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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과 의사 크리스는 큐레이터인 아내 애니와 아들 얀 그리고 딸 마리와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크리스 부부는 얀과 마리를 교통사고로 잃게 되고 아내는 자식을 잃은 고통과 자책감에 남편 크리스에게 이혼을 요구한다. 크리스는 아내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이혼에 합의하지만 4년 뒤 자신마저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비록 육체는 세상을 떠났지만 크리스의 영혼은 자식과 남편을 잃은 고통에 시름하는 애니를 떠나지 못하고 주위를 맴돌게 된다. 급기야 아내 애니마저도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로써 남편을 따르기에 이른다.


그렇지만 저승에서 다시 남편을 만날 수 있을거라 믿었던 애니의 생각은 틀리고 말았다. 자살하는 사람은 천국에 갈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애니는 지옥으로 가게 되고 이 부부는 영혼마저도 만날 수 없는 기구한 운명에 빠지고 만다. 하지만 아내에 대한 사랑을 포기할 수 없었던 크리스는 애니를 지옥에서 천국으로 데려오기 위해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위험한 모험을 떠나게 된다.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영화 '천국보다 아름다운'의 줄거리다. 이승에서의 사랑을 저승에서까지 이어가려는 이 부부의 노력이 애틋하기만 한데 한편 결코 낯설지 않은 장면이기도 하다. 신화 읽기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말이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오르페우스Orpheus와 에우리디케Eurydice의 감동적이고도 슬픈 사랑이 바로 그것이다. 아마 이 지구상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도 이들만큼 서로를 사랑했던 연인이나 부부는 없을 것이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저승까지 갈 수 있다고 자신하면 모르겠지만.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부부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사진>구글 검색


오르페우스는 그리스 신화 속 최고의 가수이자 연주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집안 내력을 보면 평범한 오르페우스가 오히려 더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오르페우스는 태양의 신이자 음악의 신인 아폴론과 무사 여신 칼리오페의 아들이다. 노래와 리라의 달인이었던 아버지와 최고의 서정 시인이었던 어머니의 피가 어디 가겠는가! 한편 오르페우스의 어머니 칼리오페는 제우스와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의 아홉 딸들 중 한 명이다. 무사 여신이라 불리는 제우스와 므네모시네의 아홉 딸들은 예술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칼리오페는 서정시에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한편 오르페우스의 아내 에우리디케는 숲의 요정으로 어느 날 강의 요정들과 숲에서 놀던 중 아리스타이오스라는 청년과 마주쳤다. 아리스타이오스는 에우리디케의 미모에 반해 그녀에게 수작을 걸어왔다. 물론 아리스타이오스는 에우리디케가 유부녀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아리스타이오스의 수작에 놀란 에우리디케는 도망칠 수 밖에 없었다. 아리스타이오스를 피해 달아나던 에우리디케는 그만 풀숲에 숨어있던 독사에 물려 죽고 말았다. 참고로 아르고호의 원정을 마치고 돌아온 오르페우스가 어떻게 에우리디케와 결혼하게 되었는지는 전해지는 바가 거의 없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사진>구글 검색


아내를 잃은 오르페우스는 식음을 전폐하고 울기만 했다. 하지만 울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다시 아내를 만날 수 있는 방도를 찾아야만 했다. 드디어 아내를 찾아오기 위해 직접 지하세계로 내려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수소문 끝에 펠로폰네소스 반도 끝에 있는 타이나론 곶의 동굴에 지하세계로 내려가는 통로가 있다는 것을 알고 곧바로 출발했다. 하지만 지하세계 통로가 있다고 해서 모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산 사람은 절대 지하세계에 들어갈 수 없었다. 특히 스틱스 강을 건너야 했는데 이곳에는 뱃사공 카론과 머리 셋 달린 개 케르베로스가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오르페우스가 누구인가 명가수이자 명연주자이다. 오르페우스는 카론과 베르케로스 앞에서 지하세계로 들어가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리라를 연주했고 노래를 불렀다. 인간은 물론 산천초목과 생명이 없는 바위나 물까지도 감동시키던 오르페우스의 노래와 연주였다. 카론과 케르베로스도 그만 오르페우스의 연주와 노래에 넋을 잃고 지하세계로의 여행을 허락하고 말았다.

오르페우스의 연주와 노래 실력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지하세계를 지키고 있는 하데스는 물론 그의 아내 페로세포네까지도 감동시켜 적막하고 차갑던 지하세계를 울음바다로 만들고 말았다. 결국 오르페우스의 연주와 노래가 끝나자 하데스는 그에게 아내를 데려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지하세계도 마찬가진가 보다. 전제조건이 하나 있었다. 지하세계를 통과할 때까지 절대 뒤를 돌아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오르페우스는 '그까짓 것' 생각했을 것이다. 어쨌든 오르페우스가 앞장을 서고 에우리디케가 뒤를 따르면서 지하세계에서의 탈출이 시작되었다.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살해당하는 오르페우스. 사진>구글 검색


하지만 삶과 죽음은 엄연히 구분이 있어야 하는 게 인간세상의 이치다.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케를 지하세계에서 구출해 행복하게 살았다는 것은 이런 인간세상의 이치가 깨지는 순간이다. 즉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지하세계 탈출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운명이자 숙명이 아니었을까. 육신은 없고 영혼만 있는 에우리디케에게 무게감이 있을 수 없었다. 앞장섰던 오르페우스는 자주 아내를 불러보기도 했지만 대답만 할뿐 어떤 발자국 소리도 들리지 않기에 불안했을 것이다. 진짜로 따로오기는 오는 것일까. 인간이 늘 그렇듯 오르페우스는 지하세계의 출구에 다 다다르자 결국 참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순간 에우리디케는 연기처럼 다시 지하세계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 뒤로 오르페우스는 어떻게 되었을까?

다시 혼자가 된 오르페우스는 고향 트라키아로 돌아와 술과 음악으로 슬픔을 달래며 세월을 보냈다. 그 와중에도 수많은 트라키아 처녀들은 오르페우스에게 끊임없는 구애를 했다. 하지만 오르페우스는 일편단심 에우리디케밖에 없었다. 어느 처녀에게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반면 오르페우스에게 거절당한 트라키아 처녀들의 마음 속에는 복수심이 싹트고 있었다.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사단이 나고 말았다. 포도주에 취해 광란의 춤을 추던 트라키아 처녀들은 리라를 연주하고 있는 오르페우스를 발견하고는 돌세례를 퍼붓고 그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 헤브로스 강에 버리고 말았다.

갈기갈기 찢겨 강을 떠돌던 오르페우스의 시신은 무사 여신들이 발견해서 오르페우스의 고향인 트라키아에 묻어 주었다. 또 시신과 같이 발견된 리라는 하늘의 별자리로 박아 주었다. 이것이 바로 '거문고 자리'다. 하지만 오르페우스의 머리만큼은 찾지 못했는데 헤브로스 강을 지나 바다로 흘러든 오르페우스의 머리는 레스보스 섬까지 흘러 들어갔다. 레스보스 섬 주민들은 오르페우스의 시신임을 알아채고 정성껏 매장해 주었다고 한다. 사포와 같은 뛰어난 시인이 이 섬에서 태어난 것도 오르페우스의 영향이 아니었을까? 한편 저승에서 다시 만난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는 엘리시온에서 이승에서 못한 사랑을 다시 이어가며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사랑이 너무도 가벼운 시대다.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사랑이 마치 트렌드인양 일회성 소모품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시대의 변화에 맞춰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래도 버리지 말아야 할 가치는 꼭 존재하는 법이 아닐까? 그런 게 사람사는 세상의 참모습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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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강여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