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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월북과 탈북의 경계에 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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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용묵(1904~1961)의 <별을 헨다>/「동아일보」(1946.12.1~31)

이순신은 영웅이다. 존경하는 역사인물을 꼽으라면 늘 1,2위를 다툰다. 영웅은 신화로 비약한다. 누가 들었는지 모르지만 절명의 순간에도 '내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며 죽음마저 초월해 범접하기 힘든 성인의 경지에까지 올라갔다. 생물학적으로야 이미 죽었지만 여전히 그는 살아있는 존재다. 인간과 신의 구분을 불멸에 둔다면 이순신은 신이다. 역사는 앞으로도 그를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이순신과 함께 장렬히 전사한 수천, 수만의 범부(凡夫)들도 있을진대 우리는 그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아니 역사는 굳이 그들을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동서고금의 역사에는 영웅은 있을지언정 사람은 없다.

꿈에 그리던 해방, 환희로 가득찼던 해방 서울에는 사람이 있었을까? 여기저기서 지도자란 이름으로 새로운 영웅의 탄생을 알리는 북소리만 울릴 뿐, 이데올로기 전쟁에 혈안이 된 금수만 있을 뿐 사람은 없었다. 분명 사람은 있으되 사람이 없었다. 해방은 권력이동만 있었을 뿐 어느 누구도 해방공간에서 처절한 삶과의 투쟁을 했던 사람들은 기억하지 않는다. 계용묵의 소설 <별을 헨다>에서 사람을 본다. 영웅들의 틈새롤 비집고 그들도 역사의 주인공이고자 했던 사람들을 본다.

1946년 동아일보에 연재된 계용묵의 소설 <별을 헨다>는 한 편의 긴 수필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큰 어려움없이 물흐르듯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가 신변잡기로 격하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야기 구조가 단순하고 평이한 사건 전개 탓에 소설적 긴장감은 극도로 절제된 형태로 나타난다.    

소설 <별을 헨다>의 시간적, 공간적 배경은 해방 직후 서울이다. 기나긴 암흑의 터널을 뚫고 쟁취한 해방으로 저마다 새로운 삶을 꿈꾸지만 현실에서의 해방공간은 남북 분단과 이념 대립, 친일파의 득세로 혼란과 무질서가 난무하는 곳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민중들의 삶은 피폐해져만 가고 해방으로 꿈꾸어왔던 기대와 희망은 썰물 빠지듯 그렇게 스러져간다. 그들은 이런 예기치 못환 상황과 그 상황으로 빚어진 궁핍한 삶의 해방구로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또 하나 저자가 보여주려 한 것은 지식인의 나약함이다. 양심에 거스르지 않고 살려 하지만 현실은 부조리한 모순들로 가득차 있다. 영악하지도 영민하지도 못한 한 지식인이 어떻게 현실과 투쟁하고 헤쳐나가는지를 보여준다. 양심있는, 양식있는 지식인의 비애일지도 모르겠다.

피난민 구제회의 알선으로 어떤 문화사에 이력서를 내고 총무부장과의 인사 끝에 집이 있느냐고 묻기에 없다고 솔직히 대답한 한마디가 다 된 죽에 떨어진 코 격이었다. -<별을 헨다> 중에서-

<별을 헨다>에서 '별'은 낭만적이지도 동화적이지도 않다. '별'은 그저 궁핍한 삶의 총체다. 주인공이 이역만리에서 돌아온 해방 서울은 움막 천장에 붙은 파리똥이라도 볼 수 있으면 그나마 행복이라 위안할 수도 있지만 현실은 불완전한 해방이 구축해 놓은 모순들로 가득 차 있다. 움막 지을 땅 하나 구하지 못하고 밤하늘에서 쏟아지는 별을 헤며 한 데서 기나긴 밤을 보내야만 한다. 삶을 위한 투쟁으로 발버둥쳐 보지만 이미 구축된 모순된 현실의 벽은 너무도 견고하다. 주인공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또다른 해방구를 찾는 것, 그 뿐이다.

무서운 판이었다. 총소리 없는 전쟁 마당이다. 친구는 이 마당의 이러한 용사이었던가? 만나기조차 무서워진다. 여기 모여 웅성이는 이 많은 사람들은 다 그러한 소리 없는 총들을 마음 속에 깊이들 지니고 있는 것일까. 빗맞을까보아 곁이 바르다. -<별을 헨다> 중에서-

혹자는 <별을 헨다>를 계용묵 문학의 한계를 보여준 소설이라고 한다. 저자가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은 냉철하고 어느 정도 문제의식을 갖고 출발한다. 그러나 저자는 과감하게 현실로 뛰어들지 못한다. 해방과 동시에 찾아온 분단과 그 분단으로 인해 파생된 부조리한 현실을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관찰자 입장에서 결론을 맺고 만다. 당초 제기했던 문제의식을 좀 더 구체적으로 발전시키지 못한 한계를 지닌 소설이 <별을 헨다>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제기한 문제의식은 깊이있는 논의를 이끌어내기에 충분하다. 앞에서 이순신 얘기를 언급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해방된 조국, 환희의 순간 어디에도 사람이 없다는 것. 사람은 역사를 살아왔고 또 앞으로 살아갈 이름없는 보통의 민중들이다. 해방과 함께 찾아온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통해 남과 북에서는 각각 그 시대를 대표하는 영웅들이 등장하지만 정작 그 순간에도 사람들은 삶과의 전쟁을 해야만 했고 점점 나락으로 추락하고 만다.

그래서 서울역에는 엇갈린 길을 선택한 사람들이 서로 뒤엉켜 있다.

"아이, 괜히 넘어왔나봐."
"우린 괜히 넘어갈라구 허구."
-<별을 헨다> 중에서-

그 때도 그랬지만 여전히 사람사는 세상에 사람은 없다. 역사가 기억하지 않는 사람들, 이순신이니 이승만이니 김일성이니 하는 거창한 이름 대신 '민중'이라는 복수명사로 사는 사람들, 그들이 별을 헤지않고 사는 세상...그러나 오늘도 별을 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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