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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도시도 농촌도 아닌 그곳에도 사람이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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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한의 <우묵배미의 사랑>/1989년

 

시골 제비족으로 한때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던 쿠웨이트 박을 기억할지 모르겠다. MBC 드라마 '한지붕 세가족'에서 순박한 만수 아빠로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었던 최주봉이다. 1989년 방영되었던 KBS 드라마 '왕룽일가'를 기억하는 독자라면 쿠웨이트 박의 강렬한 인상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도시와 농촌의 어정쩡한 중간지대에서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당시의 표현)의 삶을 그린 '왕룽일가'는 당시 시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해서 많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드라마로 박영한의 소설 <왕룽일가>(1988년작)가 원작이다.

박영한의 소설 <우묵배미의 사랑>은 전작 <왕룽일가>의 연작이다. 1978년 <머나먼 쏭바강>으로 제2회 오늘의 작가상을 받기도 했던 박영한은 여러 중편들을 모아 <왕룽일가>와 <우묵배미의 사랑>을 표제로 한 두 권의 연작소설을 발표했다. 각각 세 개의 중편소설로 이루어진 이 연작소설은 '왕룽일가', '오란의 딸',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을 모아 <왕룽일가>로, '우묵배미의 사랑', '후투티 목장의 여름', '은실네 바람났네'를 모아 <우묵배미의 사랑>으로 출간했다. 즉 <우묵배미의 사랑>은 네번 째에 해당하는 연작소설인 것이다.

박영한의 소설들은 드라마나 영화의 원작이 되기도 했는데 데뷔작인 <머나먼 쏭바강>은 1993년 SBS에서, <왕룽일가>는 1989년 KBS에서 드라마로 제작되었고 <우묵배미의 사랑>은 1990년 박중훈, 최명길 주연의 '우묵배미의 사랑'(장선우 감독)으로 만들어져 그 해 백상예술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편 <우묵배미의 사랑>은 2000년 KBS의 월화 드라마 '바보같은 사랑'의 원작이 되기도 했다. 유독 박영한의 소설들이 드라마나 영화의 원작이 되었던 이유는 등장인물들의 코믹스런 캐릭터 말고도 당시 서민들의 애환을 사실적으로 묘사해서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묵배미의 사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배경이 된 '우묵배미'라는 곳을 알 필요가 있다. '우묵배미'의 위치에 대해서는 박영한의 연작 중 첫번 째 소설인 <왕룽일가>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우묵배미는 서울시청 건너편 삼성 본관 앞에서 999번 입석을 타고 신촌, 수색을 거쳐 50분쯤 달려온 낭곡 종점 근처에 있는 변두리 마을이다. 도시화의 물결이 거세게 불어닥치고 있는 농촌 마을이 바로 '우묵배미'인 것이다. 고도성장기인 1980년대 팽창을 거듭하던 서울이 도시로서의 한계에 직면해 서울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터를 잡고 살아가는 곳이 '우묵배미'였다. 전통적인 가족 중심 문화가 남아있던 농촌 마을에 도시의 물질 문화가 유입됨으로써 '우묵배미'는 도시와 농촌의 어정쩡한 중간지대가 된 것이다. 결국 물질문화와 정신문화의 충돌은 '우묵배미'를 예기치 않았던 사건들의 장으로 만들고 만다.

아무튼 이런 모든 조짐들을 요 수삼 년 내에 진행된 낭곡 지역의 급속한 도심지화와 보조를 함게하는 현상일진대, 한쪽에서는 이걸 두고 성도덕의 타락 운운하며 이맛살을 찌푸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인간의 성욕이며 물욕을 자연 발생적인 온당한 것으로 치부하는 낙천적인 사람들 편에서는 그런저런 현상이야말로 낭곡 읍내가 미구에 당당한 중소 도시로 힘차게 뻗어갈 수 있는 활력의 원천일 수 있다는 주장들이었다.

<우묵배미의 사랑>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이런 사람들의 전형이다. 치마공장의 미싱사로 일하고 있는 배일도는 어느날 동료 미싱사인 민공례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소설은 불륜일 수밖에 없는 배일도와 민공례의 러브 스토리에 배일도의 아내 지호 엄마와 민공례의 남편 박석희가 개입됨으로써 긴장감을 더해준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한 소설 속에 다양한 시점이 존재하며 전개된다. 자신의 사랑을 합리화할 때는 각각 배일도와 지호 엄마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이 되기도 하며 중재가 필요할 때는 '나'가 등장해서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소설을 전개시킨다. 

샛길로 갈 수밖에 없는 이들의 사랑이 결코 밉게 보이지 않는 것은 변두리를 전전해야만 했던 당시 서민들의 애환이 애틋하게 묻어나기 때문이다. 차마 웃을 수밖에 없는 불륜행각 뒤에는 그들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추동하는 외부환경이 존재한다. 그야말로 악처인 배일도의 아내 지호엄마, 지호 엄마의 구박이 심해질수록 배일도의 반발심은 공례에게로 향하게 된다. 민공례도 마찬가지다. 폭력적인 남편 게다가 무능력한 남편 대신 힘겨운 노동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그녀에게 배일도는 전체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배일도도 인정하듯 민공례가 자기의 전부를 걸고 사랑하는 것에 비해 배일도의 사랑은 '부끄러운 도둑놈 심뽀'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남편을 구박만 해대는 지호 엄마를 비난할 수만도 없다. 일찍이 계모 슬하에서 가출해 도심 뒷골목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대포집 작부로 전전하다 배일도를 만나 결혼한 지호 엄마도 민공례만큼이나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지호 엄마에게 현실적인 고민은 사랑이 아닌 생활 자체일 수 있다. 결국 저자의 의도는 배일도와 민공례의 불륜 행각을 비판한다기보다 변두리로 밀려난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방식들을 보여주기 위함일 것이다. 도시도 아닌 그렇다고 농촌도 아닌 어정쩡한 중간지대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그래서 그곳에서도 변두리 인생을 벗어나고자 하는 다양한 삶과의 투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혹자는 <우묵배미의 사랑>을 민중 소설과 비교하기도 한다. 민중 소설은 크게 두가지 형태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소외된 삶과 그 삶을 야기한 사회 구조와 구조적 모순에 대해 적극적으로 투쟁하는 형식일 것이고 또 하나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 민중들의 애환을 사실적으로 보여줌으로써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는 형식이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우묵배미의 사랑>은 후자, 즉 변형된 형태의 민중 소설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머리털이 죄다 빠져날 정도로 말예요! 난 전체를 기댔는데…"
아아, 내 부끄러운 도둑놈 심보를…그렇지만 나랑 공례랑 입장이 다르지 않느냐. … 그렇다. 고통이란 저 정도의 것이어야 진짜랄 수가 있다. 진짜 나도 저 정도로 괴로워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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