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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표단편소설

태어나 처음 만난 아버지가 불편했던 이유

봉숭아 꽃물/김민숙/1987년

 

어릴 적 이맘때쯤이면 고향집 마당 한 켠에는 마치 노래에서처럼 담장에 바짝 기대어 봉숭아꽃이 붉게 물들었다. 붉게 물든 것은 봉숭아꽃만이 아니었다. 연신 손부채질을 하고 계신 어머니의 손톱도, 어머니 무릎을 베개 삼아 꿀맛같은 단잠을 자고 있는 여동생의 손톱도 붉게 물들어 있었다. 여동생의 손톱이 부러웠는지, 봉숭아 꽃물이 잘 물들도록 어머니 무릎을 베고 자고있는 동생을 시샘해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도 어머니를 졸라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 하나에만 봉숭아 꽃잎 이긴 것을 올려놓고 이파리로 감싼 뒤 실로 칭칭 동여맸다. 동생처럼 어머니 무릎에 머리를 베고 손에는 번지지 않고 손톱에만 예쁘게 물들기를 기도하며 잠이 들곤 했다. 

 

그러나 이것도 글자를 모를 때의 일이었지, 국민학교(초등학교)에 들어간 후로 손톱에 봉숭아 꽃물 들이기는 여자 아이들만 하는 놀이로 명확한 선이 그어지고 있었다. 김민숙의 소설 <봉숭아 꽃물>에서 주인공 '나'의 어머니는 봉숭아 꽃물 들이는 데는 선수다. 어렸을 때 '나'한테 그랬던 것처럼 지금은 손녀인 호정이와 짝이 되어 봉숭아 꽃물 들이기에 여념이 없다. 특이한 것은 어머니는 꼭 무명지(약손가락)와 소지(새끼 손가락)에만 물을 들이고, 언제부턴가 물들이는 일에 흥미를 잃은 나와 달리 어머니는 한 해도 거르는 법이 없었다. 살다보면 한두해 쯤은 그냥 넘어갈 법도 한데, 어머니의 봉숭아 꽃물 들이기에는 무슨 사연이 있었길래 쉰일곱이 되도록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계속 되었을까.

 

 

희곡으로 각색되어 연우무대에서 공연되기도 했고 TV 단만극으로 방영되기도 했던 김민숙의 소설 <봉숭아 꽃물>은 극적인 장면에서도 등장인물들의 감정 절제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말았다. 한편 이런 감정 절제가 독자들에게는 슬픔과 감동의 깊이를 더해주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우선 소설은 누구나의 경험은 아니지만 한국사회를 정상적으로 살고 있는 독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소재이기도 하다. 바로 분단이 낳은 비극 중 하나인 미전향 장기수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올해로 환갑을 맞아 특별 휴가를 받고 큰집에 오는 아버지를 태어나 처음으로 만나러 간다. 이런 '나'를 두고 남편은 "당신은 할 수 없지만 애들은 안돼. 알겠어?"라며 의미심장한 말 한마디를 남기고 출근한다. 썩 내키지 않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지만 '나'는 아버지에 관한 한 유일한 내 편이었던 어머니를 배반하려 한다. 이 가족에게 아버지란 어떤 존재였기에 난생 처음 이뤄지는 부녀지간의 만남이 이토록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앞서 언급했듯이 아버지가 미전향 장기수라는 것을 떠올린다면 이 가족에게 아버지의 존재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해방 공간에서는 좌익 활동을 했고 그 후 월북을 했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간첩이 되어 돌아와 체포되었다. 전향하지 않고 장기수로 살겠다는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는 가장이 되었고 가족은 연좌제와 주변의 따가운 시선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가족에게 이런 아버지는 부정하고 싶은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지금도 감옥에서 지내는 아버지의 고통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한 적이 없다. 언제나 아버지로 해서 내가 받은 피해에만 이를 갈 뿐이다. 이런 관계도 아버지와 딸이라 부를 수가 있을까. 무엇 때문에 나는 내키지 않는 딸의 역할을 하려 하는가. 지금에 와서. -<봉숭아 꽃물> 중에서-

 

그렇다고 아버지를 전적으로 부정할 수만도 없었다. 아버지는 분단과 이데올로기 대립의 직접적인 피해자다. 게다가 아버지는 북쪽에 있는 가족에게 피해가 갈까 두려워 전향을 생각할 처지도 아니다. 아버지를 부정하면서도 아버지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을 강요한 체제를 생각할 때 아버지는 어느덧 가엾은 연민의 대상이 되고 만다. 

 

이제 예순이 넘은 나이. 그는 실제로 어떤 얼굴일까. 부역을 하고 자진 월북한 공산주의자, 어머니 얼굴을 보기 위해 자원했다가 이틀 만에 체포된 어설픈 남파 간첩, 이십 년이 넘게 교도소 담벽 안에 갇혀서도 전향하지 않는 고집통. 그는 열렬한 공산주의자인가. 아니면 할머니나 큰아버지의 주장대로 단지 처자식의 안전을 위해 삶을 저당 잡힌 가엾은 한 늙은이인가. -<봉숭아 꽃물> 중에서-

 

아버지가 결코 부정의 대상만이 아니라는 것은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딸에게 어머니가 37년 전 아버지가 좋아했던 콩국수와 아버지가 입던 명주 한복을 들려 보내는 것에서도 확인된다. 켜켜이 쌓인 원망과 그리움이 뒤섞인 애증의 관계란 바로 이런 것일게다. '당신은 할 수 없지만 애들은 안된다'는 남편의 말에서 비록 연좌제가 폐지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공산주의자의 가족으로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버겁고 힘겨운 고통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메세지는 분명하다. 가족은 이념을 넘어선다는 것. 분단의 해체는 어떤 식이든 만남으로 시작된다는 것.

 

그렇지만 가장 감동적이어야 할 '나'와 아버지와의 만남은 어색한 침묵의 연속이다. 아버지도 '나'도 서로를 원망한다는 말도, 그리워했다는 말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남북을 갈라놓은 분단의 벽은 말없이 천천히 무너져 내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저자는 아버지의 회갑에 참석할 것 같지 않던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장면을 통해 좀 더 분명한 메세지를 던져준다. 

 

"아니.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생각해보니까 장인어른에게 아이들을 보여줘야 된다 싶었어. 나라면 보고 싶을 거 같더라고. 그리고 애들은 또 우리와 다를 거다 싶었지. 지금은 뭐가 뭔지 알지도 못할 텐고, 나중에 자라서 알게 된다고 해도 이 아이들은 우리처럼 무작정 무서워하지는 않을 거다 싶더군. 시대가 다르고 이 아이들은 우리와는 조금 다르게 살게 되지 않겠어?" -<봉숭아 꽃물> 중에서-

 

소설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부녀지간의 첫만남보다 오히려 소설 마지막 부분에서 어머니가 동네 노인들을 불러모아 잔치를 벌이고 있는 장면이다. 죽은 남편의 육순이라며 고운 연분홍색 한복을 입고 동네 노인들과 노래 장단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가 미전향 장기수 남편 때문에 평생 받아왔을 고통과 원망과 그리움이 한꺼번에 폭발하고 있는 장면일 것이다. '나'는 멀리서도 보인다. 첫눈이 올 때까지 아껴둬야 할, 봉숭아 꽃물 든 어머니의 저 혼자 젊은 손톱이.

 

어머니는 몇 해 전부터 어디서 듣고 왔는지 손톱에 든 봉숭아 꽃물이 첫눈 올 때까지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더라고 말하곤 했다. 광복절 아침 언제가 완료형이 되야 할 분단의 아픔을 되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