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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북 리뷰

갈매기의 꿈이 새우깡인 게 뭐가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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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바크(Richard David Bach, 1936~) <갈매기의 꿈>/1970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

 

중·고등학교 아니 국민학교(초등학교) 시절부터 수도 없이 들었던 말이다. 당연한 이치인 것을 'Boys be ambitious(젊은이여, 야망을 가져라.)'라는 영어 문장과 대동소이한 의미로 귀가 닳도록 들었다그러나 이 말의 출처인 리처드 바크(Richard David Bach, 1936~) <갈매기의 꿈>은 정작 읽어보지 못했다. 아마도 대학 새내기 시절 처음 샀던 것 같다그때도 결국엔 사회과학 서적에 밀려 책장 한 귀퉁이로 내몰리고 말았다그 후 꿈과 좌절이 반복되었던 20년이라는 세월을 집어삼키고서야 여기에 혹시 내가 꿈꾸는 미래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뽀얀 먼지를 걷어내고 검지 끝에 침과 묵은 때를 묻혀가며 어렵게 책장을 넘겼다. <갈매기의 꿈> 속 명언을 처음 들었던 시절 순수함이 사라져버린 탓일까 아니면 세상이 하 수상한 탓일까 전세계 4천만 독자가 감동했다는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의 꿈이 삐딱한 시선 속으로 들어오고 만다

 

 

비행사 출신 작가의 비상

 

그래도 간단한 책 소개쯤은 해줘야 고전의 반열에 오른 <갈매기의 꿈>과 저자에 대한 예의이지 싶다. 리처드 바크와 <어린 왕자>의 저자  생텍쥐베리(Antoine de Saint Exupery 1900~1944)의 공통점을 아는지 모르겠다. 두 사람 모두 프로 비행사 겸 작가였단다. 게다가 두 작가의 대표작이 <갈매기의 꿈> <야간 비행>이라니 세월을 뛰어넘은 운명적인 만남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두 작가의 대표작 <갈매기의 꿈> <어린 왕자>는 또 어떤가. 두 소설의 주제가 순수한 사랑과 자유에의 갈망이라는 공통점까지 있으니 결코 예사롭지 않은 우연이다.

 

<갈매기의 꿈> 주제를 몇 개 단어로 정리해 본다면 도전과 사랑과 자유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의 모험은 이와 같이 지극히 교과서적인 교훈을 실천하는 과정이다. 갈매기라는 생물학적 한계에 안주할 수 없었던 조나단 리빙스턴의 꿈은 왕따로 이어지고 무리로부터 추방당하게 된다. 명석한 두뇌를 가진 조나단 리빙스턴은 이런 외부환경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꿈을 이루어 나간다. 출간된 후 일부 종교로부터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오만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을만큼 조나단 리빙스턴의 능력은 생물학적 한계를 뛰어넘는다. 비행사 출신 작가답게 갈매기의 비상이 마치 전투기의 이착륙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처럼 생생하게 그려진다. 그러면서도 동료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 소설 <갈매기의 꿈>이 주는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이 왜 중고등학교 시절 교과서에 없으면서도 왜 그렇게 자주 인용되었는지 알 수 있다. 조나단 리빙스턴의 모험은 청소년들이 품어야 할 꿈이어야 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기성세대의 간절함이다. 그러나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감상은 조나단 리빙스턴이 그렇게 거부하고자 했던 현실, 교육적으로는 천박하다 싶은 우리네 일상도 결코 폄하될 수 없는 소중한 가치라는 것이다. 게다가 조나단 리빙스턴은 창공이라는 경계가 없는 무한의 공간을 살고 있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처한 현실은 지역, 국가, 세계라는 공간적 한계와 정치, 경제, 문화 등 무형의 제한적 공간이라는 점이다. 이상만큼이나 가치있는 삶이 현실이라는 반증이다.

 

 

평범한 삶에도 소중한 가치가 있다

 

대부분의 갈매기들은 지극히 단순한 비상 이상의 것은 배우려고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즉 해변을 떠나 먹이를 비축하고 되돌아오는 것 이상은 배우려고 하지 않았다. 모든 갈매기들에게 있어서 당면한 문제는 나는 것이 아니라 먹이를 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갈매기에게는 먹이를 구하는 것보다 나는 것이 훨씬 중요한 문제였다.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은 다른 어느 것보다도 나는 것을 사랑했다. -<갈매기의 꿈> 중에서-

 

비상을 꿈꿔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돌기 하나 없이 둥그런 달 한 가운데 옥토끼 부부를 그려보지 않은 사람이 또 있을까.  개천에서 용난다는 옛말을 신앙처럼 믿으며 밤을 새워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조나단 리빙스턴만 비상을 꿈꾸는 것은 아니다. 창공을 가로지르는 멋진 비행은 조나단 리빙스턴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꿈이기도 하다. 조나단 리빙스턴과 우리네 이웃들이 다른 게 있다면 추방당해도 꿈을 펼칠 수 있는 창공이 있다는 것과 없다는 것. 비상 이상의 것은 배우려고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게 아니라 좌절이라는 이름으로 낮은 비상에서마저 추락하고 마는 현실이다. 먹는 것 이상의 무엇을 추구하지만 그 열망이 커질수록 추락의 아픔은 중력의 무게만큼 처참해지는 현실이다. 누구나 평범하게 사는 것 같지만 그 속에는 조나단 리빙스턴 못지않은 꿈이 있고 야망이 있다. 그저 그렇게 평범해 보일 뿐이다. 마트 후미진 구석에서 박스를 줍고 있는 노인을 향해 '너는 저렇게 살면 안돼'하고 눈을 마주친 아이에게 천박한 교훈은 얘기하지 말자.

 

삶을 위한 의미를 찾고 더 높은 목적을 추구하는 갈매기보다 더 책임감이 강한 갈매기가 어디에 존재한다는 말입니까? 수천 년 동안 우리는 물고기 머리밖에 찾아다니지 못했소. 그러나 이제 우리는 삶을 영위할 이유를 갖고 있습니다.-배우고, 발견하고, 자유롭게 될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 -<갈매기의 꿈> 중에서-

 

조나단 리빙스턴, 혹시 너 아니었니? 도심 속 어두운 뒷골목을 전전하던 어느 여자의 꿈이었던 로또 한 장을 물어가버린 갈매기가. 조나단 리빙스턴은 여름 해변을 가득 채운 사람들의 손에 들린 새우깡에 열광하는 동료들을 이상이 없다고 비난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천년 동안 물고기 머리만 찾아다니던 갈매기들에게 새우깡은 좀 더 진보된 삶의 방식임을 잊고 있다. 자유라는 이름으로 이상을 말하지만 정해진 이상을 강요받는 현실, 다수에서 이탈한 생각은 어느새 변색된 돌연변이가 되고마는 현실, 국민보다는 권력을 위해 충성하도록 키워지는 현실, 무수한 평범한 삶 속에는 물고기 머리밖에 없었던 삶의 목적이 새우깡으로 시나브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또 하나의 현실이다.

 

 

고통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다

 

연장자 갈매기 치앙이 유언으로 남긴 '끊임없이 사랑을 위해 힘써라.'라는 말은  갈매기 집단 또는 보통 사람들이 힘겨운 현실을 버텨낼 수 있는 힘이다. 갈매기가 가진 생물학적 한계를 뛰어넘어버린 조나단 리빙스턴이 동료들에게 갖는 애정은 이미 '사랑'이 아닌 '시혜'로 변질되었는지도 모른다. 조나단 리빙스턴의 비행연습 스승인 셜리반이 강조했던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는 말에 이의를 달 생각은 없지만 비록 높이 날지도 못하고 멀리 보지도 못하지만 그저 물고기 머리말고도 새우깡이라는 소소한 삶의 이유를 발견한 동료 갈매기들의 일상 또한 폄하될 수 없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시혜'가 아니라 같이 웃고 같이 울 수 있는 '사랑'이다.

 

인터넷 검색을 하다 국내 모언론에서 <갈매기의 꿈> 저자 리처드 바크의 인터뷰 기사를 찾았다. 세계화, 금융위기 등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해 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변했다고 한다.

 

" `고통 받는다는 것`은 개인적인 선택에 불과하다고 봐요. 우리 정신과 신체의 일치를 믿는다면 고통이란 여름날 얼음처럼 녹아내리지 않을까요. 자유란 어느 길로 갈지 우리가 결정하고, 운명은 우리 손에 있으며 다른 사람들이 대신 선택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서 비롯한다고 봐요."

 

멋진 말이다. 한편 다분히 종교적이고 교과서적이다. 현재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하에서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갖가지 악조건 속에서도 기적적인 비행 기술을 익힌 조나단 리빙스턴처럼 살아가라는 말처럼 들린다. 물론 누구나 그렇게 살고 싶어하고 그렇게 살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게 보통 사람들의 일상이다. 그러나 지금의 세계화,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고통 받는다는 것이 개인의 선택에 불과할까. 혹시 그런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게 오히려 더 정확한 현실이 아닐까. 새우깡 하나에 안주해버린 일상 속에도 삶에 대한 치열한 열정과 투쟁이 있다는 사실도 조나단 리빙스턴의 꿈과 자유, 이상만큼이나 소중한 가치는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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