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트로이 목마를 성 안으로 끌고 가도록 부추긴 장본인, 시논

2025. 12. 29. 07:00신화와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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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에서 시논(Sinon. ‘해코지하는 자’라는 뜻) 또는 시노포스(Sinopos)는 트로이 전쟁 당시 그리스 전사였다. 베르길리우스(Publius Vergilius Maro. 기원전 70년~기원전 19년)의 <아이네이스>와 다른 기록들에 시논은 그리스의 첩자로 묘사되어 있다. 시논은 트로이인들을 속여 트로이 목마를 성 안으로 들여오도록 부추겼다. 그는 때때로 예술 작품에 등장하는데 대개는 말을 끌고 트로이로 끌려가는 포로의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시논은 아우톨리코스의 아들 아이시모스의 아들이었다. 시논은 또 트로이 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와 사촌지간이었는데 오디세우스는 아우톨리코스의 딸 안티클레아의 아들이었다. 시논이라는 이름은 트로이 전쟁이 끝나갈 무렵에 전면에 등장한다.

 

트로이 병사들에게 끌려가는 시논

 

오디세우스는 10년간의 전투 끝에 무력으로 트로이가 조만간 함락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 깨달았다. 따라서 아테나의 인도를 받은 오디세우스는 목마에 대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오디세우스는 목마의 제작을 에페우스에게 넘겨주었고 에페우스는 아이다의 목재로 거대한 속이 빈 말을 제작했다. 속이 빈 말에는 아카이아의 가장 훌륭한 영웅들 50명이 가득 차 있었지만 그 말은 물론 트로이 성벽 밖에 있었고 어떻게든 트로이 사람들이 성벽 안으로 데려가도록 설득해야 할 것이었다. 이 임무를 맡은 이가 시논이었다. 물론 시논이 그 역할로 선택된 이유는 명시적으로 설명되지 않았지만 트로이인들이 언제든지 그를 죽일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한 역할이었다. 아마도 시논이 이 역할을 맡게 된 것은 그가 오디세우스의 사촌으로 서로 신뢰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네이스>에 따르면 시논은 그리스 군대가 떠난 후 트로이 밖에서 발견되어 양치기들에 의해 프리아모스에게 끌려갔다. 그는 그리스인들을 버린 척하며 트로이인들에게 그리스인들이 남겨둔 거대한 목마는 안전한 귀환을 위해 신들에게 바치는 선물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 목마가 너무 커서 트로이인들이 성 안으로 옮길 수 없다고 말했다. 만약 트로이인들이 목마를 성 안으로 옮긴다면 훗날 아카이아의 침략에도 천하무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이야기는 앞서 언급한 세부 사항과 더불어 자신이 트로이인들의 적이었던 오디세우스 탓에 죽게 되었다는 설명까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트로이인들을 설득할 수 있었다.

 

거대한 목마를 성안으로 끌고가는 트로이인들.

 

트로이인들은 카산드라와 라오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목마를 성 안으로 들여왔다. 거대한 목마 안에는 그리스 병사들이 숨어 있었는데 밤이 되자 목마에서 내려 성문을 열었고 트로이의 운명은 파멸로 끝이 났다. 시논은 또한 또한 목마에 숨은 병사들이 전투를 시작할 때 그리스 군대에 신호를 보내기도 했다. 성문이 열리고 목마가 성안으로 들어오자 시논은 다시 해안선으로 돌아왔고 아킬레우스의 무덤 위에서 횃불을 켜서 아카이아 함대가 돌아오라고 신호를 보냈다. 베르길리우스는 로마인들의 우수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리스인들이 교활하고 기만적이며 배신자라고 묘사하기 위해 시논 이야기를 창작했을 것이다.

 

4세기 후반의 그리스 서사시인 퀸토스(Quintus Smyrnaeus)의 <포스트호메리카>에 따르면 그리스 진영을 공격할 준비를 마친 트로이 병사들은 그리스 진영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고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그들이 진영에 도착했을 때 거대한 목마 옆에는 시논만 있었다. 독자들은 나중에 트로이 병사들을 그리스 진영으로 유인한 불 신호를 보낸 사람이 시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나머지 진영은 텅 비어 있었다. 트로이 병사들은 시논을 에워싸고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지지만 그가 대답하지 않자 분노하여 칼로 찌르겠다고 위협했다. 그가 여전히 대답하지 않자 트로이인들은 그의 귀와 코를 잘랐다. 마침내 시논은 그리스인들이 도망쳤고 아테나 여신을 기리기 위해 트로이 목마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시논은 오디세우스가 자신을 제물로 바치려 했지만 간신히 탈출하여 늪에 숨었다고 주장했다. 그리스인들이 그를 찾는 것을 포기하고 떠나자 그는 목마 곁으로 돌아왔다. 시논은 그리스인들이 제우스에 대한 존경심으로 자신을 찾는 것을 멈췄다고 주장한다. 라오쿤을 제외한 모든 트로이인들은 이 이야기를 믿었고 라오쿤은 두 아들과 함께 거대한 바다뱀에게 공격을 받았다. 이후 라오쿤이 신들을 화나게 했기 때문에 공격받았다고 생각한 나머지 트로이인들은 시논의 이야기를 믿기 시작했다. 시논을 불쌍히 여기고 신들의 분노를 두려워한 트로이인들은 시논과 목마를 트로이로 데려왔다.

 

단테(Dante Alighieri. 1265년~1321년)의 <인페르노>에서 시논은 다른 거짓말쟁이들과 함께 영원히 불타는 열병에 시달리게 된다. 영국의 궁정 작가인 루이스 루크너(Lewes Lewknor. 1560년~1627년)는 그의 작품에서 ‘시논적(Sinonical)’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했고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년~1616년)는 그의 작품에서 시논을 여러 차례 언급하며 배신의 상징으로 사용했다. 영국의 작가 조지 엘리엇(George Eliot. 1819년~1880년)의 소설에도 시논이 언급되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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