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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5.02.17 벨레로폰, 아무리 영웅이라도 오만해지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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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레로폰테스(Bellerophontes)라고도 불리는 벨레로폰(Bellerophon)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코린토스의 영웅으로 사자, 염소, 뱀이 섞인 불을 뿜는 괴물 키메라와 싸워서 죽인 것으로 유명하다. 벨레로폰은 포세이돈의 아들이었고 아버지가 선물한 날개 달린 말 페가수스를 길들인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다른 모험으로는 호전적인 솔리모이, 아마존, 카리아 해적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일이 있다. 이 모든 임무는 리키아의 왕 이오바테스가 그에게 맡긴 것이었다. 이 모든 임무를 완벽하게 완수한 영웅은 오만해졌고 올림포스 산의 신들의 모임에 합류하려는 시도로 페가수스를 타고 올림포스로 날아가다가 제우스에 의해 땅에 떨어져 죽었다.

 

 

벨레로폰(Bellerophon)이라는 이름은 ‘발사체’를 의미하는 ‘벨로스(belos)’와 ‘살인자’를 의미하는 ‘폰테스(phontēs)’라는 단어에서 파생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벨레로폰은 ‘발사체로 죽이는 자’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고대 어원에 따르면 벨로로폰은 벨레로스(Bellerus)라는 코린토스의 폭군을 죽였기 때문에 받은 이름이라고 한다. 즉 ‘벨레로스의 살인자’를 의미한다. 현대 학자들은 다양한 인도-유럽어족 어원을 주장한다. 벨레로폰이 ‘살해자’를 의미하며 이는 ‘악’을 의미하는 ‘엘레론(elleron)’에서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다. 어던 학자는 엘레론이 물뱀이나 용을 뜻하는 인도-유럽어족 단어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결과적으로 벨레로폰은 ‘용을 죽인 자’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벨레로폰은 포세이돈의 아들이었지만 그의 친부는 보통 글라우코스로 언급되며 그는 또 제우스에게 속임수를 써서 벌을 받고 하데스에서 언덕 위로 거대한 돌을 끊임없이 굴려야 했던 코린토스의 왕 시시포스의 손자가 되었다. 호머로스에 따르면 벨레로폰은 할아버지보다 훨씬 더 많은 신의 은총을 얻었는데 신들이 그에게 아름다움과 남성다움의 모든 것을 허락했기 때문이다. 포세이돈은 또한 아들에게 페가수스를 선물로 주었다. 페가수스는 영웅 페르세우스에게 살해당한 메두사의 잘린 머리에서 태어난 날개 달린 말이었다. 다른 이야기에서 벨레로폰은 코린토스 근처 피레네의 신성한 샘에서 이 말을 발견했고 그리스 작가 헤시오도스는 이 사실이 페가수스라는 이름이 '물'에서 유래됐다는 것을 설명한다고 주장한다.

 

 

여신 아테나의 도움으로 말을 길들인 벨레로폰은 페가수스를 타고 날 수 있었고 이 능력은 그의 후기 모험에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폰테스(Phontes)’는 '살인자'를 의미한다. 벨레로폰은 벨레로스라는 남자와 그의 동생 델리아데스를 죽였다고 한다. 이것이 그가 코린토스를 떠나 티린스에서 모험을 시작한 이유이며 궁극적으로 더 많은 살인으로 이어졌다. 참고로 벨레로폰테스의 원래 이름은 말을 잘 다룬다는 의미를 지닌 히포누스였는데 이때부터 ‘벨레로스를 죽인 자’라는 뜻의 벨레로폰테스로 불리게 되었다.

 

벨레로폰은 키메라(또는 키마이라)와의 유명한 전투에 참여했다. 이것은 스테네보이아(일부 판본에서는 안테이아라고 함)가 벨레로폰이 그녀를 강간하려 했다고 주장하자 그녀의 남편이자 티린스의 왕인 프로이토스가 영웅에게 격노한 후에 일어났다. 사실 그녀는 벨레로폰을 보고 사랑에 빠졌지만 벨레로폰은 전혀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다. 프로이토스는 아내의 말만을 믿고 벨레로폰을 장인인 리키아의 왕 이오바테스에게 보냈다. 프로이토스는 장인에게 딸을 강간하려 했다며 기회가 있을 때 벨레로폰을 없애라는 편지를 같이 보냈다.

 

이오바테스는 먼저 손님을 예의 바르게 맞이하여 9일간의 잔치를 마련했다. 그런 다음 왕은 사위가 보낸 편지를 보여 달라고 했다. 편지를 읽은 후 이오바테스는 벨레로폰에게 키메라를 죽이라는 엄청나게 위험한 임무를 맡겼다. 키메라는 사자의 몸, 뱀의 꼬리, 염소의 머리를 가진 불을 뿜는 괴물이었다.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에 따르면 키메라는 발이 빠르고 강력했으며 세 개의 머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하나는 사나운 눈을 가진 사자의 머리였고 또 하나는 암염소의 머리였으며 나머지 하나는 뱀의 머리였다.

 

 

이 기괴한 생물의 혼합물은 100개의 불을 뿜는 머리를 가진 괴물 티폰과 하데스의 문을 지키는 세 개의 머리를 가진 사냥개 케르베로스를 낳은 뱀 모습을 한 괴물 에키드나의 자식으로 여겨졌다. 다른 판본 특히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서 키메라는 카리아의 왕 아미소다로스가 키웠다. 벨레로폰은 날개 달린 말 페가수스를 이용할 수 있었고 키메라 위로 날아다니며 활로 괴물의 등에 화살을 반복해서 쏘았다. 점점 힘을 잃은 키메라는 벨레로폰이 창 끝에 달아 입에 찔러 넣은 납덩어리로 인해 마침내 죽었다. 괴물의 불타는 숨결이 납을 녹인 다음 목으로 흘러 들어 중요한 장기에 굳어졌기 때문이다.

 

벨레로폰 신화는 특정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두었을 가능성이 있다. 튀르키예 남동 해안에 위치한 리키아의 올림포스 산 기슭에는 오늘날에도 천연가스(터키어로 '야나르')가 솟아나와 불길에 휩싸여 있다. 나아가 지역 사냥꾼이 실제로 사자와 뱀을 죽여서 동물이 하나로 합쳐진 영웅 살인자의 전설이 생겨났을 가능성도 있다. 셈어의 불을 뜻하는 어근이 ‘크메르(chmr)’라고 한다. 또 다른 이론으로는 키메라가 신성한 해[年]를 상징하는 고대 여신이었다는 것이다. 신성한 해는 세 부분으로 나뉘었고 각 부분은 고유한 상징을 가지고 있었는데 봄은 사자, 여름은 염소, 겨울은 뱀이었다. 그리스인을 상징하는 벨레로폰은 상징이 키메라였던 달의 여신을 숭배했던 고대 카리아인의 역사적 정복을 상징했을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벨레로폰이 페가수스를 길들인 것과 같은 이야기의 또 다른 측면을 반영하는 것일 수 있는데 말은 이 달의 여신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키메라를 물리친 후 벨레로폰은 악명 높은 호전적인 사람들인 솔리모이와 싸워야 했다. 페가수스는 다시 한 번 영웅이 적 위로 날 수 있도록 허락했고 이번에는 그들에게 큰 바위를 떨어뜨렸다. 벨레로폰은 다시 한 번 승리의 기쁨으로 돌아왔지만 이오바테스는 그에게 또 한 번 불가능한 과제를 주었다. 이번에는 흑해 연안에 사는 전설적인 싸움꾼인 아마존과 싸우는 것이었다. 여전히 페가수스를 타고 있던 이 그리스 영웅은 솔리모이와 싸웠을 때와 같은 전략을 사용하여 승리했다. 네 번째 과제는 벨레로폰이 케이르마루스가 이끄는 카리아 해적단을 물리치는 것이었다.

 

 

이오바테스의 마지막 도전은 그의 전사들을 일으켜 모든 것을 정복한 영웅을 매복 공격하게 하는 것이었다. 벨레로폰은 크산티아 평원을 범람시킨 그의 아버지 포세이돈의 도움을 받아 적을 물리쳤다. 마침내 이 청년이 신의 축복을 받았다는 것을 보고 이제 스테네보이아 사건에 대한 그의 견해를 믿게 된 왕은 마음을 바꾸어 그를 왕국의 상속자로 만들었다. 게다가 벨레로폰은 이오바테스의 딸 필로노에와 결혼하여 포도나무가 풍부하고 농업에 적합한 비옥한 땅을 받은 광대한 영지 즉 왕국의 절반 이상을 받았다. 이렇게 하여 벨레로폰은 이산드로스, 히폴로코스, 라오다메이아(사르페돈의 어머니)라는 세 자녀를 낳았다.

 

여러 사건을 거치면서 벨레로폰은 오만해 졌고 페가수스를 타고 올림포스 산으로 올라가 신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에 분노한 제우스는 쇠파리를 보내 페가수스의 엉덩이를 물어뜯게 했고 그 바람에 펠레로폰은 말에서 떨어졌다. 호메로스가 ‘모든 신에게 미움을 받았다’고 묘사한 영웅의 죽음은 인간의 오만에 대한 경고였다. 이 이야기의 일부 판본에서 벨레로폰은 킬리키아(튀르키예 남부)에 타르수스라는 도시를 세운다. 세 번째 판본에서 벨레로폰은 불구가 되어 저주받은 고독 속에서 죽을 때까지 대지를 방황한다. 그러는 동안 페가수스는 올림포스 산에 올라가 제우스의 번개를 운반하는 임무를 맡았고 매일 새벽을 가져오는 에오스의 보살핌을 받았다.

 

벨레로폰은 그의 고향이라고 전해지는 코린토스에서 주로 숭배를 받았다. 코린토스에는 벨레로폰에게 바쳐진 신전인 크라네이온이 있었다. 벨레로폰은 또한 리키아에서 영웅 숭배의 대상이었다. 벨레로폰은 카리아의 도시 바리글리아(아나톨리아 남서부에 있는 고대도시)의 건국 영웅으로 숭배되었다. 고대에 그는 마이안더의 마그네시아를 건국한 레우키포스의 조상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그는 또한 로마 공화국 후기의 코수티우스 사불라 가문과 관련이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페가수스를 길들인 벨레로폰은 때때로 승마술의 발명가로 숭배되기도 했다. 일부 자료에서 하늘로 올라가고자 하는 벨레로폰의 욕망은 그를 최초의 천문학자로 묘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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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레로폰, 페가수스 그리고 키메라는 기원전 7세기 중반의 코린토스 도자기에 처음 등장했다. 이 셋은 모두 이탈리아 남부 아풀리아 출신의 꽃병 화가 볼티모어가 기원전 4세기 중반에 접시에 그린 그림에도 등장한다. 메두사와 마찬가지로 키메라는 예술과 건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식 모티브였다. 한편 페가수스는 기원전 6~5세기 코린토스의 동전에 등장했다. 흥미롭게도 아마존이나 솔리모이와 싸우는 벨레로폰을 그린 그리스 도자기는 현재 전해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벨레로폰 이야기는 또 기원전 5세기경에 활동한 그리스 비극의 두 위대한 작가인 소포클레스와 에우리피데스가 쓴 세 편의 희곡의 주요 주제였지만 세 작품 모두의 개요나 단편만 남아 있다.

 

벨레로폰은 중부 이탈리아의 에트루리아 문명(기원전 8~3세기)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가장 유명한 에트루리아 청동 조각품 중 하나는 기원전 5~4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아레초의 키메라이다. 현재 피렌체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 있는 실물 크기의 이 작품은 높이가 78.5cm이고 길이는 129츠이다. 지금은 사라진 왁스 기법을 사용하여 청동으로 주조되었다. 등에서 튀어나온 염소의 머리는 피를 흘리는 상처 때문에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뒷다리에 두 번째 상처가 보인다. 이러한 세부 사항은 이 작품이 벨레로폰과 페가수스를 포함한 더 큰 작품의 일부였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강력히 시사한다. 마지막으로 벨레로폰과 페가수스 신화는 로마 예술에서 인기 있는 주제였다. 특히 조각된 준보석 카메오(바탕색과 다른 색깔로 보통 사람의 얼굴을 양각한 장신구)와 바닥 모자이크의 날개 달린 말은 불멸의 상징이 되었다. 서기 3세기경의 파룬도르프의 정교한 모자이크에는 벨레로폰이 키메라를 창으로 찌르고 있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데 후에 묘사된 성 게오르기우스가 용을 죽이는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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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강여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