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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이집트

로마 황제도 사랑했던 신, 안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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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의 전쟁과 사냥의 신 안후르(Anhur). 출처>구글 검색


안후르(Anhur)는 오누리스(Onuris)라는 그리스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다. 안후레트(Anhuret)라고도 한다. 안후르는 고대 이집트 중에서도 상이집트 아비도스 근처 티스라는 곳에서 처음 알려진 전쟁과 사냥의 신이었다. 안후르는 그의 아버지이자 태양신인 라(Ra)의 적들을 잡고 살해한 사냥꾼으로 알려졌다. 안후르는 태양신 라의 배 앞에 서서 지옥의 큰 뱀 아포피스(Apophis, 아페프Apep라고도 하며 라와 적대적인 악마로 그려짐)를 막고 있는 신 중 하나였다


안후르는 고대 이집트 군대의 수호신이었으며 왕실 군대를 의인화한 신이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창의성을 나타냈기 때문에 다른 신화의 전쟁 신처럼 폭력적인 신은 아니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안후르 신을 모시는 축제에서 작은 막대기로 장난스럽게 모의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안후르는 멀리 있는 것을 되돌리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하늘의 전령사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의 이름은 아마도 태양신 라의 딸이 사나운 사자 형상을 하고 이집트를 버리고 누비아를 여행했던 전설을 언급한 것 같다. 라는 그리움에 사무쳤고 결국 사신을 보내 딸을 데려오게 했다고 한다. 이 전설은 위대한 사냥꾼과 사자 머리를 한 여신 메크히트(Mekhit)에 대한 이야기로 사냥꾼은 그녀를 설득해 이집트로 돌아오게 했고 이 일로 그 사냥꾼은 안후르라는 이름을 얻었고 사자의 여신 메크히트와 결혼도 하게 되었다. 또 다른 전승에 따르면 이집트를 버린 신은 습기의 여신 테프누트(Tefnut)였고 테프누트를 데려온 신은 공기의 신 슈(Shu)였다고도 한다.


안후르는 보통 깃털 같은 자두 네 개가 달린 왕관을 쓰고 창을 휘두르거나 밧줄을 들고 있는 인간 형상으로 묘사된다. 아마도 라의 누비아로 도망친 라의 딸을 다시 데려왔던 그의 역할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안후르는 태양 신 라의 아들이었다고도 하고 사랑의 여신 하토르(Hathor)의 아들이었다고도 한다. 전쟁의 신으로써 안후르는 테베 지역의 전쟁 신 몬투(Montu)와 소페두(Sopedu)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으며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전쟁 신 아레스(Ares)와 광범위하게 혼합되었다.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BC 42 ~ AD 37)는 소베크(Sobek)와 호루스(Horus)의 신전에 왕관을 쓴 안후르의 모습을 새겨 넣었다고 한다. 안후르 숭배가 티스에서 처음 시작되었지만 후대에는 숭배 중심지가 나일 델타(나일강 삼각주)의 사만누드 지역으로 옮겨졌다. 사만누드에서 안후르는 공기의 신 슈(Shu)로 간주되었다고 한다. 안후르가 좀 더 대중적인 신이 되면서 그는 바람 신의 특성까지 부여받았다고 한다


안후르는 이집트 신왕국(BC 1570 ~ BC 1070, 18,19,20대 왕조) 시대에 가장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다. 그는 호루스와 혼합되면서 호루스 안후르(Horus-Anhur)라는 별칭까지 얻게 되었다. 특히 누비아 사람들은 안후르를 아리헤스네페르(Ary-hes-nefer)라고 불렀는데 아름다운 집의 호루스라는 뜻이라고 한다. 또 누비아 사람들은 풍요의 여신이자 오시리스의 부인으로 알려진 이시스(Isis)를 안후르의 아내로 간주했다. 사실 이시스는 누비아 지역에 존재했던 독립적인 신이기도 했다


그의 대중적 인기로 인해 역대 이집트 왕조는 전쟁의 신 안후르를 모신 신전을 다수 건립하기도 했다. 고대 이집트 30대 왕조의 왕이었던 넥타네보 1세와 2세는 페르 슈(Per-Shu, ‘슈의 집이라는 뜻)라고 명명된 오누리스-슈 신전을 지었다. 아마도 초기 안후르 신전이었을 것이다. 이후 프톨레마이오스 4세와 5(BC 4 ~ BC 3세기에 존재했던 고대 이집트 왕조의 왕)는 파일리 섬에 아리헤스네페르(Ary-hes-nefer, ‘아름다운 집의 호루스라는 뜻) 신전을 짓기도 했다. 이 신전은 이시스 신전 옆에 있는데 은과 동으로 된 신의 부적이 다수 발견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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