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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시인의 마을

함박눈 쏟아지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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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히 볼이라도 부벼줄 한 모금의 볼따귀도

시간마다 가슴 아모려 기다려질 한 올의 바래움도

당장 육신채 마음채 내어던져 바치고 싶은

우러러볼 아무것도 없이

남의 집 뒷골방에 누워 다 사위어가는 냉화로를

뒤적이며 있노라면,

눈송이는 펑펑히 상흔을 두드리며 쏟아져오고

대지는 만 근같이 침묵하여 사람 소리조차 낯이 설었다

 

가는 곳마다 걸레쪽처럼 누데기가 된 생활은

낡은 횃대에 걸려 나부끼고, 세기말의 마지막 행렬은

안간힘 쓰며 눈물겨운 갈등을 저지르는 구슬픈 만가 소리

무엇이 무엇을 잡아먹고

무역이 백성을 팔아먹고

아가씨들이 사태를 이뤄 매음을 흉내내고······.

 

함박눈은 펄펄이 쏟아져오고

송이마다 피묻은 기억들이 되살아

매자근한 체온 위에 말없이 쌓여가도

발자욱 소리 하나 매혹스런 노랫가락 하나 들려오질 않고

인간은 자꾸만 외로워 사람마다

등갈난 이리떼처럼 제각기 남루의 사유를 그집어안고

저마다 소굴로 돌아선다

 

어찌하여 인류는 뜨거이 뭄부림쳐

부둥켜안을 수가 없는 것이뇨

지칠 줄 모르던 화안한 꿈은 저주의 함정에 

빠졌는가.

이 시각, 그것을 위하여 사뭇 피려던

계절을 폭풍우처럼 흘려보낸 젊음이

묘막히 돌아올 수 없는 지점에서

눈에 묻혀간다.

 

신동엽의 '함박눈 쏟아지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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