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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1.27 한 달을 살기 위해 열한 달을 죽어 사는 아내 (26)

 

문순태의 <일어서는 땅>/1986

                                                    

최근 주요 정당 대표들이 모두 여성들로 채워짐으로써 새 정치에 대한 바램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불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그들이 살아온 삶의 이력들은 극과 극의 대비라 할 정도로 공통점이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당정치 역사상 처음일 것 같은 여성대표 시대가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여성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특성 때문이 아닌가 한다.

 

사랑을 이야기할 때 흔히 언급하는 에로스니 플라토닉이니 하는 단어들이 특정 상황을 아우르는 시각적이고 제한적인 사랑을 의미한다면 모성()는 이들 단어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가장 근원적 그것이라 할 수 있다.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은 실체가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에로스니 플라토닉이니 하는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근원적 그것이라는 것은 그 속에 내재된 사랑 이상의 본능적 그것이라는 의미가 된다. 모성은 모성 그 자체로 용서할 수 없는 상황을 용서케도 하고 가벼이 넘길 수 있는 일상도 분노로 들끓게 하기도 한다. 어떤 영화나 드라마보다 감동적이고 감성적인 코드가 모성애인 것이다.

 

문순태의 소설 <일어서는 땅>에서 바로 모성()의 기적과도 같은 힘을 보게 된다. 모성의 발현은 아픔을 고통으로 격상시키고 비극을 더 비극적이게 한다. 

중첩해서 되살아난 비극의 역사

 

박요셉의 아내이며 토마스의 어머니인 조마리아는 여름이 끝나는 무렵부터 이듬해 오월까지 정신병자처럼 넋을 잃고 있다가도, 아카시아꽃이 피기 시작하면 죽었던 사람이 되살아나듯 그렇게 망각의 긴 잠에서 깨어나 아들 토마스를 찾아 나서는 것이었다. -<일어서는 땅> 중에서-

 

그날 이후 육 년 동안이나 반복된 아내의 일상은 이랬다. 한 달을 위해 열한 달을 죽어사는 아내. 어쩌면 아내의 이런 일상은 그녀가 살아있는 동안 끝없이 반복될지도 모른다. 1980년 오월, 아카시아 꽃내음과 함께 사라진 아들 토마스를 찾는 그날까지. <일어서는 땅>은 한국현대사의 가장 아픈 기억 중 하나인 광주항쟁 당시 행방불명이 된 아들을 찾기 위한 한 어머니의 종교와도 같은 모성애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저자에게 그 때 왜 그 일이 일어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 날의 사건으로 겪게 되는 가족의 아픔을 상기시키고 파괴된 일상의 회복만이 종교적 숭고함을 갖는 것이다.

 

광주항쟁과 함께 박요셉 가족을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처럼 괴롭히는 사건이 하나 더 있다. 바로 1948년 일어났던 여순반란사건이다. 박요셉은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으로 끌려가 죽은 아버지 대신 가장 역할을 하고 있던 형을 여순반란사건 때 잃고 말았다. 소설은 아내 조마리아가 해마다 아카시아꽃이 필 때면 아들을 찾아 광주로 향하는 아내의 모습과 형을 찾아 남도 끝 조그만 항구도시를 배회하는 어머니를 오버랩시키면서 전개된다. 구두닦이 아들이 왜 총을 들었는지 모르는 아내와 당신의 아들이 좌익이요 우익이요 하는 질문에 우리 아들은 오른손잽이라고 말했던 어머니에게 가장 소중했던 것은 오로지 아들일 뿐 그 어떤 이데올로기에도 관심이 없을 뿐더러 그런 세상을 알지도 못한다. 세상이 그들을 그렇게 보는 것 뿐이다.

 

문순태 소설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이데올로기의 몰가치성을 얘기하면서 정작 소설의 배경은 이데올로기의 현장을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저자는 각종 소설적 장치를 통해 이데올로기의 존재를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린다. <일어서는 땅>의 소재이자 주제인 모성애도 바로 그런 저자의 의도가 담긴 소설적 장치라 할 수 있겠다.

종교로도 치유되지 않는 상처

 

소설의 등장인물들 중에는 중요한 특징 한가지가 있다. 바로 카톨릭 세례명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요셉, 조마리아, 토마스인 가족의 이름 뿐만 아니라 토마스의 성당 친구인 프란체스카 등 이것은 인간의 마지막 안식처인 동시에 종교로도 치유할 수 없는 비극의 깊이를 보여준다. 특히 해마다 오월이면 아들을 찾아 헤메던 아내가 다시 제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 행동이 십자가를 항아리에 처박아 버리는 장면에서는 더욱 그렇다.

 

오늘은 이놈을 만나게 될 거로구만요. 내 기도가 하늘에 닿았을 거예요.”

당신은 언제나 토마스를 찾아 나설 때마다 그렇게 말했지. 작년에도, 그 작년에도그랬다가 토마스를 찾지 못하고 돌아와서는 하느님이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다면서 십자가를 항아리 속에 처넣어 버리고선…” -<일어서는 땅> 중에서-

 

또 소설에서는 비극적 역사의 주범인 이데올로기를 무력화시키면서 이데올로기로 덧씌워진 사람들이 사실은 이데올로기와 무관한 삶에 대한 뜨거운 투쟁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때 마을 사람들은 구두닦이 토마스가 구두통 대신 총을 메고 텔레비전 화면에 나온 것을 가증스러워하는 눈치들이었다 

셔터가 내린 은행 문은 무엇 때문에 지키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은행의 금고 안에 많은 돈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더군요. 바보 같은 소리에 나는 웃고 말았습니다. 토마스의 말로는 구두닦이를 해서 모은 자기 돈 육십만원도 그 은행의 금고 속에 있다고 했어요.”  

발단이야 뻔하죠. 꼭 그걸 말해야 아나요? 그러나 지금은 자신들이 살기 위해서 싸우는 거겠죠.”
-<
일어서는 땅> 중에서-

 

한편 소설은 박요셉이 형의 일기장 내용을 회고하는 장면과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통해 비극적인 현대사의 씨앗이 일제 강점기 때문에 잉태되었음을 은연 중에 내비치고 있다. 아내의 마음 속에 서서히 일어서는 땅, 무등산은 토마스의 분신이자 아내를 살아있게 하는 원천이다. 그러나 결코 끝나지 않은 비극의 시대, 지금쯤 박요셉 부부는 시인이 되고자 했던 토마스가 어느 날 편지에 같이 보내온 <구두닦이>라는 시처럼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머니 나는 지금/십자가를 닦고 있어요/아버지가 아침마다/숫돌에 낫을 갈고/밤마다 어머니가 우물가에서/맑은 샘물을 퍼올려/누더기 헌옷들을/깨끗하게 빨아 말리듯/별처럼 빛나는 우리들의/꿈을 닦고 있어요/나의 꿈은/더러운 구두창이 아니고/서슬이 퍼런 아버지의 낫이며/낡은 누더기일지라도/부끄러움을 가리는/어머니의 흰 빨래이고 싶어요.

<이 포스팅과 관련된 책>

Posted by 사용자 여강여호 트랙백 1 : 댓글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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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s://crabbit.tistory.com BlogIcon 굴뚝 토끼 2012.01.27 15:35 신고

    연말부터 들쭉날쭉 출장 중이라 블로깅을 제대로 못하는 바람에
    인사도 제대로 못드렸습니다.

    설명절 잘 보내셨습니까?...^^

  3.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s://chamstory.tistory.com BlogIcon 참교육 2012.01.27 15:55 신고

    6.25도 그렇고 분단이며 한국정치의 구조적인 모순인 친일잔재청산도 모두 일제식민지 시대와 무관하지 않지요.
    그걸 억지로 덮고 감추려는 세력들이 실권을 장악하고 있으니 모순이 해결될리 없지요.
    과거를 덮어야 애국자가 되고 권력장악이 가능한 세력들....
    언제 저들의 세상이 끝나려는지... 이번 선거는 제발 민초들이 깨어나야할텐데...

    • addr | edit/del Favicon of https://yeogangyeoho.tistory.com BlogIcon 사용자 여강여호 2012.01.27 16:04 신고

      그리스 신화의 작가 이윤기 선생님은 영웅이란 꿈과 희망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이 아니라 꿈과 희망을 깨우는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올해는 꼭 그런 인물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4.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s://shlim1219.tistory.com BlogIcon ★안다★ 2012.01.27 16:45 신고

    그래요...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아픔들 중 상당부분이
    일제강점기와 관계가 되어 있지요...
    그런데...한달 살기위해 열한달을 죽어 있는다면...
    우~그건 너무 잔인한 일인걸요?

  5.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s://pssyyt.tistory.com BlogIcon 무터킨더 2012.01.27 18:31 신고

    아, 가슴이 찡해오네요.
    이데올로기의 몰가치성을 이야기 하기위해
    그 갈등의 현장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고통의 원인이 이데올로기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죽어간 사람들...
    권력을 쥔자, 가진 자들은 정말 몹쓸짓을 많이 해왔습니다.
    인간이 사는 동안 끝나지 않을 갈등이겠지요.
    덕분에 오랜만에 가슴을 울리는 시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6.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s://gamjastar.tistory.com BlogIcon 또웃음 2012.01.27 20:18 신고

    여강여호님의 글을 읽다보면 혹시 국문과 교수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

  7.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s://think-5w1h.tistory.com BlogIcon 학마 2012.01.27 23:46 신고

    이데올로기에는 관심도 없이 현실에 충실한 사람들의 일상을 이야기하면서 힘든 일상의 원인이 이데올로기임을 이야기하는건가봅니다.~
    휴~~

  8.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blog.daum.net/saenooree BlogIcon 耽讀 2012.01.28 11:55

    우리 현대사 아픔과 고통이 일제식민지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수구기득권은 이를 끊으려고 하지 않지요. 자신들 존재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빨갱이로 그것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9.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blog.daum.net/parkah99 BlogIcon 주리니 2012.01.28 23:09

    무엇으로도 치유할 수 없슴이겠죠.
    강한 주제의식에 조금은 먼데 산을 보게 됩니다...

  10.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s://self-action.tistory.com BlogIcon 셀프액션 2012.01.29 09:36 신고

    어머니라는 글자에 하염없이 감동합니다..
    좋은 글 잘보고갑니다~^^

  11.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s://namsieon.com BlogIcon 작가 남시언 2012.01.29 10:55 신고

    뭔가 모를 가슴의 뜨거움과 쓰라림이 동시에 전해지는 내용입니다...

  12.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s://mijuhosi.tistory.com BlogIcon 쿤다다다 2012.01.29 16:23 신고

    마음이 무거워 지네요..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의 기억속에서 점차 사라져가는 것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13.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zepero.com BlogIcon 이야기캐는광부 2012.01.31 14:20

    상처입은 사람의 마음도 구두를 닦을때처럼 깨끗이 치유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은 어루만질수 없다는 게 참 안타까워요.ㅜ

  14.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www.eibmoz.net/home-cinema/index.php BlogIcon http://www.eibmoz.net/home-cinema/index.php 2012.03.28 08:43

    내려 3층만 어올가 니..멈춘 엘리이터에 내린아는정없 뛰어올갔는데3층을 뛰어올가야 리집인데

  15.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bookmarkslight.info/story/15131 BlogIcon on this site 2012.04.06 02:34

    창백 모습에서작가추한슬픔과외움이라 마 어 수 을것같니.조의모은그의 이(족)이라네요. 말완벽하 멋진리얼리의작품입다.

  16.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www.chineserollforming.com/ BlogIcon Roll Forming Machine 2012.04.06 17:26

    스리초대장상 포맞법/ 법검사기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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