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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북 리뷰

마야신화가 말하는 2012년 종말론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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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종말론이 호사가들의 입을 통해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다. 인터넷에서도 종말론 관련 정보들이 심심찮게 발견되고 영화나 TV다큐는 종말론의 실체에 관한 일반인들의 관심을 해소해 주고자 다양한 정보들을 쏟아내고 있다. 종말론은 불안한 시대의 반영이이다. 2012년 종말론이 처음은 아니다. 한 때 사회문제로까지 번진 1992년 휴거소동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여태 사과나무 한 그루 심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종말론을 얘기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그 어디에도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과학이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설명해 줄 수는 없다. 그렇다고 과학의 시대에 신화의 한토막을 빌어 종말론을 얘기한다는 것도 선뜻 수긍하기 힘들다. 2012년 종말론이 그렇고 1992년 휴거소동이 그랬다. 신화는 신들의 이야기다. 신화 기록의 주체는 신이 아니다. 인간이 남긴 신들의 이야기다. 신의 절대능력은 인간이 부여해 준 것이다. 신의 천지창조도 결국은 인간의 작품이다. 그런 신화를 우리는 신들의 예언으로 착각하며 살고 있다. 인간이 신을 창조하고 신화가 주는 메타포(은유)를 인간이 왜곡하고 때로는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나약한 인간, 그것이 정답이다.

마야인들은 진짜로 2012년 종말을 예언했을까?

2012년 종말론을 퍼뜨리는 사람들이 종말의 근거로 종종 언급하는 것이 마야신화다. 고대 이집트나 그리스에 비견되는 문명을 가지고 있었으나 어느날 갑자기 사라졌다는 마야문명의 신비는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기에 충분한 소재를 제공하고 있다. 마야 문명은 인근에 위치한 아즈텍 문명과 함께 메소아메리카 문명으로 통칭되기도 한다. 지금의 멕시코를 중심으로 한 아즈텍과 멕시코 남동부와 과테말라 지역을 아우르는 마야는 독특한 자신들만의 문명을 이룩했으면서도 그 유사성 또한 적지않다. 

마야인과 아즈텍인들은 독특한 역법체계를 개발했다. 이 역법체계는 일상에서뿐만 아니라 신화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260일력과 365일력을 같이 사용했는데 둘의 역법체계는 52년을 순환기로 한번씩 겹친다고 한다. 특히 마야인들이 사용했던 장주기로 알려진 역법체계는 현재 호사가들이 말하는 2012년 종말의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기원전 3114년에 있었던 신화상의 사건에서부터 시작된 이 장주기가 2012년까지만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호사가들은 마야인들의 신통력을 믿어의심치 않은가보다.

이는 마야와 아즈텍 신화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다. 마야인과 아즈텍인들은 세계는 끊임없는 창조와 파괴가 반복된다고 믿었다. 이 두 신화에서 선세계가 언급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장주기 말고도 260일력과 365일력에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그들은 새로운 순환기가 끝날 때마다(파괴) 그들만의 의식을 치뤘다고 한다. 그렇게해서 새로운 순환기(창조)를 맞이하는 것이다. 호사가들은 마야인과 아즈텍인들의 이런 일상 중에서 장주기만을 끄집어내어 종말론의 근거로 삼고 있는 것이다.

인신공양

마야인들과 아즈텍인들이 파괴와 창조의 순환기에 치렀던 의식이 인신공양이다. 인신공양은 신대륙을 발견한 서양인들이 그들의 문화를 처절하게 파괴하는 원인 중 하나이기도 했다. 멜 깁슨의 영화 <아포칼립토>를 보면 인신공양의 희생자를 찾기위해 다른 부족을 침략해서 그들을 포로로 잡는 장면이 나온다. 이 전쟁에서 살아남은 주인공 '표범 발'이 해안에 정박한 구대륙의 전함을 보면서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다시 숲으로 돌아가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영화다. 마치 다가올 살육의 공포를 예견이라도 한 듯...

또 메소아메리카 신화에서 인간은 옥수수로부터 창조되었다고 믿어진다. 인간에게는 생득의 의무가 있는 것이다. 연속되는 일련의 세상의 창조와 파괴는 이 의무를 다하지 못할 때 오게 되는 결과라는 것이다. 인신공양은 여기서 비롯된다. 즉 인간의 생명과 우주의 조화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인신공양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신화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태양의 신 토나티우는 자신의 행로를 따르는 것에 대한 댓가로 다른 신들의 충성과 피를 요구한다. 이에 격분한 새벽의 신 틀랄우이스칼판테쿠틀리는 태양을 향해 단창을 던진다. 그러나 그 단창은 목표를 지나가고 태양은 다시 새벽의 신을 향해 빛의 단창을 던져 그의 머리를 꿰뚫고만다. 순간 새벽의 신은 돌과 추위의 신 이차틀라콜리우키로 변하는데 새벽이 항상 추운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란다. 이 사건 이후로 신들은 자신들을 희생시켜 태양을 움직이게 하는 데 동의하고 제례용 칼로 각 신들의 심장을 차례로 도려낸다.

신화의 메타포는 신화를 읽는 독자만의 독창적인 해석이다. 똑같은 사건을 창조로 보느냐 파괴 즉 종말로 보느냐는 독자의 판단이다. 종말론처럼 신화의 메타포가 사회불안을 조장할 수도 있다. 인신공양이 마야와 아즈텍 시대에는 그들만이 공유했던 신화의 메타포로 정당화될 수 있었으나 현재는 끔찍한 살인이라는 범죄로 규정된다. 신화의 해석이 공공질서를 무너뜨려서는 안되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구대륙과 신대륙의 첫 대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문화간 충돌이 빈번한 시대에 충분히 새겨 들어볼 대목이라는 생각에서다. 아즈텍 학자들은 1524년 멕시코 시티에 도착한 프란체스코회 수사들과의 첫대면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당신들은 우리가 하늘과 땅의 주인을 모른다고 얘기한다. 당신들은 우리의 신은 진정한 신이 아니라고 한다. 이런 말들을 우리로서는 생전 처음 듣는 말이다. 그런 말들을 듣고 우리는 당황하고 혼란스럽게 되었다. 우리들보다 먼저 이 땅에 살았던 조상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삶의 양식을 물려주었다. 조상들은 진실함으로 우리의 신을 지켜왔고 경외심으로 숭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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