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수르Assur(또는 아쉬르Ashur, 안샤르Anshar)는 아쉬르의 지방신에서 아시리아 판테온의 최고신이 되었다. 아시리아 제국은 로마 제국처럼 다른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으로 유명하다. 아수르의 가족과 역사는 수메르의 아누와 엔릴 그리고 바빌로니아의 마르둑을 모델로 하고 있다. 그의 권력과 특성은 아누, 엔릴, 마르둑의 그것과 닮아있다. 아수르의 배우자는 닌릴(엔릴의 배우자)이었고 그의 아들은 나부(마르둑의 아들)였다. 아수르는 수메르나 바빌로니아 신들처럼 자체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최고신 창조에 관한 수메르나 바빌로니아의 신화들을 계승했을 뿐이다.

 

아수르는 아시리아의 왕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 점에서는 바빌로니아의 마르둑과 다르지 않다. 아시리아 왕은 아수르의 대제사장이었다. 아시리아 왕들은 종종 최고신 아수르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그의 이름을 차용하기도 했다. 아수르 숭배는 메소포타미아의 다른 신들과 마찬가지로 신전에서 아수르 동상을 돌보고 아수르를 둘러싼 여러 신전을 돌보는 사제들로 구성되었다. 사람들은 신을 기리거나 도움을 청하는 의식에는 참여했지만 오늘날 사람들이 인식할 수 있는 성전 예배는 없었다.   

 

아시리아 제국의 국가신, 아수르. 출처>다음 검색

 

아수르의 도상학은 종종 수메르의 아누를 차용해 뿔이 달린 투구를 쓰고 활과 화살을 들고 있는 전사 신으로 자주 표현되었다. 그는 깃털로 된 짧은 치마를 입고 날개 달린 원반 안에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아수르와 태양 원반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것이 없다. 아수르는 때로 다른 신들과 함께 바빌로니아 마르둑을 차용해서 뱀 용 위에 서 있는 것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메소포타미아 역사에서 아수르는 우르 3세 통치 기간(기원전 2047년 ~ 기원전 1750년)에 처음 등장했다. 그는 아쉬르의 지역신이었다. 기원전 1900년 아쉬르는 그의 이름을 따 아시리아가 되었다. 즉 아수르는 아쉬르라는 도시를 의인화한 신이자 농업의 신으로부터 출발해 국가신으로 격상되었다.  

 

아수르는 원래 도시를 둘러싼 지역의 신으로만 언급되다가 아시리아 국가 전체를 의인화하고 대표하게 된 경우에 해당한다. 아수르의 도시 아쉬르는 아카드의 사르곤 대왕(기원전 2334년 ~ 기원전 2279년)에 의해 건설된 소규모 무역 도시였지만 아나톨리아 및 메소포타미아의 다른 지역과의 무역을 통해 수도가 됨으로써 번성했다. 아시리아 왕 샤마쉬 아다드 1세(기원전 1813년 ~ 기원전 1791)의 통치 시기에 샤마쉬 아다드는 아수르의 이름으로 그 지역을 지배하고 있던 아모리인들을 몰아내고 그의 경계를 확보했지만 또 다른 아모르인인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왕(기원전 1792년 ~ 기원전 1750년)에게 패배했다. 이 때 아수르 숭배는 도시와 그것을 둘러싼 아시리아 땅으로 제한되었으며 바빌로니아의 마르둑은 최고신으로 숭배되었다.  

 

함무라비 사후 혼란 속에서 다른 세력이 이 지역을 장악했고 아수르를 그들의 최고신으로 숭배했다. 미타니족과 히타이트족도 아수르를 아시리아 국가신으로 숭배했다. 아다드 니라리 1세(기원전 1307년 ~ 기원전 1275년)는 아시리아를 정복했고 아수르를 그에게 승리를 부여한 신으로 인정했다. 이후 아수르의 명성은 지속되었고 급기야 <에누마 엘리쉬>에서는 아수르가 마르둑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아시리아 군대와 함께 아수르 숭배도 메소포타미아 전역으로 전파되었다. 정복지의 지역신들은 모두 아수르로 통합되었다. 아수르나시르팔 2세(기원전 884년 ~ 기원전 859년)가 권력을 잡았을 때 제국의 수도가 아쉬르에서 칼루로 바뀌었다. 그렇다고 아수르의 권력이 약해진 것은 아니었다. 티글라트 필레세르 3세가 정권을 잡으면서 아수르의 명성은 더 위세를 떨치기 시작했다. 티글라트 필레세르 3세는 세계 역사상 최초의 철제 무기로 무장한 군대를 창설한 것으로 유명하다.

 

한편 메소포타미아 여성들은 함무라비와 그의 신 마르둑이 등장할 때까지 남성과 거의 동등한 권리를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함무라비 통치 아래 남성 신들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여성들의 지위는 상대적으로 낮아지기 시작했다. 당시 여성의 지위가 높았던 주변국들도 아시리아의 정복과 함 께 정복자의 관습과 신앙을 따라야만 했다. 아시리아의 정복과 함께 아수르도 정복지의 최고신이 되었지만 모든 지역에서 이런 경향이 공유되지는 않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시리아는 신 아시리아 제국(기원전 912년 ~ 기원전 612년)일 것이다. 이 시기의 왕들은 성경에서도 자주 언급되고 있다. 아시리아의 무자비함과 잔인함에 대한 명성은 바로 이 시기를 언급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신 아시리아 제국이 어떤 다른 고대 문명보다 잔인하고 야만적인 것은 아니었다.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도시를 파괴하고 사람들을 살해했지만 이것을 제외하면 그 전이나 그 후의 문명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시리아 제국의 위대한 왕 아슈르바니팔(기원전 668년 ~ 기원전 627년) 이후 제국은 분열의 길로 들어섰다. 비대한 제국을 통치하기에는 중앙 정부의 힘이 이에 미치지 못했다. 많은 영토들이 제국에서 분리되기 시작했다. 기원전 612년에는 바빌로니아인, 메디아인, 페르시아인 등의 연합 군대가 아시리아 도시들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이 때 최고신이자 국가신이었던 아수르의 사원들과 동상들도 대부분 파괴되었다. 아수르는 아시리아인들과 그들의 군사적 승리뿐만 아니라 그들의 정치권력을 상징했기 때문에 아수르 신전과 동상은 아시리아의 적들에게 특히 중요한 파괴의 대상이었다.

 

아수르 숭배는 제국이 무너진 후에도 아시리아 공동체에서 지속되었지만 더 이상 전파되지는 않았다. 또 제국의 붕괴와 함께 아수르의 사원과 동상도 모두 파괴되었다. 초기 기독교 시대 아수르는 전능한 신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특히 기독교 선교사들은 아시리아인들의 단일신 숭배와 아수르의 아들이 다시 지상으로 내려온다는 개념을 받아들이기도 했다. 실제 아수르의 아들 나부는 제국이 몰락한 후에도 숭배의 대상으로 남아 있었다.

 

참고로 지중해 동부에 위치한 시리아Syria는 아시리아어로 ‘빛’을 의미하는 아수Assu와 같은 어원인 아시리아 제국의 국가신 아수르Assur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Posted by 사용자 여강여호 트랙백 0 : 댓글 0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