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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책 이야기

용龍은 드래곤Dragon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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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왕이 승려에게 말했다.

내가 죽으면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 불법을 수호하겠노라.”

승려는 죽으면 용이 되겠다는 문무왕의 말에 다음과 같이 물었다.

용은 비록 상서로운 동물이지만 그래도 짐승이거늘, 어째서 용이 되겠다고 하십니까?”

문무왕이 대답했다.

만약 내가 업보를 받아 짐승으로 태어난다면 이 또한 내 뜻에 맞느니라.”

 

대왕암이라고도 불리는 경주 문무대왕릉에 얽힌 설화 한 토막이다. 문무왕의 애국충절과 지극히 인간다운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설화라고 하겠다. 여기서 한가지 궁금한 것은 용은 상상 속의 동물로 늘 상서로운 존재로만 생각했었는데 문무왕은 인간 세상에서의 업보 때문에 다시 태어난다면 그게 바로 용이라고 했다. 우리 조상들의 용에 대한 인식은 신성한 상상 속의 동물이면서 친숙한 동물이기도 했던 것이다.

 

한편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에서 용이 신성한 상상 속의 동물이었다면 서양에서는 악과 적대자를 상징했다. 용을 표현한 그림에서도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동양에서는 용을 발이 달리고 사슴뿔과 수염이 있는 뱀으로 묘사했다면 서양에서는 등에 박쥐 날개가 달린 커다란 도마뱀으로 표현했다. 용龍을 드래곤Dragon으로 번역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용과 드래곤은 서로 다른 동물이라고 할 수 있다.  

 

▲ 사진>다음 검색 

 

우리 문학 중에 용과 드래곤이 동시에 등장하는 소설이 있다.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이기도 했던단재 신채호(1880~1936)의 판타지 소설 <용과 용의 대격전> 중 일부다.

 

미리님? 내가 작일에는 천상의 미리놈이요 지상의 미리님이러니. 금일에는 천상의 미리님이요 지상의 미리놈이로구나. 천지의 위치가 이다지 변환하였구나라고, 미리가 속으로 홀로 생각하고 눈물이 빰에 젖는다. 반공에 이르지 못하여 천사가 헐떡이며 쫓아와서

다시 잠깐 돌아오시랍니다. 상제께서 할 말씀이 있다고 그럽니다. 미리님.” -<용과 용의 대격전> 중에서-

 

동양의 용 미리와 서양의 용 드래곤이 등장하여 결투를 벌이는데 여기서 미리와 드래곤은 단순히 동서양을 대변하는 상징이 아니다. 미리가 민중을 탄압하는 압제자라면 드래곤은 압제의 사슬을 끊고자 혁명을 꾀하는 민중의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신채호는 미르와 드래곤의 결전을 통해 민중혁명의 승리를 확신했던 것이다. 아나키스트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는 소설이기도 하다. 또 일제식민통치를 끝내야 한다는 민족혁명을 독려한 소설이기도 했다. 드래곤의 통쾌한 승리는 이런 이중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미리'는 용을 나타내는 순우리말로 '미르'라고도 한다. 이 말은 물을 뜻하는 '믈'이 그 어원으로 지금도 경상도나 제주도 일부 지역에서는 용을 뜻하는 말로 '미리'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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