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것은
어쩔수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벽을 오른다.
물 한방울 없고 씨앗한톨 살아남을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 할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뼘 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때 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않는다.
저것은 넘을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때
담쟁이 잎 하나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개를 이끌고
결국 그벽을 넘는다.
중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에 실려있는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이다. 조만간 국민 애송시가 되지싶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하 평가원)이 교과서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를 이유로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를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서 뺄 것을 출판사에 권고해 논란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도종환 시인은 민주통합당 소속의 국회의원이다. 한편 평가원은 새누리당 이자스민 의원이 실제 주인공이기도 한 영화 '완득이'의 사진이 수록된 교과서에 대해서도 같은 이유로 수정·보완을 요청했다고 한다.
추억 속의 도종환 시인
이번 논란을 살펴보기에 앞서 도종환 시인에 대해 알아보자. 도종환 시인은 필자와 같이 소위 '전교조 세대'라 불리는 40대 초반의 성인들에게는 학창 시절 추억의 한 켠을 오롯이 차지하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중학교 시절 부부의 사별을 다룬 <접시꽃 당신>이라는 시는 서정윤의 <홀로 서기>와 함께 1980년대 '시의 전성시대'를 이끈 밀리언 셀러였다. 당시 이 시들을 암송하는 것은 성공적인 미팅(?)을 위한 필수 항목이었을 정도다. 도종환 시인이 여전히 지워질 수 없는 기억은 또 하나의 사건을 접하고부터이다.
1987년 6.10항쟁 이후 봇물처럼 터진 민주화 요구는 비단 성인들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당시 고등학교에서도 직선제 학생회 쟁취를 위한 작은 몸부림들이 있었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지역에서는 대부분의 고등학교에서 임명제 학생회 대신 직선제 학생회가 출범하기도 했었다. 당시 이런 분위기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의 출범과도 무관하지 않았다. 교과서에서만 배우던 민주주의와 민주화라는 의제는 고등학생들에게도 어느덧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전교조의 출범은 결코 순탄한 길이 아니었다. 교육당국의 수많은 교사들을 대량해직하는 폭력을 자행했다. 이 때 해직된 교사 중에 도종환 시인이 있었다. 당시 교사이자 작가였던 도종환 시인의 해직은 언론에서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옥수수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 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압니다
옥수수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 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도종환 시인의 <접시꽃 당신> 중에서-
한편 도종환 시인은 현실참여작가로도 유명하다. 한국민족문화예술인총연합회의 충북 지부장과 한국작가회의의 부이사장을 지내면서 문화, 예술 발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했으며 민주통합당 대선주자인 문재인 의원의 외곽조직인 '담쟁이 포럼'도 도종환 시인의 시에서 이름을 따오기도 했다. 19대 국회에 민주통합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도종환 시인은 현재 문재인 후보캠프의 대변인을 맡고 있다. '부끄러운 바보들이 살아서 바치는 통한의 헌사'라는 부제의 노무현 전대통령 추모 문집인 <이런 바보 또 없습니다. 아! 노무현>를 비롯해 많은 추모 도서와 추모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날은 흐리고 바람도 없는데 찔레꽃 하얀 잎이 소리 없이 지는 오월입니다. 부엉이 바위를 향해 걸어 올라가던 산길에도 찔레꽃은 지고 있었을까요? 야생의 들찔레꽃같이 살다 간 당신을 생각하니 나도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고 싶어집니다. -<이런 바보 또 없습니다. 아! 노무현> '도종환 시인의 글' 중에서-
최종 목표는 안철수 원장?
이번 논란의 핵심은 평가원이 내세운 정치적 중립성이다. 평가원에 따르면 새 교과서 심사는 공정성의 원칙, 객관성의 원칙, 일관성의 원칙, 합의의 원칙 등을 토대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이 중 객관성 확보를 위해 교육 내용이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하고 있는지가 심사의 대상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게 다분히 자의적이다. 30명으로 구성된 '교과서 검정심의회'가 새 교과서의 정치적 중립성을 해석한다고 하는데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개념이 모호한 상태에서 과연 공정한 해석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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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평가원의 국회의원 시의 교과서 퇴출 논란은 야당과 많은 문인들의 지적대로 과거부터 시행해 온 적이 없는 다분히 교육과학기술부의 정치적 선택이자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라고밖에 볼 수 없다. '꽃'의 저자 김춘수 시인은 5공정권 하에서 국회의원을 지냈지만 당시 그의 시가 교과서에서 퇴출되는 일은 없었다. 또 국회의원은 아니었지만 5공정권과 유신정권에서 정치적 행위에 관여했던 서정주 시인이나 박목월 시인의 경우에도 그의 시들이 교과서에서 퇴출되지는 않았다.
도종환 시인이 국회의원이 되어서 교과서의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되었다면 새누리당의 박근혜 전대표는 유신정권의 유산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는 상속자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국사 교과서에서 박정희 관련 부분을 통째로 삭제해야된다는 것인지 묻고싶다. 물론 박정희 본인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박근혜 전대표는 유신정권 6년을 어머니를 대신해 영부인으로 살았던 사람이다. 게다가 최근 박근혜 대선캠프에서는 쿠데타로 규정된 5.16을 혁명으로 바꾸려는 시도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 논란 어디에도 형평성이나 공정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평가원을 내세운 교과부의 지극히 정치적 행위인 것이다.
결국 시 자체의 중립성보다는 친노인사로 분류되는 국회의원 도종환에 대한 정치적 탄압이 그 배경에 깔려있다고 하겠다. 더 나아가 현재 야권의 가장 강력한 대선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안철수 원장을 겨냥한 고도의 정치술수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현재 교과서에는 안철수 원장에 대한 기술이 많이 게재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진로와 직업'이나 '나의 꿈'과 같은 글에서는 안철수 원장을 긍정적으로 서술하고 있다고 한다. 아직 대선 출마에 대한 확실한 의사표명을 미루고 있는 안철수 원장에 대한 '사전 힘빼기'라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보수 성향의 작가들도 이번 사태에 대해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라며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소설가 이문열 작가는 이번 사태에 대해 작가가 정치적 의도 없이 쓴 작품을 나중에 얻은 신분을 이유로 삭제토록 권고한다는 것은 창작인의 한 사람으로서 전혀 이해가 되지 않고 보기에 민망하다며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문열 작가는 한 때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의 공천심사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기존 교과서의 '민주주의'를 '자유 민주주의'로 수정해야 한다며 정치적 편향성을 노골화했던 교과부가 이제 와서는 정치적 중립성을 내세워 예술과 창작 분야마저 정치적 잣대를 들이대다니 한심하기 그지없다. 어쨌든 도종환 시인의 인생도 참 순탄치 않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담쟁이를 가로막고 있는 그 벽을 넘어야 하는 게 현실인 것을. 시인 스스로도 말하지 않았는가.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고.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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