실제로 이카루스가 아버지와 함께 크레타섬을 탈출하려 했던 무모한 시도는 성공할 수도 있었지만 어리석은 계획이었다. 이카로스의 비행보다 더 유명한 것은 그의 추락이었다. 바다로 추락한 그의 이야기는 지나치게 높은 야망을 품은 자들에게 경고가 되었다. 그리스 신화 밖에서 이카로스가 인기를 얻은 주된 이유는 그의 비극적인 운명 때문이었을 것이다. 신화에서는 오만함이 그를 죽음으로 이끌었지만 현대 문학에서 이카로스는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이카로스는 전설적인 그리스 장인 다이달로스와 크레타 여인 나우크라테 사이에서 태어났다. 둘은 다이달로스가 크레타왕 미노스의 명령으로 크노소스에 미궁을 만든 후에 결혼했다. 기원전 2세기경의 그리스 학자 아폴로도로스에 따르면 나우크라테는 미노스왕의 궁정 노예였다고 한다. 다이달로스가 미노스 왕궁에서 쫓겨났을 무렵 이카로스의 나이는 13세에서 18세 사이의 청년이었다. 이 시기는 미궁에 갇혀 있던 미노타우로스가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에게 죽임을 당한 직후였다. 젊은 이카로스는 아버지의 직업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지만 아버지를 학대한 미노스왕에게 극심한 원한을 품고 있었다. 미노타우로스는 사람의 몸에 황소의 머리를 가진 괴물로 크레타의 여왕 파시파에와 포세이돈의 황소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카로스가 실존 인물이었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 아버지처럼 그 역시 신화적인 인물로 여겨졌다. 오늘날 이카로스는 꽤 인기있는 인물이지만 그리스 신화 전체에서는 그다지 존재감이 없었다.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의 신화적 기원 때문에 2세기경의 그리스 지리학자 파우사니아스는 그의 저서 <그리스 설명>에서 수많은 고대 그리스의 목조 신상인 크소아논(Xoanon)을 다이달로스가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 전설의 시대적 배경은 에게해 미노아 문명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였다. 이들은 한때 신화 속 존재라기보다는 실제 역사적 인물로 여겨지기도 했다.

 

추락하는 이카로스. 폼페이 프레스코화(40년~79년)

 

이카로스는 신이 아니었다. 그는 필멸의 인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일 뿐이었다. 이카로스가 신과 가장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아테나 여신이 그의 아버지의 기술을 축복했다는 점일 것이다. 일부 신의 은총을 제외하면 이카로스는 그리스 신화의 신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신적인 존재는 아니지만 이카로스는 이카리아섬과 인근 이카리아해 이름의 기원이 되었다. 이카리아섬은 에게해 북부 한가운데에 있으며 이카로스가 추락한 지점과 가장 가까운 땅으로 전해졌다.

 

이카로스는 지나친 자만, 무모한 야망 그리고 어리석음의 상징이었다. 이카로스는 영웅이 아니었으며 그의 추락은 수치스러운 사건이었다. 이카로스와 그의 비극적인 비행의 주제는 오만함이었다. 즉 이카로스 전설은 오만함과 자만을 경고한 그리스 신화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이야기일 것이다.

 

이카로스의 비행과 추락은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아리아드네와 함께 크레타섬을 탈출한 직후에 일어났다. 이에 미노스왕은 격노했고 그의 분노는 다이달로스와 그의 아들 이카로스에게 향했다. 어린 이카로스와 그의 아버지는 벌로 미궁에 갇히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만든 걸작에 갇혔지만 다이달로스와 그의 아들은 결국 미로같은 구조물을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이는 파시파에 왕비의 도움 덕분이었다. 그러나 미노스왕은 주변 바다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기에 파시파에는 그들이 크레타 섬을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도록 보장해 줄 수는 없었다. 다이달로스는 세계 최초의 비행기라고 할 수 있는 날개를 만들어 그의 아들을 크레타섬에서 안전하게 탈출시켜 주었다.

 

다이달로스는 비행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고 아들에게 경고했다. 그들의 탈출은 위험으로 가득 찬 긴 여정이었다. 인간이 바다를 건너 하늘을 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에 따르면 다이달로스는 아들에게 중간 길로 가라며 너무 낮게 날면 습기가 날개를 무겁게 할 것이고 너무 높이 날면 태양에 날개가 타버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이카로스는 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했다. 그는 날개가 녹기 시작하는데도 계속해서 높이 날아올랐다. 이카로스의 추락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이카로스는 바다를 향해 곤두박질쳤고 다이달로스는 이 장면을 절망적으로 지켜보아야만 했다. 다이달로스는 익사한 아들의 시신을 가장 가까운 섬인 이카리아에 묻었다.

 

추락하는 이카로슥 있는 풍경. 피터 브뤼겔(1563년)

 

이카로스가 왜 태양을 향해 날았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어떤 이들은 그가 유혹에 넘어갔다고 하고 또 다른 이들은 그의 오만함 때문이었다고 주장한다. 한 유명한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이카로스가 어리석게도 자신을 태양신 헬리오스와 동일시했다고 한다. 그는 처음에는 아버지의 경고를 귀담아들었다. 그러나 하늘을 나는 것은 일종의 권력욕이었고 이카로스는 그 유혹에 쉽게 굴복했다. 무엇보다도 이카로스가 태양에 너무 가까이 날아간 것은 신들을 시험한 행위로 해석되었다. 그 행위가 의도적이었든, 순간적이었든 아니면 사고였든 간에 신들에게 도전한 모든 신화 속 존재들처럼 이카로스는 비극적인 인물이 되었다. 그의 큰 야망에도 불구하고 그의 모든 꿈은 산산이 조각나 버렸다.

 

일부 이야기에서는 이카로스가 다이달로스와 함께 크레타섬 탈출을 시도하기 전부터 이미 큰 꿈을 꾸고 있었다고 한다. 이카로스는 결혼하고 영웅이 되어 평범한 삶을 벗어나고 싶어 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볼 때 이카로스가 다이달로스의 명령을 어기고 싶어 했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다이달로스는 크레타섬을 탈출하기 위해 두 쌍의 날개를 만들어 주었지만 아들이 신의 명령을 거역하려 들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늘을 나는 것은 이카로스에게 새로운 자유였고 비록 날개가 밀랍과 깃털에 불과했지만 그에게는 무적의 존재가 된 듯한 기분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태양의 열기에 날개가 녹아내리기 직전의 짧은 순간이었지만 이카로스는 자신이 진정으로 위대한 존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품지는 않았을까?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가 널리 알린 이카로스 신화는 적어도 두 가지 다른 판본이 존재한다. 하나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가 미노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늘을 날아 탈출하려 했다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유헤메로스설(Euhemerism)에 기반한 신화였다. 유헤메로스설은 신화적 사건이 실제 역사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이론이다. 즉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가 바다로 탈출했다는 이야기이다. 그들은 미궁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지만 하늘을 나는 대신 바다로 뛰어들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비행’이라는 단어가 탈출을 묘사할 때 은유적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변형된 이야기는 원래 이야기보다 훨씬 인기가 없었다. 이카로스는 배에서 우스꽝스럽게 뛰어내려 익사했다. 또한 다이달로스가 최초의 비행기인 날개를 만들었지만 훗날 자신의 발명품을 저주하게 된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또 다른 변형된 이야기는 모든 일에 관여하는 헤라클레스가 등장했다. 헤라클레스가 이카로스를 묻어주었다고 전해진다. 이카로스가 추락했을 때 그리스 영웅 헤라클레스가 근처를 지나가고 있었다. 다이달로스는 무사히 구조된 후 쿠마이의 아폴로 신전에 자신의 날개를 걸어두고 다시는 날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이카로스 동상.

 

후대 문학에서는 이카로스를 통제되지 않은 위험한 야망을 품은 인간으로 묘사했다. 그들은 결국 날개가 녹아내리고 추락하여 실패할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인류의 오만함을 보여주는 가장 유명한 사례 중 하나인 이카로스는 역사 속에서 수없이 언급되고 차용되었다. 오비디우스의 유명한 묘사 이후 베르길리우스는 그의 서사시 <아이네이아스>에서 이카로스를 언급하며 그의 죽음 이후 다이달로스가 얼마나 비탄에 잠겼는지 묘사했다. 특히 이탈리아 시인 단테 알리기에리는 14세기 그의 <신곡>에서 오만함에 대한 경고를 담아 이카로스를 언급했다. 17세기와 18세기 유럽 계몽주의 시대에 이카로스와 그의 밀랍 날개는 더 높은 권력에 대한 반역을 상징하게 되었다. 영국의 시인 존 밀턴은 <실낙원>을 집필할 때 오비디우스의 이카로스 신화를 참고했다. <실낙원>에서 이카로스는 밀턴이 창조한 사탄의 모티브가 되는데 직접적으로 언급되기보다는 암시적으로 표현되었다.

 

이처럼 타락한 천사, 더 높은 권력 앞에서 위태로운 인간 그리고 정치적 대담함은 모두 이카로스의 비극적인 추락과 연결되었다. 셰익스피어의 <율리우스 카이사르>에서 왕위를 갈망하는 인물이나 린 마누엘 미란다(Lin-Manuel Miranda. 1980년~ . 미국의 뮤지컬 감독)의 <해밀턴>에서 정치적 체면을 지키기 위해 가족을 파멸시키는 인물처럼 지나치게 야심찬 인물들은 종종 이카로스의 비극적인 추락과 동일시되었다. 이카로스 캐릭터들은 대부분 주변 세상을 무시한 채 자신의 야망을 쫓았다. 그들을 두렵게 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비행 즉 위험으로 가득 찬 여정 자체가 아니라 시도조차 하지 않음으로써 얻는 실패였다.

 

이카로스 신화는 다른 많은 그리스 신화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오만함을 경고했다. 이 신화는 전적으로 교훈적인 이야기로써 신을 뛰어넘거나 신과 동등해지려는 인간의 야망에 대한 경고를 담았다. 그러나 이카로스 이야기에는 그 이상의 의미가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를 묘사한 많은 예술 작품에서 이카로스와 다이달로스는 전원 풍경 속의 작은 점처럼 묘사되기도 했다. 이 작품들에서 이카로스의 추락은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그려졌다. 다이달로스의 아들이 바다에 추락하는 순간에도 세상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다. 따라서 이카로스 이야기는 단순히 경고의 의미뿐만 아니라 더 큰 차원에서 인간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목격자들의 무관심은 이 신화가 전하고자 하는 근본적인 메시지 즉 인간의 일은 얼마나 하찮은가를 보여주었다.

 

다이달로스는 아들이 땅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여느 아버지처럼 반응했다. 그에게는 세상이 끝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어부들은 계속해서 고기를 잡았고, 농부들은 계속해서 밭을 갈았다. 더 큰 그림을 보면 어떤 일이 다른 사람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야만 그 사람에게도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카로스 신화는 인간의 왜소함과 세상에 대한 인간의 관점을 이야기함으로써 신들은 전능하고 불멸의 존재인 반면 인간은 매 순간 자신의 필멸성과 한계를 깨닫게 한다.

Posted by 여강여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