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지하철 역에는 작은 도서관이 마련되어 있다. 개찰구 입구에 아담한 책상과 의자까지 있어 굳이 지하철을 이용하지 않더라도 가까운 지하철역에서 독서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게 했다. 또 출발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는 동안 보던 책은 지하철을 타는 동안 읽다 도착역에 마련된 책꽂이에 꽂아두면 되니 낯선 이들 틈에서 시선을 어디에 둘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책블로거라 자부하는 필자는 지하철을 이용하면서도 여태 한 권의 책도 읽어보지 못했다. 왜? 핑계같지만 읽을만한 책이 없어서다. 무슨무슨 이론서니 하는 책들을 지하철을 타고 가는 동안 읽을 수는 없지 않은가. 시민들 누구나 편하게 책읽는 재미에 빠질 수 있도록 한 취지는 좋으나 편하게 읽을 책이 없으니 그저 훌륭한(?) 장식품쯤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문화관광부에 따르면 작년 우리나라 성인 3명 중 1명은 일년 동안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았다고 한다. 연평균 독서량도 10.9권으로 한 달에 한 권에도 미치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게다가 평일 독서시간은 25.9분으로 매년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하기야 전세계가 인정하는 살인적인 노동시간에 얼마나 짬을 낼 수 있을지 '시간이 없어서'라는 변명은 충분히 공감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렇다면 주말에는 책을 좀 읽을까? 작년에 우리나라 성인들이 주말 독서시간은 29.9분으로 이마저도 해마다 줄어들고 있단다. 아직 여가생활로써의 독서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책블로거인 필자도 별반 다를 게 없다. 평일에야 책을 좀 읽는다치지만 주말에는 여가생활보다는 일주일 내내 부족했던 잠을 보충하느라 우리나라 성인 평균에도 못 미치는 독서시간을 갖고 있으니 자칭 '책블로거'라는 호칭에 손발이 오그라들고 부끄럽다. 게다가 책욕심과 독서열은 별개의 문제인 듯 사들인 책들은 많은데 완독했다고 자부할 수 있는 책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나마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의무감에라도 책을 완독해야 하니 이런 게 바로 동전의 양면이라는 걸까? 블로그 때문에 책읽는 시간은 줄었지만 매일매일 포스팅을 하느라(필자에게 1일1포스팅은 여전히 꿈..ㅎㅎ..) 보다 많은 자료와 정보를 찾아봐야하니 말이다.
그렇다면 부족한 독서시간은 어떻게 매울 수 있을까. 필자가 선택한 방법은 출퇴근하는 동안 책읽기다. 물론 대중교통을 이용해야만 가능한 일. 집에서 직장까지는 버스로 40여 분, 도로사정이 좀 안 좋을 때는 1시간 정도 걸린다. 이 시간만큼 확실한 짬은 없지싶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필자가 매일 이용하는 버스가 이용승객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도 행운이라면 행운일 듯...
오늘 하고자 했던 얘기는 이게 아니었는데 삼천포로 빠져도 한참 빠진 것 같다. 책읽기 능력과 글쓰기 능력은 정비례하지 않는건지 아니면 필자만 그런건지 늘 이렇다. 핵심 주변만 빙빙 도는 서평, 그래도 찾아주는 이가 있으니 이 어찌 고맙지 아니하겠는가! 참 필자의 블로거 '여강여호의 책이 있는 풍경'에 대한 성격 규정은 해야할 것 같다. 보시다시피 정통 서평 블로그는 아니다. 서평을 할만큼 책에 대한 전문 지식이나 소양도 없거니와 글쓰는 수준도 잼뱅이다. 그저 책으로 세상을 바라보고자 하는 것이다. 좀 거창하게 포장하자면 '책시사 블로거'?....얼굴이 다 붉어질 정도로 거창하긴 거창하다.
또...삼천포...
다시 의도했던 얘기로 돌아가자면, 버스에서 책을 읽다보면 짜증날 때가 참 많다. 꼭 책을 읽고있다고 해서가 아니라 어찌보면 공공장소에서의 에티켓일지도 모르겠다. 안그래도 집중력이 떨어지는데..ㅎㅎ..
버스에서 읽을 책으로는 가벼운 책을 선택한다. 단편소설이나 신화, 그리고 구독중인 책 월간지나 계간지 정도. 그런데 이마저도 쉬 몰입을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버스야 원래 시끄럽다는 것은 어느 정도 감안해야 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싶을 때가 마치 자기 집에 있는 것과 버스에 타고 있다는 사실을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굵은 목소리로 버스를 쩌렁쩌렁 울려대는 남자 승객들의 수다는 책을 읽다말고 머리를 몇 번이고 흔들게 만든다. 여자들의 수다는 애교 수준이다.
친구인 듯 대학생으로 보이는 두 남성승객의 수다는 마치 그들의 일상을 한 편의 영화로 본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옆에서 눈치를 줘도 모르는건지 아니면 알고도 무시하는건지 전혀 개의치 않는다. 둘 중에 한 명이라도 눈치를 채줬으면 하지만 그 기대는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아빠한테 혼난 얘기부터 애인과 싸웠던 얘기, 레포트를 어떻게 써야할지 고민하는 얘기 심지어는 중학교 때 첫사랑 얘기까지. 도깨비 방망이에서 금은보화가 쏟아지듯 이들의 얘기는 소재도 주제도 무궁무진하다. 잠자코 듣고만 있던 어느 노신사의 '거 좀, 조용히 합시다'라는 말에 '죄송합니다' 하고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그 노신사가 내리자 다시 시작되는 수다. 누군가가 또 나설 때까지 이들의 수다는 멈추지 않는다. 너희들 뭐니?...너희들을 진정한 수다맨으로 임명합니다.....
요즘은 길거리에서나 사무실에서 심지어는 술집에서까지 휴대폰을 놓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그만큼 휴대전화로 할 수 있는 게 많은 세상이다. 스마트폰....그러나 스마트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시크릿 가든'을 패러디한 것인지 천재용이 반짝이 옷을 입고는 방이숙에게 거품키스를 하는 순간 책을 읽다말고 힐끔힐끔 쳐다본다. 필자뿐만이 아니다. 주변 승객들은 고개를 삐죽 세우고 쳐다보는 사람이 있가 하면 안보는 척 하면서 살짝 눈을 돌리는 사람도 있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이 상상신이 현실로 돌아오자 DMB를 들고있던 아저씨는 혼자서 폭소를 터뜨린다. 그리고는 주위를 슬쩍....몰래 훔쳐보던 사람들은 태연하게 다시 정면으로 시선을 돌려놓는다. 혼자서 이 무료한 시간을 즐기고 있는데 뭐라 할 사람이 있겠는가. 문제는 이어폰도 끼지 않은 채 보고 있어 스마트폰 속의 소음이 여러 사람들의 시간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스마트한 시대, 스마트한 에티켓은 타인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스마트폰을 즐기는 것.
언제가 포스팅을 한 적이 있는데 버스 맨 뒷좌석에서 책을 읽고 있을 때 유치원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를 데리고 필자 옆자리에 앉았던 젊은 엄마. 아이가 필자를 힐끔힐끔 쳐다보자 젊은 엄마 왈 "이런 데서 책 읽으면 안돼, 알았지?" 버스라는 데가 아주 밝지 않기 때문에 젊은 엄마가 한 말의 의미는 충분히 이해했지만 굳이 필자가 다 들리도록 할 필요까지 있었을까. 책을 덮어야 할지 계속 읽어야 할지 대략난감....
마지막으로 기차와 달리 시내버스는 운전기사가 틀어주는 라디오 방송이나 음악은 듣느냐 마느냐 선택의 여지가 없다. 물론 무료한 승객들을 위한 운전기사의 배려겠지만 각자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문명의 이기들이 발달한 요즘 조금은 생각해봐야 할 문제는 아닌지 모르겠다.
어느 신문을 보니 최근 몇 년째 성인들의 독서시간이나 독서량이 줄어드는 실태를 '책 안읽는 사회'라고 규정해 놓았던데 독서는 개인의 문제기도 하지만 한편 사회적 분위기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분야이기도 하다. 과중한 업무, 과중한 수업,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로 인한 팍팍한 일상, 현실을 도외시한 독서정책.....책을 읽고 싶어도 읽을 수 없는 환경을 사는 사람들에게 '책 안읽는 사회'라는 표현은 너무 과한 비난은 아닐지런지.
대전지하철역 '시민 서점'에도 문고나 만화 같은 책들을 비치해 놓으면 많은 시민들이 좀 더 편안하고 가볍게 책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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