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은 거대한 뱀-용 아마루의 몸짓(?)이다

2026. 1. 5. 07:00신화와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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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루(Amaru)는 잉카 신화 또는 안데스 민속에 등장하는 용을 닮은 환상적인 생물이다. 케추아어로 ‘뱀’을 의미하는 아마루는 지역 전설에 등장하는 초자연적인 뱀의 이름이기도 하다. 잉카 제국에는 문자가 없었기 때문에 아마루에 관한 대부분의 이야기는 구전으로 전해진 여러 지역의 전통에서 유래했으며 그 중 일부는 콜럼버스 이후 연대기 작가, 사제 등에 의해 기록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에서 아마루에 대한 묘사는 그 외형에 대해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항상 뱀과 유사한 특징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전설 속 아마루가 항상 유일하고 개별적인 존재는 아니었다. 대부분의 이야기에서 아마루는 여럿이 등장한다.

 

아마루는 일반적으로 지하세계, 대지 그리고 지진과 관련이 있었다. 고대 안데스 사람들의 신앙에 따르면 세상은 세 영역으로 나누어 진다. 하난 파차는 신과 새가 사는 천상의 세계, 카이 파차는 인간과 동물이 사는 지상의 세계, 우쿠 파차는 죽음의 지하세계이다. 아마루는 카이 파차와 우쿠 파차에 살았다. 안데스 사람들은 이 거대한 생물이 움직일 때마다 지진이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16세기에 페루의 우아로치리 출신 사제 프란시스코 데 아빌라(1573년~1647년)는 두 고대 신의 전투에 대한 지역 전통에 대해 기록했다.

 

아마루는 잉카 신화에 등장하는 뱀-용이다.

 

그 중 하나는 리마와 후닌 사이에 있는 산의 이름이기도 한 파리아카카였고 다른 하나는 사악한 화산의 신 우알랄로 카르우인초였다. 그들은 중앙 안데스 지역의 땅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싸웠고 싸움 중에 다양한 자연 재해를 일으켰다. 싸움이 끝나갈 무렵 파리아카카는 우알랄로 카르우인초에게 폭우와 산사태를 내렸고 그는 자신의 몸을 하늘에 닿는 불길로 바꾸어 그를 덮고 있던 불을 껐다. 그런 다음 파리아카카는 거의 죽어가는 화산의 신을 번개로 공격했다. 그 때 우알랄로 카르우인초는 파리아카카를 막기 위해 아마루를 소환했다. 그의 마지막 필사적인 시도 끝에, 우알랄로 카르우인초는 파리아카카를 막기 위해 아마루를 불렀다.

 

하지만 거대한 두 개의 머리를 가진 뱀 아마루는 파리아카카가 휘두른 황금 지팡이에 척추 중앙을 맞고 얼어붙었고 곧 돌로 변했다. 카키요카 고원의 거대한 바위들이 바로 이 때 얼어붙은 아마루라고 한다. 안데스 사람들은 아마루의 몸이 굳어 만들어진 이 바위에서 긁어낸 가루를 치료제로 사용했다고 한다.

 

프란시스코 데 아빌라 이야기는 우알랄로 카르우인초가 동쪽으로 도망가는 것으로 끝난다. 그는 화산의 신이었기에 그 지역의 따뜻한 기후를 가져갔고 그 덕분에 파리아카카는 원래의 추운 기후를 회복할 수 있었다. 이는 과거 사람들의 농작물에 심각한 피해를 입혔던 일련의 자연재해를 상징한 것으로 보인다. 이 재해는 실제로 대규모 지진으로 끝났다. 이 마지막 사건은 아마루의 출현과 연관될 수 있지만 증거가 부족하므로 단순한 추측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이야기 속 아마루는 두 개의 머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는 모체 문명(100년에서 700년 사이에 현재의 페루 트루히요 주의 모체 시 근처에 중심지를 두고 페루 북부에서 번성한 문명)과 레쿠아이 문명(기원전 200년에서 서기 600년 사이에 번성한 콜롬비아 고지대의 페루 고원 문명)의 토기 등 잉카 이전 예술에 등장하는 두 개의 머리를 가진 뱀에 대한 환상적인 묘사와 일치한다.

 

위에서부터 천상, 지상, 지하를 상징하는 콘도르, 퓨마, 아마루.


프란시스코 데 아빌라 이야기의 아마루는 여러 잉카 이전 문화에 등장하는 두 개의 머리를 가진 뱀의 묘사에서 영감을 받았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데 아빌라가 실제로 가톨릭 사제였을 뿐만 아니라 식민지 시대 안데스 사람들의 신앙에 기독교적 기원의 여러 요소가 불가피하게 동화되었기 때문에 기독교 전통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예를 들어 파리아카카의 황금 지팡이는 모세가 파라오의 마술사들을 마주하기 위해 사용했던 지팡이를 연상시킨다. 왜냐하면 두 경우 모두 지팡이를 사용하여 적의 뱀을 물리쳤기 때문이다. 또한 원주민들이 석화된 아마루의 몸에서 나온 가루를 사용하여 질병을 치료했다는 언급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기둥에 세운 청동 뱀을 떠올리게 한다. 그 뱀을 보는 모든 사람이 뱀에게 물리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이는 스페인의 아메리카 식민지화 이후 발생한 문화적 융합의 한 예일 수 있다.

 

그러나 돌이 된 아마루 신화는 앞서 언급한 전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14세기 리마 고원 원주민들의 신앙에 대해 기록한 스페인 성직자 크리스토발 데 알보르노스(1530년~1603년)에 따르면 여러 종류의 우아카(케추아어로 ‘거대한 암석’을 뜻함)가 있는데 이는 다양한 속성을 지닌 특정 종류의 뱀을 이르기도 한다. 그들은 뱀을 숭배했다. 뱀의 성을 딴 마차쿠아이와 아마로라는 말도 있다. 그 근처 지역 주민들은 스페인 사람들이 이 땅에 왔을 때 아마로라는 뱀이 호수에서 나와 다른 호수로 갔고 새로운 호수에서 얼어붙어 돌로 변했다고 말했다. 그 지역 사람들은 그 돌을 숭배했고 제물을 바쳤다.

 

새롭게 정복한 땅에서 우상 숭배를 타파하려고 했던 알보르노스는 지역 주민들의 전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기록은 안데스 ​​세계의 특정 초자연적 존재들이 원주민들에게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보여준다. 그가 묘사한 아마루는 실제로 그 지역 주민들의 숭배를 받았으며 그가 언급한 우아카(거대한 암석)는 파리아카카산으로 이어지는 잉카 도로 바로 위에 있는 물로코차 호수와 쿨레브라요크 호수 사이에서 여전히 볼 수 있다. 알보르노스는 또한 아마루라는 이름을 자신의 이름으로 삼은 잉카 통치자들이 있었다고 말했는데 이는 토착 연대기 작가 후안 데 산타 크루스 파차쿠티 얌키 살카마이구아(16~17세기)가 9대 사파 잉카(잉카 제국 최고 군주의 칭호. ‘유일한 황제’라는 뜻) 파차쿠텍(?~1472년)의 아들 중 한 명인 아마루 잉카 유팡키(1440년~1485년)의 탄생에 대해서도 기록했다.

 

살카마이구아에 따르면 아마루 유팡키는 당시 쿠스코의 핫플레이스였던 우일카스과만에 도착하기 전에 태어났다. 그 때 마치 기적처럼 쿠스코에 이상한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파차투산산에서 야우이르카(아마루)가 출현했다는 것이다. 이 사나운 생물은 길이가 거의 2km에 가까웠고 폭도 2.5m에 달했으며 귀와 송곳니 그리고 수염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계기로 파차쿠텍은 그의 아들 이름을 아마루 유팡키로 지었다. 아마루는 키비파이 호수로 사라졌다고 한다.

 

고대 안데스인들이 사용했던 도자기에 묘사된 아마루.

 

아마루의 출현과 아마루 잉카 유팡키의 탄생은 쿠스코 동쪽을 강타한 대규모 지진과 동시에 일어났는데 이는 파차투산산에서 이 생물이 출현한 데 기인한 것으로 여겨지며 아마도 정상에 아직도 남아 있는 흔적을 남겼을 것이다. 뱀(아마루)이 대지의 지진 활동을 담당하는 우쿠 파차의 거주자라는 관념은 여러 형태의 잉카 이전 예술에서 유래되었다. 모체 문화에 속하는 점토 용기에는 지면 높이에 아마루가 그려져 있으며 페루 앙카의 파샤시 유적지에서 발견된 유파나(계산에 사용된 일종의 돌판)의 아래쪽에는 판의 윗부분에 해당하는 계단 바로 아래 돌에 두 개의 머리를 가진 뱀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뱀과 땅 사이의 연관성을 암시한 것으로 보인다.


흥미롭게도 아마루와 대지의 이러한 연관성은 결국 황소에게로 옮겨갔다. 황소는 남미 토착 동물군에 속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안데스 산맥의 우주관에 포함되어 우쿠 파차의 거주자로 간주될 정도이다. 우쿠 파차는 같은 토착민이 세상에 출현하기 전부터 존재했다. 따라서 호수와 산에서 초자연적인 황소와 뱀이 출현한다는 것은 일부 지역 전설이었다. 알보르노스와 산타 크루스 파차쿠티의 이야기에 따르면 아마루는 바다에서 나온 후 석호로 가서 처음에는 돌이 되고 두 번째 석호에서는 산 꼭대기의 바위 봉우리가 되었다고 한다. 우루밤바와 쿰비빌카스 지역에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신성시되는 일부 언덕의 영혼이 일종의 보물을 간직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호수에 황소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전설이 있다.

 

그러나 두 동물 모두 대지와 연관되어 있지만 각각은 반대되는 성적 측면을 나타낸다. 안데스 황소의 용맹함은 그것을 남성성과 활력의 상징으로 만들었지만 뱀은 실제로 땅의 다산과 여성성의 상징이었다. 또한 알보르노스가 기록한 ‘돌로 변한 아마루’에 대한 기록에서 성직자는 아마루라는 단어가 잉카 왕조의 일부 구성원들이 성으로 사용했다고 말했는데 이는 아마루 혈통의 피가 잉카 혈통에도 흐른다고 주장한 아메리카 원주민 연대기 작가 과만 포마 데 아얄라(1534년~1616년)의 저술에서도 확인되었다. 빌카밤바(1539년부터 1572년까지 네오 잉카 제국의 수도)의 마지막 잉카인은 투팍 아마루(1545년~1572년. 네오 잉카 제국의 마지막 사파 잉카)였는데 그는 1570년경 스페인 정복자들에게 반란을 일으켰다. 이 칭호는 이후 18세기 페루에서 스페인에 항거해 가장 큰 반식민지 반란을 일으켰던 토착 지도자 호세 가브리엘 콘도르칸키(투팍 아마루 2세. 1742년~1781년)가 사용했다. 참고로 투팍 아마루 2세는 스스로 새로운 잉카 제국의 사파 잉카를 자임했으며 나중에 페루의 독립 투쟁과 원주민 권리 운동에서 신화적인 지위로 승격되었다.


아마루는 가장 오래된 문명에 묘사된 용의 근본적인 특징 즉 다산과 관련된 거대한 괴물 뱀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결국 스페인 문화가 남미 대륙에 정착하면서 아마루는 후기 중세 유럽 용의 특징 중 일부를 통합하게 되었다. 호세 가브리엘 콘도르칸키의 반란에 대한 스페인의 승리를 묘사한 일부 그래픽 표현에서 토착 지도자를 나타내는 아마루는 날개 한 쌍과 화살촉으로 끝나는 긴 꼬리를 가지고 스페인의 상징인 사자를 바라보고 있다. 반대로 특정 잉카인들의 위업에서 용 사냥꾼의 모티프를 식별할 수 있다. 잉카인 마이타 카팍은 정글에서 아마루를 물리쳐야 했고 잉카인 파차쿠텍은 안데스 ​​산맥을 정복하는 동안 같은 일을 했다고 한다. 이 두 이야기가 원래 구전 전통의 일부였는지 아니면 식민지에서 일어난 문화 교류의 부산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유럽 용의 이미지는 후대 전설에서 아마루의 물리적 측면에 확실히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후닌(페루)의 민담에는 토착 작가 호세 마리아 아르게다스(1911년~1969년)가 그의 저서 <신화, 전설, 그리고 페루 이야기>에 기록한 아마루에 대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아르게다스에 따르면 고대에 하우하와 만타로 계곡은 큰 호수의 물로 덮여 있었고 호수 중앙에는 완카라고 불리는 바위가 있었다. 완카는 라마의 머리, 두 개의 작은 날개, 바트라키아(멸종된 양서류의 일종)의 몸통 그리고 긴 뱀꼬리를 가진 무시무시한 괴물 아마루의 안식처였다. 나중에 무지개의 신 툴룬마야가 첫 번째 아마루의 동료가 될 또 다른 아마루를 창조했지만 그 색깔은 더 어두웠다. 하지만 후자는 첫 번째 아마루의 크기에 결코 미치지 못했다. 두 괴물은 호수의 패권을 놓고 싸웠고 격렬한 싸움 끝에 두 괴물은 물기둥을 타고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이 때 덩치가 큰 첫 번째 아마루는 작은 아마루를 공격하다가 꼬리의 상당 부분을 잃고 말았다. 화가 난 신 틱세는 폭풍을 일으켰고 그가 던진 벼락에 두 괴물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요동치던 호수에 폭우가 쏟아져 범람했다고 한다.

 

이렇게 계곡이 만들어졌을 때 마마와 타이타라고 불리는 최초의 두 인간은 아마루가 두려워 오랫동안 땅속에 숨어 있었던 와리나 또는 와리푸키오(‘신성한 것을 간직하려는 숨겨진 장소’라는 뜻와 와리와 ‘샘물’을 뜻하는 푸키오에서 유래)에서 쫓겨났다. 이 부부의 후손들은 나중에 와리윌카 사원을 건설했고 그 유적은 지금도 남아 있다. 오늘날 완카족(페루 원주민 중 하나) 사이에서는 아마루가 동굴에 숨어 있다는 믿음이 널리 펴져 있다. 완카족 사람들은 아마루가 폭풍우가 치면 바람을 이용하여 하늘로 다시 올라가지만 구름 사이의 번개에 의해 파괴된다고 생각한다. 하늘에 있는 아마루의 모습이 흰색인지 검은색인지에 따라 한 해의 풍년을 예측할 수 있다고 한다.

 

아마루 신화는 참으로 매혹적이면서도 복잡하다. 하지만 지하세계의 두 개의 머리를 가진 뱀이든 비유적으로 사납게 싸우는 날개 달린 괴물이든 아마루는 최초의 뱀-용과 그 자손 즉 중세 신화와 전통적 판타지에 등장하는 용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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