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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북 리뷰

네 살 아이를 슈퍼에 보낸 이 엄마의 별난 자녀교육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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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들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었다/이경숙(굄돌)/청출판/2012년

 

참 별난 엄마도 다 있다. 이제 겨우 돌 지난 딸에게 물이나 우유 마시는 것을 혼자 하게 하고 질레질레 밥알을 흘리고 우유를 쏟아도 그냥 뒀단다. 두 살 난 딸을 어리다고 생각한 적이 거의 없단다. 딸이 네 살 때부터는 수퍼를 혼자 가게 했고 학교에 들어간 다음에는 숙제나 준비물을 혼자 챙기게 했단다. 팥쥐 엄마냐 싶을 것이다. 갈수록 점입가경이니 말이다. 영어 공부를 위해 혀까지 수술한다는 세상에 영어는 물론이거니와 다른 공부도 시키지 않았고 초등학교 고학년부터는 집안일을 분담하게 했단다. 틈 날 때마다 봉사활동과 체험학습을 무진장 시켰고 아이들끼리 먼 곳으로 여행하는 것도 겁내지 않았단다.

 

도대체 이 엄마의 정체는 누구일까. 외계에서 왔을까. 아니면 미래에서 시간여행을 왔다 잠시 머물고 있는 것일까. 놀라지 마시라. 이 엄마도 물가에 내논 아이 때문에 가슴을 졸이고, 아이의 작은 상처에도 가슴은 타들어가고, 아이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는 여느 엄마와 같이 대한민국 하늘 아래 살고 있는 평범한 엄마이자 주부다. 그저 아이를 사랑하고 가르치는 방법이 유별날(?) 뿐이다.

 

필자는 이 엄마의 유별난 자녀교육법을 대강 짐작하고 있었다. 그녀는 따뜻한 일상언어로 많은 누리꾼들을 사로잡고 있는 파워 블로거다. '고인돌에서 덮개돌을 직접 받치고 있는 넓적한 돌'이라는 뜻의 '굄돌'이 그녀의 블로그 닉네임이다. 수필가이자 자유기고가로 활동하며 초중고등학생들에게 독서와 글쓰기 지도를 하고 있는 '굄돌' 이경숙이 2009년부터 블로그에 올린 글들을 모아 한 권의 따뜻한 수필집을 내놓았다. <딸들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었다>는 저자 이경숙이 두 딸을 비롯해서 자신의 삶 속으로 걸어 들어온 아이들의 이야기를 솔직담백하게 옮겨놓은 책이다. 저자는 스스로를 '별난 엄마'라고 한다. 맞다. 요즘 개그 프로에서 유행하는 말로 '별나도 너~~무 별난' 엄마다. 저자는 스스로 별난 엄마로 살아야만 했던 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자녀교육, 무엇이 정답인지는 모른다.

다만, 물고기를 잡아다 주는 것보다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또 부모 없이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게 부모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내가 언제 세상 떠날지 알 수 없으므로 -<딸들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었다> 중에서-

 

인생에 정답이란 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을 때가 있다. 굳이 머리 싸매고 고민할 필요도 없이 하나의 길만을 향해 걸어나가면 되니 말이다. 그런데 어째 정답이 있는 삶은 무료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 누구 하나 똑같이 나지 않은 얼굴들이 한 길에 쭉 늘어선 풍경이 상상만 해도 지루하게 느껴진다. 만 가지 얼굴, 만 가지 삶은 소소한 재미(?)를 경험할 수 있도록 신이 인간에게 준 아주 특별한 선물인지도 모르겠다. 인생에도 정답이 없을진대 자녀교육은 오죽 할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교육에는 부모마다 저마다의 정답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정답의 이면에는 늘 자녀에 대한 사랑과 자녀의 행복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또 자녀의 성공에 대한 바램이 저마다의 정답으로 실현되고 있을 것이다. 한편 부모마다 다른 자녀교육의 방식은 크게는 제도권 교육에 따라가야 하는지와 통상적인 성공의 개념을 자녀에게 적용해야 하는지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문제는 부모들이 자신들만의 자녀교육 방식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다들 '자식을 사랑한다'는 믿음으로 자녀를 가르치고 있지만 한발짝 옆에서 바라보면 도대체 어떤 것이 자식을 사랑하는 것인지 헛갈리기도 하고 고개를 가로 저을 때가 적지 않다. 

 

다행히 네 살 아이를 혼자 수퍼에 보내 일찍이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었다는 이 별난 엄마는 책읽기와 글쓰기 지도를 통해 많은 아이들을 경험했고 또 많은 아이들의 엄마를 경험했다는 것이다. <딸들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었다>가 저자의 일상을 담은 수필임에도 불구하고 자녀교육에 있어 보다 객관적인 시각을 담아낼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경험 때문이다.

 

무한정 쏟아붓는다고 사랑이 아니다. 물고기 한 마리 잡을 능력도 길러주지 못한 부모를 어찌 좋은 부모라고 할 수 있겠는가. 바람 같은 돈만 믿고 자식을 그렇게 무능한 사람으로 키워놓았으니 말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너를 사랑했었다, 할까? -<딸들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었다> 중에서-

 

한편 저자가 풀어놓은 일상에는 우리 제도권 교육의 암울한 현실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성적 지상주의에 아이들의 인성은 나몰라라 하는 세상, 친구를 밟아야만 일어설 수 있는 무한 생존경쟁은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신자유주의의 파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몇 안되는 방법들이다. 저자가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왜곡된 교육은 왜곡된 자식사랑을 부추기는 가장 현실적 원인일 것이다. 그래서 제도권 교육보다는 독서와 다양한 경험을 통한 자신만의 인성교육을 자녀교육의 제 일 원칙으로 삼은 이 엄마가 더욱 별나 보인지도 모른다. 

 

이 책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이 별난 엄마의 자식교육 덕에 자신이 원하는 문학도가 된 딸의 고백이 담긴 에필로그일 것이다. "나를 낳은 것은 부모지만 나를 채운 것은 책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 딸의 고백은 자녀교육이 부모의 일방적인 지시나 강요보다는 부모 자신의 실천적 일상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일깨워준다.

 

젊은 어머니는 바쁜 일과 속에서도 틈틈이 책을 읽었다. 어머니가 책을 펴고 앉으면 나도 마음에 드는 걸 한 권 꺼내 그 옆에 바짝 붙어 앉곤 했다. 사실 뭘 읽고 싶었다기보다는 엄마와 체온을 나누고 싶은 아이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사락, 사락, 가라앉은 공기 속에서 어머니가 책장을 넘기던 소리가 기억난다. 아니, 기억이 난다기보다는 그때의 고요와 행복감이 가슴 속에 남아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에게 책읽기는 그처럼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어머니와 책을 읽던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새로운 세계와 만났고, 또 나의 세계를 만들어갔다. -<딸들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었다> '에필로그' 중에서-

 

세상 살아가는 데 정답이 없듯 자녀교육에도 정답은 없다. 이 별난 엄마의 자녀교육법도 마찬가지다. 부모마다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것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나 아닌 다른 엄마의 자녀교육 방법을 살짝 들여다보는 것도 내가 정답을 찾아가는 데 중요한 참고서가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방식의 도착점이 자녀의 행복인지 아니면 부모의 행복인지는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책 속에서 스스로를 '별난 엄마'라고 한 것을 두고 무례하게도 처음부터 끝까지 이 엄마를 진짜 '별난 엄마'로 만들고 말았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저자는 '별난 엄마'가 맞지싶다. 우리가 발을 딛고 숨을 쉬고 있는 이 곳이 '별난 세상'이니 이 엄마가 별나게 보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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