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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폴리네시아

'연가'의 유래가 된 히네모아와 투타네카이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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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람이 치는 바다 잔잔해져 오면 오늘 그대 오시려나 저 바다 건너서.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빛도 아름답지만 사랑스런 그대 눈은 더욱 아름다워라. 그대만을 기다리리 내 사랑 영원히 기다리리.' 여름날 밤 모닥불을 피워놓고 빙 둘러앉아 한번쯤 불러봤을 노래 '연가'다. 낭만 가득했던 젊은 날의 추억을 떠올리는 노래 중 하나다.


하지만 마냥 즐겁게만 불렀던 '연가'의 가사를 제대로 음미해본 독자가 있을까? 영화 '국가대표'를 본 독자라면 영화 삽입 음악 중 '연가'를 기억할 것이다. 스키점프 선수였던 봉구가 저녁 하늘을 새처럼 비상하는 장면에서 아련한 선율이 흘러나오는데 분명 음은 우리가 알던 '연가'가 맞는데 가사도 느낌도 흥겨웠던 여름 날의 추억과는 전혀 새로운 노래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 때 흘러나온 선율이 바로 우리가 아는 '연가'의 원곡인 '포카레카레 아나(Pokarekare ana)'라는 노래로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민요다. '포카레카레 아나'는 '폭풍우 치는 바다'라는 뜻으로 정확하지는 않지만 '포카레카레 아나'가 우리나라에서 '연가'라는 제목으로 번안되어 불리게 된 것은 한국전쟁 당시 참전했던 뉴질랜드 군인에 의해서라고 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뉴질랜드 버전이자 '포카레카레 아나'의 탄생 배경이 된 전설은 뉴질랜드 북섬 로토루아 호수 한가운데 있는 섬 모코이에 전해내려오고 있다. 

▲히네모아와 투타네카이. 출처>구글 검색

뉴질랜드 북섬 로토루아에 있던 아리와족의 족장 딸이었던 히네모아(Hinemoa)가 어느 날 밤 호숫가를 거닐고 있었다. 히네모아는 어디선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피리 소리를 들었다. 그 피리 소리는 그녀의 마음을 단번에 빼앗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녀는 매일 밤 그 피리 소리를 듣기 위해 호숫가를 거닐었고 그 피리 소리를 따라 도착한 곳이 바로 모코이 섬이었다. 그녀가 따라간 그 피리 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모코이 섬 훠스터족의 족장 아들 투타네카이(Tutanekai)였다. 둘은 보자마자 첫눈에 반했고 연인이 되었다.


둘의 사랑이 순조롭게 결실을 맺었다면 그들은 그렇게 잊혀진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다행히도(?) 두 부족은 철전지 원수지간이었다. 히네모아와 투타네카이의 사랑도 결코 용납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사랑은 국경도 추월한다고 두 젊은 남녀의 사랑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더 깊어만 졌다. 매일 밤 히네모아는 부족의 시선을 따돌리고 투타네카이를 만나러 모코이 섬에 갔다. 이제 두 사람의 사랑은 어느 누구도 떼어놓을 수 없을 정도로 불꽃같이 타올랐다. 그러나 그들이 몰래한 사랑은 결국 히네모아의 아버지에게 들키고 말았고 아리와족의 족장은 딸에게 더 이상 투타네카이를 만나지 못하게 했고 심지어 모코이 섬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던 카누를 사용할 수 없도록 별도의 부하들을 배치했다. 내친김에 아리와족 족장은 부족회의를 통해 훠스터족을 공격하기로 결정했다.


그렇다고 두 젊은 남녀의 사랑을 막을 수는 없었다. 투타네카이는 피리 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알렸고 히네모아는 매일 밤 호숫가를 거닐며 멀리서 아련하게 들려오는 피리 소리에 눈물을 흘렸다. 모코이 섬으로 들어갈 수 있는 모든 교통 수단이 끊긴 히네모아는 드디어 힘든 결정을 했다. 호수를 헤엄쳐 가기로 한 것이다. 히네모아는 한겨울 폭풍우를 뚫고 차가운 호수를 헤엄쳐 갔다. 하지만 히네모아가 모코이 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기진맥진해서 정신을 잃고 말았다. 히네모아를 발견한 투타네카이는 그녀를 살리기 위해 몸을 부비기도 하고 따뜻한 물이 나오는 온천으로 데려가 얼어붙은 히네모아의 몸을 녹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급기야 그녀는 깨어났고 두 사람은 기쁨에 포옹을 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마침 딸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아리와족 족장은 눈치를 채고 모코이 섬으로 갔고 두 사람의 뜨거운 상봉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했던가! 히네모아의 아버지인 아리와족 족장은 두 사람의 사랑을 허락했고 훠스터족과도 그동안의 원한 관계를 끊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두 부족간의 원한 관계로 만날 수 없었던 투타네카이가 히네모아를 기다리면서 부른 노래가 바로 '연가'의 원곡인 '포카레카레 아나'였다고 한다. 특히 뉴질랜드 마오리족 출신의 소프라노 키리 테 카나와(Kiri Te Kanawa)가 불러 전세계적으로 알려졌다고 한다. 원곡의 가사를 보면 '로토루아의 호수엔 폭풍이 불고 있지만/그대가 걸어가면 그 바다는 잔잔해질 거예요/그대여 내게로 다시 돌아오세요/너무나 그대를 사랑하고 있어요'로 연인을 향한 애절함이 간절하게 표현되어 있다. 한편 우리나라에 '연가'라는 제목으로 소개되면서 모꼬지나 캠핑 때 흥겨움을 더해주는 단골 레퍼토리였다는 게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어쩌면 난관을 극복하고 사랑을 쟁취한 오래 전 연인에 대한 축하의 의미는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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