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시인’ 백석(1912~1996)의 유일한 시집 ‘사슴’ 초판본이 경매에 나왔다. 경매 시작가만 5500만원이다.
9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100부 한정판으로 찍은 ‘사슴’ 초판본의 가격은 1936년 당시 2원(圓)이었다. 시집 뒤편에 저작(著作) 겸 발행자 백석이라고 명기돼 있어 백석이 자비로 시집을 펴낸 것으로 보인다.
고서적, 고미술품 등을 다루는 경매사이트 ‘코베이’에 따르면 이번에 경매에 나온 ‘사슴’ 초판본은 백석이 이육사(1904~1944) 시인의 동생인 문학평론가 이원조(1909~1955)에게 직접 준 것이다.
시집 안에는 “이원조씨 백석”이라고 적혀 있다. 백석 문학 전문가인 김재용 원광대 국문학과 교수는 “100부는 그 당시에도 적은 것이었다”면서 “당시 다른 시집과 달리 겹으로 접은 한지에 인쇄하는 등 손품이 많이 들어간 시집”이라고 소개했다.
▲백석의 젊은 시절 모습. 사진>연합뉴스 |
백석과 이원조의 관계에 대해 김 교수는 “이원조는 해방 전에는 사회주의자가 아니었다”면서 “백석과는 조선일보에서 같이 근무한 인연뿐 아니라 일본 문학, 유럽 문학에 대해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좋은 짝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그 당시 유럽 문학, 세계 문학을 자기식으로 평가하고 논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었는데 백석과 이원조는 폭넓게 의견을 공유했다”고 덧붙였다. 두 사람은 모두 일본에서 유학했으며 이원조는 호세이대에서 불문학을, 백석은 아오야마학원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부르주아 문학을 비판하는 평론을 썼던 이원조는 해방 후 월북했다.
백석은 시문학파 선배 시인 김영랑(1903~1950)에게도 ‘사슴’ 초판본을 줬다. 백석은 시집에 ‘영랑 형께’라고 적었다.
‘사슴’은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거나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시집’(계간 ‘시인세계’ 2005년 여름호 조사)으로 꼽힐 만큼 일반인은 물론 시인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아왔다. 1936년 1월 선광인쇄주식회사에서 인쇄한 ‘사슴’은 당시 100부밖에 찍지 않아 전문가들 사이에서 희귀본으로 꼽힌다. <출처:경향신문>
사슴
여승은 합장을 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설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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