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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따따부따

한글날, 나는 우리말을 올바르게 사용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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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출근길 버스 안에서 당황스러운 경험을 했다. 맨 뒷좌석에 자리를 잡고 잠깐 눈을 붙이고 있는데 옆에 앉아있던 두 여학생의 대화에 그만 설잠을 깨고 말았다. 고등학생이나 많아야 대학 새내기 정도 돼 보이는 이들의 대화는 그야말로 당황스러움을 넘어 충격이었다. 아마도 한 여학생의 남자친구에 관한 얘기를 하던 모양인데 이들의 대화 중에서 욕을 빼 버리면 내용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욕설과 그들만의 언어로 넘쳐났다. 방송으로 보여준다면 '삐~익' '삐~익'하는 소리가 대부분이었을게다. 쫑긋 선 승객들의 귀는 이들이 버스에서 내리고서야 제자리를 찾는 듯 했다. 더러는 혀를 차는 어르신도 있었고 히죽거리며 이들의 뒷담화에 열을 올리는 또래 젊은 친구들도 있었다.

잠이 확 깨 버린 나도 한심어린 시선으로 버스에서 멀어지는 그 여학생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 보면 그 때 내가 그 여학생들에게 보냈던 조롱의 시선이 오만이고 이기주의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은 내가 아니었기에 그들을 한심스럽게 바라보았을 뿐 나 또한 그들보다 우리말을 아름답게 사용하고 있다고는 자신있게 말할 용기가 없다. 결국은 똥묻은 개가 재묻은 개 나무라는 격이랄까?

새삼스레 그 때의 일이 떠오르는 것은 오늘이 564돌 한글날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제는 해외언론으로부터 유력한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기대를 모았던 고은 시인이 아쉽게도 수상에 실패해서인지 우리말 우리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더불어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지 564년 되는 오늘 우리의 한글은 수출까지 되고 있는 상황이다. 글자가 없는 인도네시아의 찌아찌아족이 자신들의 말을 표기하는 데 한글을 차용한 것이다. 그러나 배우기 쉽고 쓰기 쉬우며 다양한 표현이 가능하다고 자부하는 한글이지만 정작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우리말과 우리글은 자부심은커녕 소통의 장애물로 전락되고 있으니 이 어찌 한심한 노릇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나는 우리말을 올바르게 사용하고 있을까? 내가 우리말을 아름답지 못하게 사용하는 사례들을 되짚어 보고 어느덧 생활의 일부가 되어 버린 블로그 글쓰기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자 한다.


나는 욕을 친근감의 표현이라고 주장하곤 한다. 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서로에게 기분 나쁘지 않은 범위에서 주고받는 욕은 허물이 없고 격이 없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꼭 욕을 빌려서 표현해야 될까? 문제는 습관이다. 그러는 사이 욕은 내 입에서 나오는 많은 단어들 중에서 그 비중이 상당한 수준까지 이르게 된 것 같다. 옆에서 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데도 보이지 않는다. 욕이 아무리 친근감의 표현이 될 수도 있다지만 욕은 욕이다. 자칫 상대방에게 잘못 전달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사이로 만들고 마는 게 욕이다.

나는 소위 말하는 '요즘 아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외계어(?)를 익힌다. 인터넷이 대중화 될 즘 나도 '요즘 아이들'이었다. 그때 인터넷상에서 가장 많이 썼던 말이 '방가방가'다. 이 말은 어느새 실생활에서까지 통용되는 단어가 되고 말았다. 이제 인터넷은 마치 신체의 일부가 되어 떼어놓고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이와 동시에 인터넷상에는 근본도 없는 단어들이 실시간으로 생성되고 언어생활의 많은 부분을 잠식시켜 나가고 있다. 이런 현상을 비판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들의 언어를 모르면 구세대라는 자격지심(?)에 한 단어라도 더 익히기 위해 열심이다.

나는 외국어와 한자를 동원해 현학적인 글쓰기를 한다. 그래야만 블로거들이 내 글을 인정해 줄 것처럼... 문득문득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 대신 포장할 단어를 찾기 위해 인터넷을 뒤진다. 이렇게 어렵게 찾은 단어로 포장된 글을 보면서 스스로 만족감을 느낀다. 언어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소통이라는 것은 망각한 채 말이다. 흔히들 역대 정치인 중에 달변가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꼽는다. 그가 달변가였던 이유는 간단하다.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단어로 일목요연하게 자신의 주장을 잘 정리해 주기 때문이다. 나처럼 스스로도 시간이 지나면 그 의미를 까먹어 버리는 그런 단어들을 사용하지 않는다.

말과 글은 나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내가 뱉어내고 써대는 말과 글을 통해 내가 추해 보일 수도 있고, 가식적으로 비칠 수도 있다. 진정성있는 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의미있는 소통을 위해서는 우리말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  이 단순한 진리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한글날 아침에 되새겨본다.

한글날의 국가공휴일 지정을 요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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